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의 처참한 현지 평점을 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한 것 같은데
굳이 이 상태에 대해서 추측해보자면
관객이 마음 둘만한 바닥을 다
치워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음
일단 '디거'의 마케팅은 일종의 사기임
이 영화가 사실 극중극 구조이며 톰 크루즈가
'디거 록웰'을 연기하는 배우 커티스를 맡는다는 건
공개 전까지 비밀에 부쳐져 알 수가 없었는데
이러면 본편을 보러 온 사람들은 매우 당황하게 됨
영화 안에 들어 있는 다른 작품을
실제 영화인 것처럼 광고한 거라서
우리는 사실 연극 Fossil Fools의 예고편을 보고
이 영화를 고른 셈임
이건 예술적으로는 엄청 재밌지만
매우 위험한 행동인데, 영화 마케팅이라는 건
관객을 골라내는 기능이 있기 때문임
이러면 톰 크루즈가 노역 분장하고 나와서
기득권을 비꼬는 블랙코미디 영화.. 정도로 알고 간
사람 모두가 크고 작은 봉변을 당하게 됨
기후 재난 블랙코미디에서 연극에 관한
메타드라마로 관람 시각을 바꾸어야 하니까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을 갑자기 먹게 되는 것
짜장면을 시켰는데 볶음밥이 나왔어요

더 큰 문제는 이 영화의 매우 비뚤어져 있고
자학적이며 염세적인 태도인데, '디거'는 모두를
공격하려 하고, 애정 있게 바라보는 대상이 없음
이 영화가 보수 우파에 대한 반감을 표하는
내용이라는 건 예고편만 봐도 알겠지만
사실 그것은 'Fossil Fools'의 줄거리이고
본편인 메타드라마 '디거'는 상당히 다름
진보 관객에게도 피난처를 두지 않고
디거의 입으로 '너희가 싼 연료와 비행기와
배송과 냉난방을 원했잖아!' 같은 소리를 하고
제작자는 '힙한 감독'이라는 이유로
감독(흑인 여성임)을 고용했다는 말을 입밖에 내고
이래저래 계속 나는 올바른 편에 있으니까
이 영화를 편하게 즐기면 된다는 좌석을
끝까지 계속 없애버림
자기 비판을 너무 잘해서 면피처럼 보이기도 하고
디거가 지나치게 캐리커쳐 아닌가 싶으면
주연배우 커티스가 직접 지적을 하고
정치풍자가 너무 단순한것 같다고 여길 즈음에
그걸로 감독이랑 배우가 싸우고
풍자나 예술로 세상이 과연 바뀔까
하는 질문에는 가히 최악으로 비관적인 대답
굉장히 얄밉고 재수없는 영화라는거

이냐리투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당신은 어느 단계에 있는가?
어느 단계의 Fossil Fools인가?
하고 계속해서 묻는데 이 과정에서
디거 록웰과 권력자들은 물론, 소비문명 전체
Fossil Fools를 만드는 예술가들과
이를 지원해주는 부자의 자본, 연극을 보는
객석의 사람들까지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넣음
백인 일색이었던 Fossil Fools의 내용과는 달리
마지막 연극의 막이 내려갈 때의 객석을 보면
다양한 인종과 세대가 섞인 관객들이
디거를 보고 손가락질하고, 그가 죽는 순간에
박수치고 환호하고 있음
이건 작은 심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Fossil Fools의 내용 대부분은 실제 역사이고
그를 심판한 관객들이 맞닥뜨리는 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미 처참하게 망해 있는 세상임
디거를 비웃고 그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능력은 별다른 관련이 없음
그 예술조차도 자본가가 돈을 대준 것이고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서 음악을 뚝 끊으면서
영화관 안에 있는 관객까지 습격 ㅠ
처음부터 끝까지 무서울 정도로
누구에게도 이쁨받을 생각을 안함

이렇게 쓰면 이냐리투가 미친 놈이지만
사실 최대 광기의 소유자는 톰 크루즈인데
젊은 크루즈의 필모 구성이 지금과
굉장히 달랐다는 건 다들 알거임
스콜세지, 베리 레빈슨, 올리버 스톤, 스필버그
롭 라이너, 닐 조던, 큐브릭, PTA, 마이클 만
그 많은 명감독들과 작업했던 야심있는 배우가
어디에 갔겠음? 겉으로는 휴업이었지만
사실 계속 액션배우 톰 크루즈 안에 있었지
계속 오토바이 타고, 총 쏘고, 날라다니면서
한 가지 근육만 사용하던 액션 배우의 연기 욕망이
고이고 고여서 압력솥 폭발처럼
한방에 터지니까 작품 하나로 한번에 해결하듯
노인 분장에 대머리에 남부 억양, 슬랩스틱
정치 풍자에 악역에 무대 연기에
롱테이크 10분짜리 독백 심지어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까지 연기하는 일이
벌어지는거 아닐까 추측해 봄 ㅠ

사실 디거, 커티스 역을 잘 할 수 있는
60대 남자 배우는 많을지도 모름
하지만 지금처럼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이런 내용으로 1억 5천만달러 예산을 받아
이만큼 말도 안 되는 거창하고 화려한 규모의 작품을
실행시킬 수 있는 60대 배우는 크루즈 뿐일거임
다른 유명하고 연기 잘하는 헐리우드 연기파
배우를 상상하면 제작비가 훨씬 낮을테고
그러면 우리가 보는 값비싼 '디거'는 아니지
전 지구적 스타인 크루즈의 흥행 및 예술 신용을 끝까지
땡겨쓰면 진짜 터무니없는 것도 성립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패키지나 마찬가지니까
제시 플레먼스가 Fossil fools에 한 일을
톰 크루즈가 디거에 한 셈임
어릴 적에 케니가 본 Fossil fools도 3명짜리
컬트 연극이고 그렇게까지 크게 만들 필요는 없었음
그런데 케니는 굳이 엄청난 돈을 들여 그렇게 했지
그럴 필요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와 너무 잘 어울린다는게
기가 막힌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