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무대의 완성도는 형편없었다. 관객들이 미처 눈치 채지 못했을 가벼운 실수까지 포함한다면 두 사람의 손발을 다 동원해 세어도 모자랄 정도의 실수를 했다. 15분짜리 공연에서 몇 번이나 틀릴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반성할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누가 얼마나 더 실수를 했는가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했다. 미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끝은 냈다. 객석의 반응이야, 반응에 대해 차마 되새겨 볼 엄두도 안났다.
“신기록 달성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아니, 아니다. 이걸 또 하는 게 더 끔찍하겠다.”
그래서 서로를 탓하지도 않았다. 미키는 옆에 있는 하세가와가 세상에서 제일 긴 15분이었어, 라고 투덜거리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얼른 도망가자. 누구 만나서 무슨 일 있었냐는 얘기 듣기 전에.”
“…….”
“하세가와?”
“아, 어. 응. 왜?”
“가자고. 얼른 여기서 나가자.”
.
.
.
이렇게 처참한 무대라는 결과는 생각 밖의 것이었지만 하세가와의 상태가 미묘해진 것은 제법 된 일이었다. 별 얘기 없으니 먼저 물어볼 수 없어서 모른 척 했을 뿐이었다. 다 큰 남자가 무슨, 낯간지럽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10년의 세월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질리도록 얼굴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었다. 고민이 있는 건 빤히 보였다.
미키가 전화기를 붙들고 고민했다.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고 해 볼까…… 다음 주 지방 행사에 대해서 핑계를 댈까…….
“뭐라고 하냐…….”
걱정이 되는 건 맞다. 그렇다고 전화해서, 왜 전화를 했느냐는 물음에, 아니, 그냥 걱정 돼서, 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후끈거리고 목덜미가 간지러웠으며, 차마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하세가와 쪽에서 걱정을 해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 미쳤냐고.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뜨는 거 맞느냐고 하는 식의 걱정이긴 할테지만 말이다.
“아, 몰라.”
미키는 결국 벨이 두 번 정도 울렸지만 모른 척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상대는 하세가와다. 급한 쪽에서 전화하는 거니까, 하면서 전화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거나 하진 않을 게 뻔했다. 며칠 후 녹화장에서 물어보거나, 잊어버리거나 하겠지, 괜한 짓을 했어. 미키가 아직도 후끈거리는 볼을 손으로 감쌌다.
다음 주에는 오늘보다 나은 무대를 할 수 있을 거고―오늘보다 끔찍한 무대를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니― 그러면 오늘 정도는 대충 잊어버릴 수 있을 거다. 미키가 침대에 전화를 내던졌다. 그렇다고 걱정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다를 데를 찔러 볼까.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어서는 주소록을 열었다.
“아. 하세가와랑 친하면 나랑은 그렇게까지는 안 친하지…….”
파트너랑 친한 사람과는 어쩐지 친해지질 않았다. 굳이 선을 긋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다들 그랬고, 미키도 마찬가지일 뿐이었다. 즉, 하세가와가 고민을 털어놓을 법한 사람은 알지만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래도 미키는 꿋꿋히 주소록을 읽어보았다. 타카야마. 타카야마라면 알 것 같았다.
“아…….”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미키는 약 10초가량 멍하니 통화 연결음을 듣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말로 전화를 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니었다고 단언 하기는 그렇지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약간은 어색한 상대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여보세요? 미키?
“어-.”
-미키? 무슨 일이야?
“그게, 지금 바빠? 혼자야?”
-혼자. 그것보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미키가 속으로 한숨을 몇 번 크게 쉬었다. 이렇게 된 거, 물어나 보자. 다시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10년을 같이 해 온, 무대를 같이 굴렀던 동기의 정. 괜찮을 거야.
“요즘, 하세가와가 좀 이상해서.”
-…….
“그렇다고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좀 그렇잖아.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나한테 얘기 해 봐, 할 수는 없다고. 그게 뭐야. 징그럽게.”
-……그, 그렇지.
“뭐 아는 거 있어?”
-아, 아는 거. 아는 거…….
“말하기 어려워?”
-그, 나랑, 조금.
“싸웠어?”
-비슷한데, 어, 별 일 아냐.
“아……. 그랬어?”
-그, 저기…….
“화해야 하면 좋지. 우리 하세가와, 그렇게 나쁜 애 아니야. 너무 미워하지 마.”
-알아. 잘, 해 볼게.
“아니, 사람이 살다 보면 싸우기도 하는 거야 알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
전화를 끊었다. 긴장한 탓인지 어깨가 뻐근했다. 별 거 아니라고 하니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 큰 어른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평소의 하세가와처럼 배 째라 정신이다. 내가 싸우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미키의 전화기에 라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세가와였다.
-전화 했었잖아. 무슨 일이야?
미키가 하세가와의 라인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손이 미끄러져서. 별 일 아니었음.
-바보.
-시끄러워.
다음 답장은 이모티콘이었다. 베개를 껴안은 곰이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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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게닌콤비라는 설정.
미키&하세가와
타카야마&아즈마
이야기(&으로 묶어놓은 둘이 사귄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이게 몇 번짼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날 때 마다 쓰고 있는 1차야.
스토리는 잡아놓고 주제에 따라 그냥 아무렇게나 쓰는 거라 지난 번에 쓴 이야기랑 지금이랑 연결되진 않음.
우산(http://theqoo.net/190444941) 에서 시간이 좀 흐른 후 일어난 일. 하세가와는 솔로입니다. 타카야마도 솔로입니다. 아직까지는.
왜 항상 늦은 시간에 불이 붙어서 제한시간에 걸려서 아쉬워 하는 걸까... 이 게으름을 어떡하면 좋을까.
비즈니스 파트너라도 수십 년을 같이 하면 친해지는 건 당연할 텐데, 어째 일본 콤비들은 '우리 친해요'라고 말하는 걸 피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해서 그걸 살려서 써 보고 싶었는데.... 그런 걸 쓰고는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