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 - 까스뜨로헤리츠
무니시팔에 묵으면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순례자들이 준비하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뜨여
연박을 하면서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발 상태가 체감될 정도로 호전되지는 않았어
불편했던 등산화때문에 발을 비틀며 걸었던 것 때문에 발목이 아팠거든ㅠ
간단하게 스트레칭하고 새로 산 깔창에 발목 & 무릎보호대까지 차고 출발했어
온타나스까지 가보고 (31.3km) 13시 전에 도착하면 컨디션을 보다가 까스뜨로헤리츠까지 (40.3km) 갈 예정이라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했어
호주친구는 밤새 코골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후다닥 짐싸고 나갔고ㅋㅋ
베트남 순례자분은 먼저 출발하시더니 알베르게 1층에서 아침을 먹고 계시더라구
부르고스 안녕
오늘도 부르고스 이정표를 따라서 나아간다
이정표의 순례자가 바라보는 방향이 내가 나아갈 방향이다


순례길에서 처음 보는 토끼풀

부르고스는 도시가 커서 완전히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
발이 아플 땐 포장길이 더 힘들어ㅠ
내가 걸음이 좀 빨라서 순례자들을 자주 따라잡곤 하는데 외국인 순례자들은 따라붙는 것 같으면 같이 속도를 올리다가 따라잡히면 그제야 속도를 낮추더라
나 때문에 페이스가 흐트러진건가 싶기도 하고 암튼 왜 그런지는 모르겠음ㅋㅋㅋ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까지는 산책길이 이어진다
햇님 제가 갈 길이 머니 살살 좀 부탁드립니다



아를라손 강의 다리를 지나면
따르다호스(=데오브리굴라)에 도착한다
기원 전 8세기 켈트족이 설립한 도시로 데오브리굴라라는 이름은 '신들의 도시'라는 의미래
켈트족부터 고대 로마의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어 현재는 부르고스 박물관에 전시중이고
사진 속의 머리없는 비너스 여신상이 발굴된 걸로 유명하다고 해 (골동품상에게 팔려 현재는 행방을 모른대)


순례자 병원이 있던 곳에 세워진 돌 십자가
일반 가정집에서 꾸며둔 부엔까미노는 언제나 귀엽고 뭉클하다
다행히 저 산을 넘을 일은 없었다

셰퍼드와 함께 수레를 끌고 여행중인 순례자 대가족
수레에는 아이가 타고 있었다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어
곧 순례길 일정의 절반에 들어선다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에선 수녀님과 자원봉사자들이 순례자들에게 강복을 해주며 기념 목걸이를 걸어줘
예배당의 거룩한 분위기때문이었을까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순례자들 중 하나에 불과한 나를 위해 축복을 해주신다는 게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살짝 나왔어
수녀님이 축복해주신 건 1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기억은 순례길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했어
다른 순례자들 완주 후기에 간혹 보이는 10원짜리 같이 생긴 목걸이가 여기서 받은 목걸이야ㅋㅋ
성모 성당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메세타 고원이 시작돼
한반도보다 더 넓은 메세타 고원은 여름에는 사막과 같이 뜨겁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시베리아같이 차가운 기후적 특징이 있어
마땅히 쉴 곳 없이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 고원의 밀밭을 걸으며 순례자는 고독과 침묵, 평화와 여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대
계속되는 비슷한 풍경에 다음 대도시인 레온으로 점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케이스는 못 봤고
실제로는 순례길 이후의 일정때문에 메세타 고원을 점프하는 순례자가 더 많은 것 같아
* 레온까지의 루트 그리고 레온 이후의 루트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점프를 하지 않는 걸 추천해







이 때 처음으로 양귀비꽃이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다
ㅋㅋ나는 메세타 고원이 너무 예뻐서 신이 나버림,,
발은 아픈데 진짜 너무 좋았어
한번씩 입으로 벌레 샤브샤브하고 벌레가 막 박치기하고 날벌레 겁나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어ㅋㅋㅋ
노새를 죽이는 언덕이라는 의미의 MATAMULOS 붉은 십자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
이곳은 유명한 전망대이기도 하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자전거를 빌릴까 수천 번 고민했다


독특한 이름의 바르가 있다

순례길을 소재로 한 영화 <THE WAY>의 촬영지라고 한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 도착하니 호주 친구가 쉬고 있었어
나랑 같이 걸어온 몬타나주에서 온 소녀 친구랑 즐겁게 얘기하길래 호주 친구의 연애사업을 응원하며 ㅌㅌ함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부터 온타나스까진 10km 가량 쉴 곳이 없으니 충분히 쉬어가기!

간혹 마주치는 돌무더기는 순례자들의 좋은 쉼터가 되어준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오르막길이 계속 된다

아아 태양이 작렬한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태양을 피할 곳 따윈 없다



온타나스에 도착하니 딱 13시였다
일단 맥주로 인간성을 충전해본다
끌라라까지 이어서 두 잔이나 때려버리니 술기운이 올라서 까스뜨로헤리츠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오르더랔ㅋ
내가 맥주를 마셨던 알베르게가 온타나스에서 가장 평이 좋은 알베였는데 내가 일찍 도착한 편이라 자리가 많았거든
날이 너무 더웠고 이미 방전된 상태라 평소라면 온타나스에서 일정을 마무리했을거야
까스뜨로헤리츠에 비빔밥과 라면으로 유명한 한인 알베르게가 있는데 거기 묵고 싶기도 하고
메세타 고원이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좋아서 결국 더 걷기로 결심했어ㅋㅋㅋ
더위를 식히고 다시 길을 나서니 어느 새 순례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하루 중 가장 덥다는 시간대. 기온은 벌써 32도를 가리키고 있다
콧물이나 닦아

갈 길은 멀지만 쎄요는 열심히 찍는다

그리고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길 위에 순례자라고는 나 밖에 없다

산 비센떼 성당의 흔적
이거 보려고 작은 언덕을 올라갔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시 길을 나선지 30분 만에 후회하고 말았다
다시 온타나스로 돌아가는 거나 까스뜨로헤리츠로 가는거나 그게 그거라 눈물을 머금고 걸음을 옮겼어
물도 어느 새 따끈해지고 아껴마시던 어제 짠 오렌지 주스도 뜨거워져서 결국 버렸음ㅋㅋ
당 충전용 하리보도 다 녹아서 한 덩어리가 된 지 오래고
걷다보니 괜찮았던 오른쪽 발목도 나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시작함




듬성듬성 나무 그늘이 있는 도로길 vs 그나마 발이 편한 순례자 길
이러다 잘익은 HAM이 될 거 같아서 도로길로 걷다가 결국 순례자 길로 갔음ㅋ큐ㅠ
산 안톤 수도회의 오래된 병원과 수도원 건물의 폐허
폐허 한 켠에 알베르게가 있다
부럽..
마지막 2.7km 출발

저 멀리 점이 된 나의 구세주
30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인데, 이 때 진짜로 쓰러질 뻔 했어
이 날은 진짜 몸이 힘들어서 쓰러질뻔 함..
내가 힘들어보이니까 외국 순례자 아저씨가 다가와서 같이 걸어줄까, 드링크는 있냐 자상하게 걱정해주심ㅠ
쉬면 좀 괜찮아질거라고 안심시키고 보내드렸어
메세타 고원은 진짜 걷는 중에 쉴 곳이 마땅히 없으니 다들 나처럼 미련하게 무리하지 말았으면ㅋㅋㅋ큐ㅠ
멀리 보이는 까스뜨로헤리츠 성과 마을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 오리온 알베르게
비빔밥과 된장국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다행히 오리온 알베르게는 마을 초입에 있었다
체크인까지 끝내니 16시였어ㅋㅋ 미쳤..
까스뜨로헤리츠는 까미노 프란세스 루트에서 가장 긴 마을 중 하나래
마트에 가려고 했는데 알베르게에서 마트까지 900m임ㅋㅋㅋ
풀부킹이 아니라 호스트분께서 1층 침대로 바꿔주셨어
안은 굉장히 깔끔하고 좋았고 직원이 잘생겼음
나랑 같이 체크인한 한국인 순례자분은 팜플로나까지 걷다가 그 이후엔 자전거로 순례 중인데
전 날에 나랑 팜플로나 까지 함께한 커플 친구들이랑 같이 있었다고 해서 너무 신기했어 ㅋㅋㅋㅋ
혹시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자전거로 순례해보고 싶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어



빨래하고 좀 쉬다가 마트에 도전해보려했는데 뇌우가..?
급하게 빨래를 걷어서 자전거 순례자분 건조기에 실례함ㅋㅋ감사합니다ㅠ
상황을 보다가 까스뜨로헤리츠 성에 올라가보려 했는데 깔끔하게 포기함ㅎ

내가 순례길을 걸은 6월은 유로 2024가 한창이었다
잉글랜드 부녀랑 같이 축구를 보고 있으니 저녁시간이 되었어

내 생각보다 더 본격적인 비주얼의 비빔밥이 나와서 놀랐어
맛있다기보다는 반가운 맛! 양이 엄~청 많아
순례길 걸으면서 입이 짧아져서 다 먹을 수 있을까싶었는데 뚝딱 해치움ㅋㅋ
그리고!! 생장에서 헤어졌던 한국인 부자(父子) 순례자분들이랑 처음보는 젊은 한국 부부 순례자분들을 만났어
다른 알베르게에 묵고 있는데 비빔밥 먹으러 오셨댘ㅋㅋㅋ
사실 생장 이후론 각자 다른 일정을 걷고 있어서 다시 못 만나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갑더라ㅠ
순례길 2회차셔서 카톡으로 나한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셨거든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내가 다른 순례자들보다 더 많이 걸으니까 따라잡았더라구ㅋㅋ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른 순례자들과 헤어진 후에 고양이랑 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어
이제 생장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던 한국인 순례자분만 다시 만나면 나랑 같이 시작한 순례자들은 전부 다시 만나는 건데
근데 너무 앞에 계시고 일정때문에 점프하실 거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도 이젠 추천 일정을 따라서 천천히 걸을 거라 아마 당분간은 한국인 순례자분들과 같이 가려나?
계속 30km를 넘게 걸으니 20km 전후로는 걷고 싶지 않은데 오후에 너무 더워서 어떻게 하지
레온까지는 묵을 만한 마을도 애매해보여서 일정도 고민이 되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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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449.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