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중동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증시 랠리도 원화값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주가가 오를수록 한국 주식 비중을 줄여야 하는 외국인 기관투자자의 리밸런싱 매도가 늘며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있다. 원화가 ‘주가 급등의 역설’에 갇힌 셈이다.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7원 오른 1542.7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은 1543.0원에 출발한 뒤 장 초반 1550원 선에 근접했지만, 오후 들어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 속에 상승 폭을 줄였다. 전날 환율이 1541.8원에 마감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주간거래 종가 기준 1540원을 넘어선 데 이어 이날도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환율을 둘러싼 환경은 중동 전쟁 직후와 달라졌다. 국제유가는 나흘 연속 하락하며 미국과 이란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70달러 안팎까지 내려왔다. 당초 시장에선 전쟁 리스크 완화와 유가 안정이 원화값 반등(환율 하락) 재료가 될 것으로 봤지만, 실제 외환시장에서는 외국인 주식 매도와 강달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 기관투자자의 리밸런싱은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우는 ‘상수’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연기금·자산운용사 등은 국가별·자산별 목표 비중을 정해두고 운용한다. 한국 증시가 급등하면 포트폴리오 내 한국 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웃돌고, 이를 맞추기 위해 한국 주식을 일부 팔아야 한다. 주가가 오를수록 리밸런싱 매도 필요성도 커질 수 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판 뒤 원화를 달러로 바꾸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매수와 원화 매도 수요가 발생한다. 증시 랠리가 오히려 달러당 원화값 하락 압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851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달 들어 25일까지 누적 순매도 규모는 32조7053억원이다.
한국은행도 외국인 매도세가 6월 중순 한때 축소됐지만 국내 주가의 단기 변동성이 커지면 촉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외국인 리밸런싱이 끝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최근 주가가 조정을 보였다가 다시 급등하면서 오히려 리밸런싱 필요성이 더 커졌을 수 있고, 매도세가 언제 마무리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달러도 원화값을 짓누르고 있다. 지난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달러인덱스는 장중 101.6 수준까지 올랐다. 지난해 5월(101.79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61엔을 넘어선 점도 아시아 통화 전반에 약세 압력으로 작용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지난주 FOMC 회의 결과가 나온 뒤 달러가 모든 통화 대비 강력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면서도 “6월 들어 일본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빠졌지만 한국의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세 배가량 컸던 만큼 원화 약세 폭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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