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배우가 매체에서 연기를 잘해도
무대가 처음이면 이 감정선을 하나의 선으로 유려하게 그려가는 집중력과 호흡이 아쉬울 때가 있어.
한 장면이 조금씩 길어지면 감정적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있으니까.
난 이게 이해되거든. 솔직히 감안하고 보는 편임. 아무래도 배우에게 체화되는데에 시간이 걸린단 말야.
무대 배우들이 매체에서 앵글 구도에서 연기하기 위해 적응하는 시간이 걸리듯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는 습관들이 있다고 생각함.
그런데 심은경 정말 무대 위에서 감정선이 상수나 하수로 빠지기 전까지 빈틈이 없어.
게다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주고 받는데에 익숙해.
타 배역에게 영향을 미치고 타 배역에게 영향을 받더라고
무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씬에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대사에 반응을 하더라.
계속 자신의 씬이 아님에도 다른 캐릭터의 말 하나하나에 미묘하게 감정이 변해.
관객의 시선이 다른 배우에게 있을 때에,
울컥하다가 마음을 다잡다가 경청하다가 다시 감정이 올라와서 마음을 다잡고 이런 류의 연기
오히려 돋보여지는 배우의 연기적 흐름들.
주고 받는 연기가 너무 좋고, 뒤로 갈 수록 극이 안깨진 선에서 애드립도 하고 자유롭더라.
중소극장으로 와도 잘 할만큼 연기가 꽤나 디테일해서 좋았어.
무대 안에서 통하는 언어를 이미 안다는 듯 연기하더라
첫 연극이니 다시 생각해보면, 자신이 가진 연습량이 보이는 연기였어. 정말.
170분 내내 에너지도 안떨어지고, 캐릭터가 깨지지도 않고
데뷔 무대 치고도 잘했지만, 감안하지 않고도 잘했어.
반야 아재의 은희(원작 바냐 아저씨의 쏘냐)가 엄청 귀엽고 짝사랑하고 가족을 짊어진 소녀인데
이렇게 귀엽고 순수하고 그럼에도 굳게 서는 캐릭터란 말야.
정말 객석에서 귀여움에 몸부림 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나는데 그것마저 귀여워진단 말야. ㅋㅋㅋ
마냥 귀여운 것도 아냐.
마지막엔 이보에게 지어진 정미소의 짐, 이보가 가족을 이고지고 살아가야 했던 짐을
소냐가 대신 지고 나아가는 가장의 느낌까지 내면서, 이보를 위로하더라고.
이보가 지키려 했던 가족과 삶을 은희가 이어 매는 마지막 나레이션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할까.
정미소를 이끌어가던 사람이 이보였다면 이제는 은희가 되었구나 라는게 딱 느껴졌어.
그 순간 가장으로 일어서 버린 은희. 아이러니하게도 은희를 일으킨 건 영란이가 준 찰나의 애정이었다.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영란의 포옹과 말에 너무나도 행복하던 은희가
이보에게 주어진 삶을 애써 응원하듯 포옹하며 같이 살아가잔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너무너무 너무 너무...
워낙 매체에서도 스펙트럼도 넓고 다양한 연기를 하는 배우지만
무대가 또 하나의 작업 공간이 되는 게 보이는 배우였어.
무대란 공간이 감정이 본연적이고 반대로 스테레오 타입도 있고, 매체에서 보지 못할 캐릭터들도 많다보니
연뮤덕으로서 연극 많이 했으면 좋겠어. 재능이 출중하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