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무에서 한국기업은 왜 주주환원 조심스러운지 시황분석 해줬었는데 재밌더라ㅋㅋㅋ
한국 기업들은 왜 이렇게 주주환원에 조심스러울까요? 통상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상충'이라고 얘기합니다마는, 저는 한국 경제가 만들어져온 근본적인 구조에서부터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들의 '주주환원계획'과 정부의 '거버넌스 개혁'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금 더 현명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1970년대의 두 사건에서부터 출발해 보겠습니다.
1) 현대중공업
한 사건은 조선소도 없이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과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으로 배를 수주해서 현대중공업을 만들었다는 현대 정주영 회장의 전설적인 협상입니다.
오늘날 이 전설적인 일화는 조선소도 없이 선박 수주를 따낸, 그리고 그 수주를 근거로 대출을 받아 조선소를 지은 전설적인 경영자의 업적으로 회자됩니다. 하지만 정주영 본인의 회고를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훨씬 건조합니다. 조선업은 현대가 하고싶어서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 정부가 지시한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온 정주영이 못 하겠다고 보고했을 때, 대통령은 배석한 부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주영 회장이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하든 도와주지 마시오." 당시 분위기에서 이는 기업인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정주영은 영국 수출보증국의 보증, 바클레이스 은행의 대출, 그리스의 수주를 받아와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요. 이 수주에서 그가 받아든 조건은 이랬습니다. 시장가격보다 낮은 선가, 적은 선수금, 배를 약속대로 인도하지 못하면 선수금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고, 배에 하자가 있으면 인수하지 않아도 되며 그동안 낸 돈은 전액 환불한다. 그리스 선주는 백사장 사진을 믿었던 게 아닙니다. 현대가 배를 짓지 못해도 밑질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주문을 준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현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시대의 대기업집단은 대체로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정부가 무엇을 할지 정하고, 기업가가 그것을 실행하도록 낙점되고, 실패의 대가는 낙점된 쪽이 치르는 구조였습니다.
2) 기업공개촉진법
1972년 66곳이던 한국의 상장기업은 6년 만에 356곳이 되었습니다. 이 배후에는 1972년 정부가 제정한 기업공개촉진법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액면 그대로 보면 1970년대에 한국 주식시장이 태동하기 시작한 이야기처럼 읽히지만, 실상은 좀 다릅니다.
1971년, 우리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400%에 육박했습니다. 자기 돈 1원에 남의 돈 4원을 얹어 굴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은행 문턱은 높았고, 모자란 돈은 사채시장에서 나왔습니다. 1972년 8월 3일, 정부는 긴급명령을 내려 기업과 사채권자 사이의 모든 채권채무 관계를 그날 자로 무효화했습니다. 이자 부담이 하루아침에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신고를 받아 보니 그렇게 무효가 된 계약의 크기는 당시 통화량의 80%에 달했습니다. 기업은 살아났고, 사채를 빌려주었던 개인들은 재산의 일부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넉 달 뒤,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됩니다. 법의 제정 이유서는 두 조치의 관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8·3조치로 채권채무를 조정했으니 이제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기업에 주식 공개를 명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974년 대통령 특별지시가 내려와 기한 안에 공개하지 않으면 금융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했고, 그래도 버티자 재무부는 소유를 내놓지 않는 기업의 명단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삼성이 먼저 무너졌고, 그 뒤로는 줄줄이였습니다.
부채비율 400%짜리 기업에게 자기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명단 공개라는 협박을 받고서야 움직였습니다.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상장 요건은 대주주 지분을 절반 아래로 낮추는 것이었고, 동시에 공모가는 액면가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되어 있었습니다.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넘겨야 했다는 뜻입니다.
사는 쪽도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예금 금리가 높던 시절에 주식을 살 사람이 줄을 설 리 없었고, 결국 팔리지 않는 물량은 증권회사와 은행이 떠안도록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시장이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356개 기업이 상장을 마치고 수십만 명이 주주가 되고 난 뒤인 1977년에야 증권관리위원회와 증권감독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상장기업에 감사받은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법은 그로부터 3년이 더 걸렸습니다. 주주를 먼저 만들고, 주주를 보호할 기구는 나중에 만든 것입니다.
이제 두 조치를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앞의 것은 개인이 기업에 빌려준 돈을 국가가 무효로 만든 조치입니다. 뒤의 것은 기업의 지분을 제값보다 싸게 개인에게 넘기도록 만든 조치입니다.
당시 정부가 기업공개의 목적으로 내건 표현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국민과 기업 간의 총화단합.
한국의 개인은 그렇게 주주가 되었습니다. 회사와 계약을 맺어서가 아니라, 국가가 기업에서 떼어 나누어 준 몫을 받아서였습니다.
3) 결론
한국의 ‘정치-기업-주주’의 관계설정은 1970년대에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습니다. “기업이 돈을 필요로 하고, 민간자본이 여기에 돈을 대준다. 그리고 그 대가로 기업의 잉여이익을 분배받는다” 같은 자율적인 계약이 시스템으로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주주환원도 “기업과 주주 간의 상호 계약보다는 기업이 벌어들인 몫을 국가적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가깝게 논의가 진행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1990년대를 거치며 이 시스템이 어떤 변곡점을 맞이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기업 거버넌스 문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사실 정부주도로 이뤄진 경제발전이란건 알았는데 저런거까진 몰랐는데 역사공부하는거같고 너무 재밌더랔ㅋㅋㅋㅋ
덬들도 시간날때 함봐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