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도체 호황은 축복이기만 할까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반도체 호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983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후 1999년부터 2025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영업이익이 293조 원이었다. 그런데 올 한 해에만 350조 원을 바라본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수요가 폭발하는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이 지배적인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본 생산을 끌어 올려야 한다.” (동아일보 7월 6일 인터뷰 기사)
긍정의 서사다. 지금의 이례적 반도체 호황이 축복이다, 인공지능 수요가 폭발해서 메모리 값이 뛰고, 한국 기업들이 그 수혜를 보는 파도의 정점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담긴 발언이었다.
정말 그뿐일까. 이 축복을 중국의 입장에서 뒤집어 보면 어떨까.
"중국의 D램 회사 CXMT(창신메모리)는 지난 10년간 54억 달러, 우리 돈으로 7조 원 넘는 적자를 냈다. 만성 적자 기업이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한 분기에만 48억 달러를 벌었다. 10년 치 적자를 거의 한 분기 만에 메운 셈이다. 그리고 이 회사의 메모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애플이 사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같은 호황이 달리 보인다. 이 이야기를 해보자.
■애플은 벌써 CXMT를 테스트 중?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이미 CXMT의 메모리를 중국 판매용 제품에 넣는 테스트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가 CXMT를 중국군 연계 기업 명단에 올려놓은 상황에서도, 애플은 백악관과 상무부를 상대로 이 회사 제품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직접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D램 가격이 너무 올라서다. AI 서버가 메모리를 빨아들이면서 올해 초 D램 가격은 껑충 뛰었다. 애플도 결국 전 제품군 가격을 올렸다.
그러니 최소한 중국에서 파는 제품만이라도 상대적으로 싼 중국산 메모리로 원가를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애플의 지난해 기업보고서(10-K)를 보면, 애플 매출의 15.5% 가 중국에서 나온다. 산술적으로는 딱 이만큼 한국 메모리 업체들과 마이크론의 LPDDR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진짜 문제가 아니다. 매출 몇 퍼센트 줄어드는 건 회복 가능한 손실이다. 진짜 무서운 건 다른 데 있다.
■망했어야 할 회사 CXMT
한국 메모리 반도체가 어떻게 세계 1위로 올라섰고, 3강(삼성, 하이닉스, 마이크론)을 빼면 경쟁자가 다 사라진 시장을 만들었을까. 치킨게임이다.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더 큰 공장을 짓고, 그 공장에서 더 싸게 더 많이 만들어서 경쟁자를 시장에서 밀어낸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엘피다 같은 회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다.
학습곡선 때문이다. 라이트의 법칙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도체는 더 빠른 반도체가 더 작다. 즉, 더 빠른 반도체를 만들면, 웨이퍼 한 장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찍어낼 수 있다. 기술에서 앞서면 더 빠르고, 더 많은 반도체를, 더 싸게 팔 수 있다.
이 공학적 현상은 잔인한 산업 구조로 이어진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반도체는 끊임없이 더 미세한 공정을 요구한다. 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투자와 생산 경험이 필요하고, 결국 기술과 자본을 동시에 갖춘 기업만 살아남게 된다.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면 자연히 강한 놈만 살아남는다. 이게 메모리 시장에 한 때 일본 기업만 해도 '7공주, 8공주'라고 부를 정도로 많았고 대만 업체도 수없이 많았는데, 2010년대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셋만 살아남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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