-같이 살자.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인간도 아니다. 커피향 리퀴르가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홀짝홀짝 마셔대다 선을 넘은 모양이었다.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하세가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 것도, 이번에는 제대로 기억이 나기는 했으니 다행이다.
“내가 미쳤지…….”
타카야마는 대기실 가장 구석의 낮은 탁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극장 앞 카페의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앞에 두고, 공책을 펼쳐둠으로서 일단의 결계도 쳤다. 대본을 쓰고 있음. 예민한 상태임. 건드리면 물지도 모름(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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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 커피 잔을 쌓아두고 대본을 쓰는 타카야마는 건드리지 말 것. 커피에 손도 안 대고 대본을 쓰는 타카야마는 더욱 위험하니 근처에도 가지 말 것. 이라는 오래 된 공식을 깨는 소리를 몇 번은 무시했다. 그러나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많이 바빠?”
커피에 손조차 못 대게 만든 고민의 원인이 타카야마의 눈 앞에 서 있었다. 하세가와가 1리터짜리 커피를 든 채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뭐야, 커피 다 식었네. 이거 줄게, 나가자.”
“……바쁘다니까.”
“그러지 말고. 자, 일어서.”
말은 부드러웠지만 어깨를 잡아 일으키는 손길에서 거절은 거절하겠다는 확실한 의사가 느껴졌다. 타카야마는 식어버린 커피를 들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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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먼지가 가득한 소품창고에 나란히 서 있었다. 하세가와는 행여나 타카야마가 도망가는 것을 막겠다는 듯 문에 기대섰다. 타카야마는 그저 커피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감도 오질 않았다. 순서가 엉망이었다. 좋아한다 얘기도 전에 같이 살고 싶다 얘기부터 하는 건 좀 그렇긴 하니까. 좋아한다는 얘기를 안 했다고 모를 정도로 잘 숨긴 것도 아니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래놓고 도망가면 뭘 어떡하자는 거야.”
“그게, 저기. 그러니까.”
타카야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잠깐만, 잠깐이면 되니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그래.”
하세가와가 커피를 홀짝거렸다. 타카야마는 커피를 삼킬 때 마다 움직이는 하세가와의 목울대를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선이 예쁜 사람이다. 본인은 곱상하게 생겼단 이야기를 싫어하긴 하지만, 사실이다. 사실인 건 사실이고…… 그래서 반했고. 타카야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같이 살자고 했고. 정말이지. 순서 어디로 갔니. 차라리 제대로 고백이나 해 볼 걸.
“싫어?”
“싫으냐 그러면 싫은 것 같진 않아. 놀라기야 했지만.”
“많이?”
“거기서 만났을 때 보단 조금. 그러고 보니 너 그 때도 막 도망갔잖아.”
“아는 척을 어떻게 해.”
그런가. 평소랑 크게 다를 것 없는 느긋한 목소리였다. 그러더니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는 타카야마와 눈을 마주쳤다.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된다는 거, 모르진 않는데…… 그러니까, 그 때부터?”
“그 전부터.”
“그 전부터?”
“……그래.”
손도 대지 않은 아메리카노가 반 쯤 식어 미지근해 져 있었다. 타카야마는 남아있던 하고 싶었던 말을 식어버린 커피와 함께 목 안으로 삼켰다. 나 너 되게 오래 전 부터 좋아했다, 하는 이제 와서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말이다.
“이사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도, 거기가 사연이 있는 방이란 걸 늦게 알아서 그렇다는 것도 진짜야. 그런 거짓말을 해서 뭐해.”
“나한테는 하지도 않았지."
“그러네.”
“타카야마.”
“…….”
“진짜 재워만 주는 거라면 할 수는 있어.”
“…….”
“방값 받으면 살림에 도움이 될 테니까. 혼자 내기 좀 벅차긴 하거든.”
“…….”
“이런 의도라도 괜찮다면 들어와서 살아.”
“……아예 가망도 없어? 행여나 그럴 일은 없어?”
타카야마의 목소리가 축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세가와는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대신 커피만 꾸역꾸역 삼켰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늦은 오후에 커피를 l리터씩이나 마셨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차라리 아예 가망도 없다고 하면 들어가고, 모르겠다 하면 그만 둘까 싶기도 해서.”
“갈 데 없다며. 들어와.”
“……응.”
아까보다 더 가라앉은, 곧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이 축 처진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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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자 그러긴 했는데, '우리 이제 같이 살자. 계속 같이있게'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
엄청 우울하지도 않지만 말랑말랑해지지도 못하는 내 취향 때문에 항상 미묘한 전개.
열 두시 넘어서 대충 끊어서 기승전결도 어디론가 사라졌음.....
이런 얘기를 들어서 하세가와도 같이 삽질을 하다가 이렇게(통화연결음 http://theqoo.net/349769560)되긴 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