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라?」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히나타가 도착할 시간이다 싶어 부엌에서 홍차를 끓이고 있었던 츠키시마는 그 목소리를 따라 현관으로 나갔다. 츠키시마의 발소리가 들렸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히나타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해있었다. 그 곳에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우산꽂이가 놓여있었다. 아아, 그러고보니까 평소에는 이 위치가 아니였던가. 츠키시마는 그제야 납득하였다. 평소라면 우산꽂이가 있을 위치는 지금 있는 신발장 옆이 아닌 뒷쪽 베란다의 어딘가였다. 오늘은 급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츠키시마가 서둘러 이 곳으로 내놨던 터였다. 히나타가 그의 집에 찾아오는 날은 대게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아마 우산꽂이가 현관에 있는 걸 처음 본 거겠거니, 츠키시마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였다.
「츠키시마 이 우산,」
「응?」
그러나 츠키시마는 3초도 안되어서 그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당사자인 히나타가 가르킨 것은 처음 보는 위치에 있는 우산꽂이가 아닌, 그 안에 있는 우산 하나였던 것이다. 핑크색 땡땡이에 레이스까지 달려있는 그 우산은 누가봐도 그들 또래의 남자들이 쓸 만한 것은 아니었다. 집안에 여자라곤 어머니 하나뿐인 츠키시마의 가족을 생각해보면 이 곳에 있는 것 자체가 확실히 의문스러운 물건이었다.
「...거야?」
「뭐?」
「혹시 누구한테 받은거냐고」
어떻게 하면 그런 기발한 생각이 나올 수 있는건데. 츠키시마는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그 어떤 미친 사람이 남고생에게 이런걸 줄까. 그것도 한 눈에 봐도 180cm는 족히 넘을 남자에게. 그래도 덕분에 괜시리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은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이게 뭐라고 내가 이러는건지. 츠키시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우산이 이 곳에 오기까지의 경위를 설명했다.
2.
「집에 안가?」
「....」
「비 올때 계속 바깥에 있으면 감기든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츠키시마 소년은 매우 곤란했다. 제 아무리 말을 걸어보아도 눈 앞에 있는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말을 못하는 아이인가, 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몇 시간 전만하더라도 그의 목소리가 체육관 곳곳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던 것을 그는 기억해냈다. 오늘 처음 온 주제에 순식간에 모두의 중심에 서있던 아이. 자신과는 영 맞지 않는 타입인거 같아 가까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존재감 하나만큼은 츠키시마의 가슴 속에 깊게 박혔다. 그러니 지금도 문 앞에 쪼그려앉아있는 그를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말을 건 것일테지.
「혹시 우산 없어?」
답지않게 상냥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아이의 얼굴이 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꼭 내가 괴롭힌 거 같아 보이잖아. 츠키시마는 그제야 괜히 그에게 일말의 관심을 가진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된다고 했던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그 말을 되뇌이며 츠키시마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톡톡. 매우 가볍고 소심한 동작이었지만 츠키시마로써는 처음으로 가족이외의 누군가에게 취해본 스킨십이었다. (물론 어깨를 두드리는 정도로 스킨십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어」
아, 뭐야 제대로 얘기할 수 있구나. 츠키시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더 용기를 내어 두발짝 더 아이의 옆으로 다가가 쭈그려앉았다.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워진 아이의 얼굴은 아까와 다를바 없었다. 툭하고 치면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을 터뜨릴거 같은. 그러나 츠키시마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오늘 배구교실에서 누가 괴롭힌 것도 아니고, 방금의 츠키시마의 말에도 무엇 하나 그가 상처를 받을 법한 말은 없었을터. 바깥에 내리를 비 때문에 슬슬 차가워져가는 공기를 느끼며 츠키시마는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는 게 낫겠다고 결론지었다.
「우산도 있는데 왜 집에 안가?
그리고 왜 그렇게 울 거 같은 표정이야?」
「우산....있으니까」
「?」
「이...이런 우산 어떻게 쓰고가!!!」
갑자기 커진 아이의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깜짝 놀랐다. 다행히 다른 아이들마냥 엉엉 큰 소리를 내면서 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을 보니 우는거겠지. 그렇게까지 아이를 몰아넣은 우산은 어떤거길래, 라는 생각에 츠키시마는 아이가 「이런 우산」이라고 칭한 우산을 바라보았다. 쭈그려 앉아있는 그에게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 우산에 대한 첫 인상은 「누가 얘 괴롭히려고 넣어둔거 아냐?」였다. 핑크색 땡땡이도 레이스도, 츠키시마의 사촌(여자) 정도나 좋아라하고 쓸 법한 우산이었다.
「그럼 내꺼 쓸래?」
「어?」
「내가 이거 쓰지 뭐,」
너무도 여성스러운 그 우산을 쥐고 츠키시마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왜 굳이 이런걸 자청하는건지, 라는 생각을 안 한건 아니었지만 아이의 얼굴을 보니 왠지 그래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올거야?」
「가...같이가!!!!」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츠키시마의 우산을 한 손에 들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엄청 싫었나보네. 츠키시마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따라웃었다.
3.
「그게 너였냐!!!!!」
「...설마」
그러고보니 그 애도 머리색이 주황색이었던가. 츠키시마는 그제야 히나타가 「받았냐」고 물은 이유를 깨달았다. 왜 이걸 지금까지 몰랐던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억속의 아이와 히나타는 완벽히 매치되었다.
「시끄러운 것도, 쬐끄만 것도 그대로네」
「츠키시마 너!!!!!!!!」
「너무 작아서 나보다 어릴거라고 생각했는데」
「야!!!!」
그 때 그 아이가 히나타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 날 이후 배구교실에 갈 때마다 한참을 아이만 바라봤다는 것도, 사실은 좀 더 친해지고 싶었다는 것도, 아이가 배구교실을 그만뒀을 때 울어버렸다는 것도 츠키시마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제와서 그 사실들을 알려주기엔 츠키시마는 너무 많이 컸고 너무 많이 삐뚤어져버렸다. 대신 츠키시마를 향해 불만을 토하는 히나타의 머리를 한 손으로 꾹 누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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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하느라 연성을 너무 놨나봐
글이 개판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