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례길을 다섯 개의 구간으로 나누고 싶어
순례길에서 펼쳐지는 풍경도 길 자체도, 순례자들과 순례길의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과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때문이야
그 모든 구간이 순례길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느 구간이 더 재밌었고 힘들었다는 건 아냐
참고해서 순례길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서 남겨봐
구간 1 / 생장 - 푸엔테 라 레이나
두려움, 설레임, 즐거움 등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발생해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위태로운 시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 것도 많고,
이 시기에 힘듦에서 벗어나 시야와 감정을 넓힐 수 있으면 나처럼 뜻깊은 순례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이 시기에 순례길의 고행보다 느끼는 게 더 많았기 때문에 남은 순례길을 즐길 수 있었어
순례길 걷는 게 힘들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힘들었지만 즐거움이 더 컸다고 말할 수 있어
내가 그랬단거고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어 다들 각자의 순례길이 있는 거니까
구간 2 / 푸엔테 라 레이나 - 온타나스
걷는 게 재밌는 시기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이 발걸음이 가벼웠고, 실제로 걷는 요령이 생기고 체력도 붙어서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웠어
푸엔테 라 레이나와 온타나스 사이에 위치한 부르고스부터 힘들다고 유명한 메세타 고원이 시작돼
보통은 메세타 고원 전후로 순례길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나는 메세타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감정의 폭풍이 나를 휘몰아치고 가서 ㅋㅋ 나는 즐겁게 걸었어
이 때부터 사립 알베르게들이 많아져서 공립/사립파로 나뉨 순례길은 숙소가 가장 중요하니까!
공립 알베르게 ->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머무르는 숙소
다인원이라 프라이버시가 없고 불편할 수는 있지만 많은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만큼 다양한 순례자들과 교류할 수 있어
공립 알베르게가 주는 특유의 감성이 있어서 나는 순례길 후반에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다님
사립 알베르게 ->
공립 알베르게보단 비싸지만 (몇 천원 차이) 좀 더 편하고 소규모의 숙소를 원하는 순례자들이 선택해
나는 사립 알베르게가 주는 포근함과 도란도란함에 반해서 주로 사립 알베르게를 애용했어
숙박가능한 인원 수가 적으니 성수기에 이용할 거라면 예약 필수
구간 3 / 온타나스 - 레온
순례길의 모든 걸 즐기던 시기
여전히 걷는 것이 즐겁고 다른 순례자들과 교류하는 게 기대되며 마을에서 겪는 일들도 재밌어
내일이 기대되고 한 번씩 순례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듦
다른 후기를 뒤적거리면서 추천 루트에서 벗어나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 마을을 목적지로 설정하기도 하고 걷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해보기도 함
구간 4 / 레온 - 사리아
걷는 것보다 다음 마을에서 쉬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좋음
레온부턴 현실적으로 추천 일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서 추천 일정을 따라갔는데 거기에서 오는 여유를 즐기게 되었어
일과를 빠르게 마치고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
빨래하는 시간의 평화가 너무 좋음
아마 이 시기엔 순례자의 삶에 100% 적응 완료했던 것 같아
레온까지 & 레온에서 이탈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순례자들이 많아
프랑스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나아가는 순례자도 있고, 일정때문에 떠나간 순례자들도 있고..
갈수록 순례자들이 줄어들어서 더욱 한적해지고 개인적인 여유로움이 커진 시기
구간 5 / 사리아 - 산티아고
갈무리되는 단계
사리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순례자들이 엄청 많아서 내가 걸어온 순례길과는 또 다른 순례길을 마주하게 됨
처음 보는 낯선 순례자들이 많고 산티아고까진 짧은 일정만 남아있기 때문에 다른 순례자들과 으쌰으쌰하던 분위기는 사라져
살짝 관조적으로 새로운 순례자들을 바라보게 되지만 새로운 순례자들의 복작함이 새로운 활기를 불어주기도 해
나는 새로운 순례자들을 존중하는 마음이었지만 어떤 순례자들은 프랑스길을 온전히 걷지 않았다고 선을 긋기도 하더라고ㅋㅋ
순례길을 마치기 싫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끝을 마주할 준비를 하며 순례길이 끝난 후의 미래를 결정해야 해
ㅡㅡㅡㅡ
오리손 - 론세스바예스

피레네 산맥의 절경을 배경 삼아 아침은 간단하게 빵에 잼과 버터를 발라 해결했어
론세스바예스까지 멀지 않았기에 8시쯤 늑장부리며 출발함
6월 순례길의 아침은 제법 쌀쌀하니 바람막이는 필수
어제 만났던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어
보통 순례자를 마주치거나 앞지를 때,
'안녕'이라는 뜻의 Hola! [올라] 혹은 '좋은 순례길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의 Buen Camino [부엔 까미노] 라고 인삿말을 건네
나도 이 때는 아직 어색했는데 몇 시간도 안 지나서 보이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다님ㅋㅋㅋ
어짜피 다시 보기 힘든 사람들이니까 용기가 막 샘솟았음
진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 인사를 받아주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주민들과도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어 (대도시는 안 받아줌 ㅜ)
인사를 주고받는 게 사소하고 귀찮을 수도 있지만 순례길에 의미를 더해준 작은 의식이었다고 생각해
+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길은 나폴레옹 루트와 발카를로스 루트 두 가지가 있어
생장에서 출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을 만나게 됨
나폴레옹 루트가 더 난이도 높지만 대부분이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루트고, 나폴레옹 루트를 통해야 오리손을 지날 수 있어서 나도 나폴레옹 루트로 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순례자들이 쌓아놓은 돌무더기
돌을 놓는 행위는 순례자들의 삶의 짐이나 죄를 두고간다는 의미도 있고 소원을 빌거나 안전을 기원하기도 한대
이 돌무더기는 사리아 전까지 순례길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어
나도 나중엔 돌멩이에 글을 쓰려고 마카를 하나 샀음

오리손으로 가는 길은 숲 속의 가파른 오르막길이었지만 오리손을 지나면 탁 트인 오르막길이 펼쳐져있다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자유롭게 노니는 소와 말, 그리고 양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양 궁뎅이

방목하는 동물을 만나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똥례길

불만있냐 인간
쉽말..하면서 걷다보면 사람 근처에 와서 관심을 보이기도 해


조금 더 가면 포장된 길을 벗어나 본격적인 산 길을 걷게 된다
이 근방에 핫초코가 유명한 푸드트럭이 있다고 하는데 날씨가 좋다면 만날 수 있다고 해
나는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어ㅠ
트인 곳으로 나오니 강풍이 불어서 콧물이 계속 났어 (비염인의 필연적인 고통 ㅠ)
맞바람이라 앞으로 가기도 힘들었음


전 날 내린 비때문에 생긴 진흙길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순례자들

생수만 마시려 했지만 살기 위해 약수를 마셔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약수 중에는 마실 수 없는 물도 있으니 주변의 표지를 잘 확인하고 이용해야 해
나는 이런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나면 한번씩 쉬면서 발을 말려줬어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무슨 무슨 지형?? 사실 모르겠음 ㅎ
숲길은 강풍이 불지 않아 좋았어

숲길과 트인 길을 번갈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쉘터
안에는 대엿이 겨우 바람을 피할 정도로 다소 좁지만 바람도 너무 세고 몸도 무거워서 가뭄의 단비같았어
이 구간이 내 순례길 여정 중 가장 바람이 세서 힘들었어

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젠 돌아갈 수도 없어서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가장 높은 지점인 콜 데 레푀데르에 도착한다
(AI로 내 모습 지움)
산봉우리가 많아 내가 지나온 길을 전부 볼 순 없었지만 이젠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사실에 한숨 놓았어
몸이 살아남기 위해 당을 달라고 신호를 보내더라
생장에서 산 바나나를 옆에 있는 순례자와 나눠먹었음
여기부턴 길잃은 후기 ㅠㅠㅠ 길 잃지 말라고 쓴 거니까 참고만 하구 나 따라가면 안 돼
정상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길이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두 가지가 있어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리손에서 만난 신혼부부가 비포장길이 맞다고 알려줬어

그래서 신혼부부 순례자를 저 멀리 앞에 두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음
길잃을까봐 무서워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는데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가기도 싫고 보이는 길은 하나뿐이라 그냥 가기로 함
(덬들은 나같이 멍청한 짓 하지마 ㅠㅠ 길을 잃었는데 주변에 다니는 사람 없으면 맞는 길이라도 사람 다니는 곳까지 돌아가..)

빨간색과 흰색의 두 줄은 순례자들을 위한 표식이다
스멀스멀 드는 불안한 생각들을 무시하고 걷는데 X자 필그림(=순례자) 표식을 봄
이 때부터 멘탈이 붕괴됨ㅜㅜ

Lepoeder 뷰포인트로부터 위쪽이 내가 간 길
틀린 길은 아닌데 그냥 길 잃은거야
당시 나는 부엔까미노앱만 쓰고 있었는데 내가 있는 곳이 NA로 떠서 N/A인가? 폐쇄된 길인가? 이러면서 점차 멘붕에 빠짐
와중에 데이터도 잘 안 터져서 지도앱에선 내 위치가 자꾸 튀고 길에는 자꾸 X자 표식이 나오고
늦은 시간에 출발해서 주변에 순례자가 없으니 맞는 길인지 판단도 안 되고
(이 날 이후로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순례자가 됨 ㅎ)
이 때라도 정상으로 되돌아갔어야 하는데 멘붕이 와서 여기 부근만 뒤적뒤적거렸음
근처에 농장이 있었는데 농장 앞만 왔다갔다함
산맥을 넘느라 진이 다 빠져있었는데 길 잃으면 j될까봐 거짓말처럼 힘든게 싹~ 잊혀지고 힘이 나더라
그렇게 30분 넘게 헤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순례자가 불쑥 나타나서 따라갔더니 길이 나왔어
그 길이 아직도 기억이 안 나.. 저 X자 표시있던 길이었는지 정상으로 돌아가던 중 다른 곳으로 빠졌는지
그 사람이 나한테는 어린 양을 인도해주는 신의 사자였음 그 후로 다시는 못 만나서 감사인사도 못했어ㅠ
진짜 뭐에 홀린 것 같이 길을 잃고 홀린 것처럼 길을 찾음
좀 더 가서 차도 옆에 있는 성당인지 주유소인지를 끼고 돌아 다시 숲길로 돌아오니 그제야 순례자들이 몇 보이더라
이 때 너무 경황이 없어서 찍은 사진도 없어ㅋㅋㅋ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내리막 길 구간에는 급경사가 많아서 발이 아팠어
길들여지지 않은 신발이 발목을 공격하고 발가락도 물집이 잡힌건지 따끔따끔했어
*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서 그런 거니 다른 신발로 바꿔야 해!!


작은 개울까지 지나면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12시 반 경에 도착했는데 나 말고 다른 순례자들이 없더라
이 시간은 생장에서 출발했다면 도착하긴 너무 이르고, 론세스바예스를 넘어 다음 목적지까지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기 때문에
내가 론세스바예스로 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이 적었다는 사실을 깨닫았음

가장 먼저 체크인해서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내 신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도 전자예약이 가능하고 13시부터 체크인을 할 수 있어
예약 시 저녁 식사 옵션을 선택하면 커뮤니티 식사 입장권을 줘
심신이 피로해서 빨래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했어
* 세탁기 사용을 위해 동전을 꼭 들고 다니는게 좋아

공립 알베르게나 성당 부속 알베르게에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계셔서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 내부
이 정도면 공립 알베르게 중에서는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음
온수도 잘 나오고 깔끔해 공립 알베르게라 살짝 걱정했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웠어
공립 알베르게 특성 상 방음은 불가능하니 잠귀가 밝다면 귀마개는 필수로 챙기자
오리손 알베르게에선 코에서 탱크소리가 나는 순례자가 있어서 자다가 깼는데
카탈루냐에서 온 다른 여성 순례자분이랑 눈이 마주쳐서 헛웃음 지은 적이 에피소드가 있음 ㅋㅋㅋ
내 순례길 첫 룸메이트는 외국 할아버지 두 분과 베트남 여성 한 분
베트남 분은 한국에서 일하신 적이 있어서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시고 유쾌한 성격이시라 금새 친해졌어
독실한 신자분이라 주일에 맞춰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 일정을 세우셨다고 하셔서 굉장히 인상깊었어
이후 순례길에서 종종 마주치게 됨


날씨가 너무 좋아 산책을 즐기고 늦은 점심을 먹었어
당근 케익이랑 순례자 정식을 먹었는데 맛은 쏘쏘했지만 순례자 정식치고는 굉장히 잘 나온 편임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마당에 한국인 셋이 보여서 달려나갔어
한국말이 하고 싶었거든ㅋㅋㅋㅋㅋㅋㅋ
젊은 친구 둘은 커플이고 나머지 한 분은 혼자 오신 셰프셨음
커플 둘이 예쁘게 사귀는 것 같아서 부러웠어
이 커플이 대단한 게 크록스를 신고 순례길을 완주함;;
여자분이 무릎이 아프다고 하셔서 한국에서 들고 온 무릎 보호대를 건넸어
셰프분은 무려 본인의 요리도구를 들고 다니시는데 존경스러웠음
이 한국분들이랑 동행하기도 하고, 나중엔 헤어졌지만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종종 마주치기도 함
저녁엔 한국인 커플이랑 네덜란드맨이랑 20살 런던걸까지 합류해 5명이 맛있게 밥먹음
고기가 덜 익어나와서 당황했는데 다른 순례자들이 받은 고기 상태를 보니 원래 그런듯하니 같은 일이 벌어져도 당황하지마..
저녁 식사시간이 끝나는 20시엔 미사가 있어서 무교지만 나도 미사에 참석했어
따로 순례자를 위한 축복의 시간이 있었는데 무언가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어
미사 후엔 한국인끼리 모여 노가리를 깜
나는 원래 라라소냐까지 가려햇는데 다들 수비리까지 간다고 하길래 나도 수비리까지 가기로 함ㅋㅋㅋ
대책없는 P
수비리 자체에는 빈 알베르게가 많았는데 우리가 가려는 알베르게는 인기가 많고 가격이 있더라
2인실 밖에 없는데 54유로라길래 굉장히 고민했는데 사립 알베르게가 궁금해서 숙박하기로 함 (보통 알베르게가 식사 미포함 11 ~ 15유로였음)
그렇게 넷이서 수비리 알베르게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음 날을 위해 침대로 향했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내부에 있는 자판기
론세스바예스의 마트는 아침 늦게 (8시 반) 영업을 시작하니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ㅡㅡㅡㅡ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수도원의 아침은 분주하다
순례객들이 떠나 한적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의 공터
전날처럼 8시에 출발하려 했지만 새벽부터 출발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리와 아침 미사를 준비하는 소리에 6시쯤 눈이 떠졌어
나의 게으름을 순례자들의 분주함이 다그쳤지만 나는 느긋한 순례길도 틀리지 않다는 걸 너무 빨리 깨달아버렸음ㅎ
슬렁슬렁 짐싸고 발에 테이핑을 하고 있으니 알베르게에 머문 대부분의 순례자가 떠났고, 나는 7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을 했어
이 때는 다음 날을 위해 짐을 정리하는 요령이 없어서 1시간이나 걸렸지만 나중에는 기상부터 출발까지 10분도 채 안 걸림

어제 산책했던 길을 순례자로서 걷게되니 사뭇 다르게 보인다


차도 바로 옆에 있는 순례길
이런 광경을 앞으로 자주 보게 된다
마을/주택가를 가로지르는 길도 있다
역시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길이다
* 주택가는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이라 나는 스틱으로 바닥을 치는 등 소음을 만들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어

마을에도 순례자를 위한 표식이 (조개껍데기 & 노란 화살표) 그려져있으니 잘 따라가자

이렇게 갑자기 숲 길로 빠진다고? 정말? 싶은데 나중에는 익숙해진다

똥쟁이들을 지나

숲길을 지나면

IRATI라는 알베르게를 만난다
저렇게 조개껍데기나 필그림 마크 등의 표식이 있는 숙소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야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식당도 겸업을 해
이 알베르게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침식사를 했어
별 거 아닌데 굳이 기록을 남긴 이유는

여기서 먹은 또르띠야가 순례길에서 먹은 또르띠야 중 가장 맛있었기 때문
대부분의 식당에선 만들어 둔 또르띠야를 파는데 나는 운이 좋게 갓 만든 또르띠야를 먹었음ㅠㅠ
과하지 않게 익혀서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환상적인 또르띠야였어
이 맛을 기대하고 종종 또르띠야를 사먹었지만 결국 비슷한 정도의 또르띠야조차 만나지 못했음..
커피는 평범했어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나선 길

순례자는 꼬불거리는 차도를 가로지르는 숲길로 가야한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이 숲길을 지나다가 발목을 다쳐 쉬고 있는 순례자를 만났어
소염진통제를 줬었던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네
나중에 한 순례자 무리에서 이 순례자를 다시 만났는데 살짝 절뚝거리긴 하지만 잘 걸어가고 있었음

순례길을 걷다보면 한번씩 만나는 이정표
나는 이정표를 만나는 순간을 좋아했다
일기를 다시 보니 이 때 발이 너무 아파서 못 걷겠다고 13km 남아서 절망스러웠다고 쓰여있네ㅋㅋ
아마 신발 목이 닿는 부분(왼발 복숭아뼈 위)이 계속 쓸려서 아팠던 것 같아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하기 전에 열심히 테이핑하던 것도 쓸리는 부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였음 ㅠ

간혹 만나게 되는 개울에서 발을 식히고 가는 순례자들도 만나볼 수 있어

마을을 지나다보면 주택 담벼락이나 문에 장식된 조개껍데기나 필그림의 상징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순례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아했어


순례길의 모든 구간에는 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나무에 필그림 마크가 그려져 있어
이래서 내가 X로 그려진 필그림 마크를 보고 길을 잃은 거 ㅠㅠ


갖가지 들꽃을 따라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민트색의 푸드트럭
레모네이드는 그냥 물에 레몬즙을 탄 맛이니 큰 기대는 하지마
원래 이 트럭에 소원을 비며 속옷을 두고가는 (?) 뭐 그런게 있었다는데 나는 못 봤어

푸드 트럭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
순례길 일부 구간은 말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
혹시 도전해보고 싶으면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저기 말타고 계신 분들은 나중에 수비리에서 만났어

수비리로 가는 내리막길 또한 힘들기로 유명하다
충분히 쉬고 다시 출발하는데 너무 오래 쉰건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힘들었어
* 너무 오래 쉬면 몸이 굳으니까 다시 출발하기 전에 꼭 스트레칭을 해
사진으론 못 담았지만 경사가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인데 돌로 되어 있고 지형도 좋지 않아 발에 계속 무리가 갔어
신발만 맞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 구간은 힘들다기 보다는 아파서 빨리 끝내고 싶었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팠던 구간ㅠ 너무 아파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음

수비리가 보이자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우리 수비리 정상영업합니다
굳이 수비리에서 묵을 필욘 없었던 것 같아서 순례길에 다시 간다면
라라소아냐(수비리에서 5km)까지 가서 다음 날 팜플로나에 빨리 갈 것 같아
물론 다 끝나고 ~if 신발을 잘 고르고 발이 안 아팠으면~하는 생각이고 라라소아냐까지 가는 건 추천하지 않아

나를 사립 알베르게만 찾아다니게 한 Suseia 알베르게
수세이아 알베르게는 마을 입구 & 순례길에서 제법 벗어나 있어서 아픈 발을 이끌고 투덜거리며 갔어
이 때 알베르게 위치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음
그래도 그 단점을 커버하고도 넘칠 만큼 시설도 좋고 주인분도 친절하셨어
오픈시간을 기다리는 나한테 얼음물을 주셨는데 너무 시원해서 잔모양까지 기억남ㅎ
주요시설/순례길에서 15분 정도 벗어나 있어도 괜찮다면 묵는 걸 추천해
알베르게 이름인 Suseia는 순례자들끼리 사용하던 말인 "Ultreia et Suseia"에서 왔는데
Ultreia 울뜨레이아는 '더 멀리', Suseia 수세이아는 '더 높이라는 뜻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는 말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던 문구!

순례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들은 싸고 맛있다
특히 내가 다녀온 6~7월은 납작 복숭아의 철이라 눈에 보이면 사먹었어
식당이 마감해서 저녁으로 대충 때운 빵
이런 거 먹고 어떻게 순례길을 걷나요? -> 그러니까요 전 순례길 끝나고 6kg 가까이 빠졌어요
알베르게 내부에 감탄하며 일정을 끝내고 만나기로 한 한국인들이 다 모여서 저녁을 먹으러 갔어
내가 쏘려고 했는데 식당이 재료소진으로 마감했대; 17시 반인데.. 수비리에 식당이 얼마 없어서 그런 것 같으니 참고해 ㅠㅠ
다른 식당에 가자고 했는데 다들 피곤했는지 결국 그냥 빵집에서 해결했어 맛은 비추
저녁을 먹고 넷이서 알베르게에 모여 팜플로나에서 같이 숙박하자는 얘기와 앞으로의 일정얘기를 나눴어
+순례길 프랑스길에는 4개의 대도시가 있음
팜플로나 / 로그로뇨 / 부르고스 / 레온
관광이나 휴식의 목적으로 연박을 하는 순례자가 많아
이 때 나는 한국인 셰프분한테 미식의 도시,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 팜플로나에서 1시간 거리) 얘기를 듣고 셰프님이랑 같이 방문하기로 했어
또 팜플로나에선 넷이 같이 연박하기로 하고 에어비앤비로 숙소까지 잡았어
그런데 잠시 후에 커플분들이 빠지시겠다고 해서 당황함
얘기를 들어보니 여자분 무릎이 생각보다 더 안 좋아서 다음 날 팜플로나까지 올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더라고ㅠ
그런 상황에서 분위기에 휩쓸려서 덜컥 숙소 예약까지 해버리신거야
이미 결제한 숙소는 환불이 안 되어서 본인들 몫의 숙박비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건 경우가 아닌 것 같고 여자분 걱정도 되고 헤어지기도 아쉬워서 대책회의를 했음
사실 팜플로나로 점프하는게 제일 괜찮긴 한데
+ 점프 : 다음 목적지까지 걷지 않고 교통수단을 이용해 가는 것
여자분이 순례길을 점프없이 완주하는 게 위시리스트라 그건 꼭 해내고 싶다 하셨거든
남자친구분은 여자분 입장을 존중하고, 셰프님은 그냥 점프하자고 설득했고 (T 100% 나오실듯)
나는 버스타고 팜플로나 가서 쉬다가 무릎이 나아지면 수비리로 돌아와서 다시 걷는 건 어때!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음ㅋㅋㅋㅋ
갈등 마찰이 아니라 진짜 걱정되어서 여러 얘기를 했던거야 오해는 ㄴㄴㄴ
사실 이 때 내가 너무 계획없이 생각없이 걷고 있구나하고 속으로 반성했음
무려 2시간 정도 회의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커플 분들이 따로 최종 회의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어
너무 길게 쓴 것 같은데 이 커플은 내 순례길 최애요소 중 하나라 내 순례길에서 빼놓을 수 없어..
여자분이 내 학교 후배를 닮았고 둘이 알콩달콩하는게 너무 보기 좋아서 더 마음이 간 것 같음 ㅋㅋ
이것도 순례길이라 일어난 흔하지 않은 에피소드였던 것 걸까?싶네
ㅡㅡㅡㅡ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747.68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