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뚜벅이로 하는 제주도 여행은 처음이라 갈까 말까 많이 고민했는데 가서 어떤 여행을 하고 왔는지 천천히 써보려고 해
혹시 맛집이나 카페 정보를 보려고 왔다면 이 글은 전혀 도움이 안될거야
일정부터 써볼게 숙소는 함덕이었어 뚜벅이가 처음인 사람에게는 함덕을 숙소로 추천하는걸 많이 봤거든 나도 함덕으로 숙소를 잡았어
1일 함덕
2일 우도, 성산일출봉, 세화
3일 김녕, 국립제주박물관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인데다 혼자 간다고 생각하니 엄청 긴장됐어
시간을 최대한 넉넉히 잡고 나왔더니 탑승구 앞은 아직 사람이 별로 없었어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공항 여기저기 혼자 구경했어
비행기의 오른쪽 좌석에 앉으면 제주도가 창밖으로 보인다길래 앉아봤는데 정말이야 크고 작은 오름들과 파도가 점점 가까워졌어
사람들이 여기서 인증샷을 많이 찍더라고
도착하면 나도 찍어야지 했는데 막상 내 앞에 있는 걸 보니까 믿기지가 않았어 혼자 제주도에 오다니
다들 빠르게 나가는데 혼자 서서 감상의 시간을 가짐
건널 제, 고을 주
바다 건너의 고을
나도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도착했어
바다에서 해저의 마그마가 폭발해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제주도
이렇게 만들어진 곳은 세계적으로도 특별하대
제주도, 하와이 빅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쉬르트세이 이 정도라는데 자연을 연구하는 외국의 학자 중에는 제주도에 오는 게 평생의 꿈인 사람도 있다고 하니 우리는 모두 각자의 불행 속에 살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꿈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공항 안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돌하르방과 귀여운 인형이 같이 있네 기대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찍어봤어
제주도에는 돌하르방이 많은데 옛부터 내려온 오리지날은 삼성혈 입구에 있다고 본 것 같아
공항 입구에서 325번을 타면 함덕으로 바로 갈 수 있다고 해서 정류장에 왔는데 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버스가 곧 올거야
1시간을 달려서 함덕에 왔어
버스 안에서 창밖을 구경했더니 1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리네
함덕 바다를 본 순간부터 정말 제주도에 온 게 실감났어
함덕에 가면 서우봉을 올라가보라던데 서우봉이 어딜까 찾다가 오른쪽을 보니 저 멀리 정자가 하나 보이네 저기다!
함덕 해변에서 금방 알 수 있었어
난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서우봉에 올라가니 해가 저만큼 와있었어
아름다워 왜 서우봉에 올라가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서우봉에 오르기 전에 입구에서 표지판 설명을 읽었는데 여기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만든 동굴 진지가 여러개 남아있대
제주도는 전쟁 때 일본의 전초기지가 되었기 때문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서우봉에도 있었네
서우봉을 내려와서 다시 함덕 바다로 가는데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어
여몽연합군이 삼별초 항쟁 당시 배를 댄 곳이래
서우봉 설명 글에 마지막 격전지라고 되어있던데 이곳에 내렸구나
왜 함덕을 뚜벅이들에게 많이 추천하는지 알겠어
소품샵도 많고 식당도 많고 구경할 게 많더라고
예쁜 가게에 들어가서 구경하는데 그로밋이 귤을 안고 있네
엄청 귀엽지? 이건 찍어야지
역시 귤이 유명한 곳이라 소품샵에도 귤 관련 물품이 많았어
조선시대에는 귤이 아주 귀해서 임금님한테 올려지던 과일이지
귤을 볼 때마다 재밌는 일화가 생각나
귤은 귀한 과일이라 당시에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귤을 상품으로 주는 시험을 치르기도 했어 근데 한번은 시험 치르기 전에 유생들이 귤을 보고 와ㅏㅏ 귤이다ㅏㅏㅏ 하고 덤벼들어서 난장판이 되어버려서 ㅎㅎ
그 난리에 지금의 대학 총장인 대사성이 성균관에서 쫓겨난 일도 있다니 정말 이 얘기는 생각날 때마다 웃기고 어질어질해 ㅎㅎㅎ
구경하다보니 함덕에도 어느덧 밤이 찾아왔어 가게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혼자 다녀도 무섭지 않더라고 풍경을 더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어
숙소로 가는데 해변에서 가객 한분이 노래하고 있네
산울림의 회상을 부르시는데 이거 안들을 수 없지
묻지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좋은 노래를 듣고 박수치고 일어서려는데 다시 이어서 부르셔 먼지가 되어
아니 이거 가지 말라는 소리 아니야? 다시 앉아야지 듣고 가야지
어두워진 함덕 바다에 어울리는 노래였어
2일
오늘은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갈 예정이야
우도에 일찍 갔다가 나올거라 숙소에서 서둘러 나왔어
4분만 기다리면 버스가 온대
내가 있는 함덕에서 우도 가는 배를 탈 곳까지 1시간은 버스를 타야 해
성산항까지 가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 사진 좀 봐
왼쪽에는 저런 바다가 있고 오른쪽은 저 멋진 풍경이 있어
어떡해 제주 어떡할거야! 이렇게 예뻐서 정말 어떡할거냐고 ㅠㅠ
왼쪽을 봐야할지 오른쪽을 봐야할지 몰라서 정신없이 구경하는데 금세 1시간이 지나버렸네 아쉬워
이제 이걸 타고 우도로 갈거야
그리 멀지 않았어 배 타고 15분이면 우도에 도착했어
다들 바다를 구경하면서 서서 가시던데 난 바람이 차가워서 안에 들어가서 앉아 갔어 바닥이 아주 따뜻해서 여기서 자면 아주 잠이 솔솔 오...겠지만 안돼 난 우도를 들어 가야해
우도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고 우도봉에 내렸어 길게 이어진 길을 쭉 따라 계속 올라갔더니 이런 풍경이 나를 맞아줬어 더 올라가니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네
이때 내가 본 것들을 어떻게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바람에 눕는 풀, 여기저기 피어난 꽃들과 바다 위에 펼쳐진 그 거대한 윤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우도봉에서 내려와서 검멀레로 갔어
멀레는 제주어로 모래라는 뜻이래 순환버스 기사님이 설명해주셨어
검은모래라니 제주도는 화산섬이니 그 암석의 파편들이 모인걸까?
아름다워 정말로 거대한 자연이었어
검멀레는 마치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였어
내가 송강 정철같은 뛰어난 문장가였다면 이때 본 풍경을 덬들에게 글로 잘 얘기해줄텐데
검멀레를 보고 비양도와 하고수동도 갔어 우도는 처음이니 내릴 수 있는 정거장은 모두 내려서 다 보고 싶었어
가장 기대했던 서빈백사
에메랄드야 바다색이
검멀레가 장대한 서사시였다면 서빈백사는 해사한 서정시였어
서빈백사는 모래 해변이 아니라 홍조단괴라는 울퉁불퉁한 덩어리들이 해변을 이루고 있는데 이렇게 조성된 곳은 전 세계적으로 아주 드물대
모양도 색도 오묘하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버스에서 기사님이 해변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저분들은 지금 천연기념물을 밟고 계신거예요~ 하셔서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웃었어
우도 관광을 끝내고 다시 성산항으로 왔어
오전 일찍 갔는데도 5시간 정도 소요됐어
이제 성산일출봉까지 걸어갈거야 지도에는 30분 내외로 걸린다던데 난 30-40분 정도 걸어간 것 같아
원래 성산항에서 제주올레길1코스를 걸으면 성산일출봉까지 갈 수 있는데 인적이 드물더라고 큰길로 가기로 했어
계속 걸으니 어느덧 저 멀리 바다가 보여 오 다 온건가? 생각하며 길 모퉁이를 딱 돌았는데
낯선 도시의 길 모퉁이에서 신을 만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제주도의 신화는 하늘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다른 신화들과 다르게 세명의 신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왔다고 하던데 제주의 자연과 무척이나 어울려
이런걸 봤다면 신이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솟아나왔다는 얘기가 더 맞을거야
성산일출봉까지 보면 일정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남아서 세화까지 가보기로 했어 세화는 어떤 색일까 이름처럼 예쁜 바다겠지
....... 아닌가봐
아주 거친 풍랑 속에 서있는 기분이었어 세화는 만만치 않은 곳이구나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생각했는데 풍랑에 내던져진 느낌이었어 이날 바람이 아주 강했는데 그 영향이었을까 난 세화가 약간 무서웠어 그래도 실컷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어 201번은 자리도 많고 시간 간격도 짧고 나를 여기저기 데려다 준 기특한 애야
3일
마지막 날이야
원래 함덕을 산책하고 오후 일정으로 넘어가려 했는데 어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굉장히 예쁜 바다를 봤어 김녕이었어
계획을 바꿔서 그곳으로 갈거야
이때 날이 흐려서 비가 올 것 같았는데 마지막이니 가보기로 했어
아름다워 김녕은 내가 생각한 제주의 바다 그 자체였어
비가 약간씩 내리는 오전 8시의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어
제주 바다를 오로지 나혼자서 감상 할 수 있는 특권이잖아
이 시간만은 김녕을 내 것이라고 할래
아주 귀여운 친구를 발견했어
잘 숨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바위랑 색이 비슷하네?
너도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구나
이런 예쁜 바다가 집이라니 부러워
이제 제주도에서 마지막 일정을 할 시간이 왔어
함덕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겨서 다시 버스를 타러 가야지
내 꿈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팔도유람, 다른 하나는 전국의 모든 국립박물관을 가보는거야 섬의 박물관은 어떨까 기대가 커
상설전시관으로 들어왔더니 제주 모습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천장을 꾸며놨어 아름답지? 선명한 색이 지금도 떠오르네
전시관으로 들어가니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까지 제주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어
7번 뭐 같아? 동글한게 주먹밥 같이 생겼네
망치였어 저걸 망치로 썼더라고 저런 작고 귀여운 망치라니 주머니에 넣고 싶어
예전에는 박물관을 다닐 때 선사시대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어
돌뿐이라 힝 또 돌이야? 이런 생각만 했거든 우연히 본 영상에서 이 얘기를 들었어 난 그 후로 박물관에 있는 모든 전시품들을 재미로 나누지 않아
지금 현대인들을 숲에다 던져놓고 살아보라고 해보세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살아냈던게 구석기인들이고 신석기인들입니다
그들이 벌였을 생존에 대한 사투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
그 모습을 생각하면 그 시대를 다시 보게 될겁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제주의 지도 속 성산일출봉이야 신기해
아주 뾰족한게 험준하고 웅장해보여
그 옛날에도 성산일출봉은 굉장했나봐
상설전시관을 2시간 정도 보고 지하에 있는 실감영상실로 갔어
여기서 보여주는 영상이 총 3개인데 그게 모두 대단하다고 해서 꼭 보고 싶었거든 하나는 표해록이라는 책을 기반으로 만든 영상이고 나머지 둘은 제주의 자연을 영상으로 보여줬어 그 중 영주십경 이라는 영상이 굉장히 좋았어 사진으로 찍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켜는 순간 흐름이 사라질 것 같아서 사진은 찍지 않았어 영상이 끝났는데 감정이 들썩여서 쉽게 못 일어나겠더라고 만약 갈 일이 있다면 꼭 봤으면 해 그 감동을 덬들도 느껴봤으면 좋겠어
이렇게 제주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내 여행이 끝났어
정말 너무 재밌었어! 진귀한걸 잔뜩 봐서 공항으로 오는 동안도 아쉬워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
뚜벅이 여행은 생각보다 괜찮고 즐거웠어
나는 여유가 되면 이번엔 서쪽을 가보고 싶어
그곳엔 또 어떤 제주가 있을지 기대가 커
나는 재밌어서 써봤는데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