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역사에서 역대급 부메랑으로 꼽히는 **'이중 주문(Double Booking)'**과 '재고 조정' 사태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2021년 코로나 특수 시기에 주문을 쏟아부었던 빅테크들이 2022~2023년에 이르러 "지금은 물건을 못 받겠다"며 발을 빼는 바람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사상 초유의 한파를 겪었습니다. 어떻게 진행된 일인지 핵심만 정리해 드릴게요.
1. 2021년: 공급 부족 공포가 만든 '허수 주문'
코로나19로 비대면(언택트) 수요가 폭발하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공격적으로 늘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 세계적인 공급망 대란이 겹치면서 빅테크 구매 담당자들 사이에 공포가 퍼졌습니다.
- 이중 주문(Double Booking): "지금 메모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서버 증설이 멈춘다"는 압박에 빅테크들은 실제로 필요한 물량이 100이라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 각각 150~200씩 중복으로 주문을 넣었습니다.
- 착시 현상: 메모리 제조사들은 주문서에 찍힌 엄청난 숫자를 보고 '역대급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 온 줄 알고 공장을 풀가동하며 생산량을 늘렸습니다.
2. 2022~2023년: "창고 꽉 찼으니 나중에 줄래요?"
2022년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닥치고 비대면 특수가 끝나자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이 둔화되었습니다. 서버 증설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 빅테크들은 이미 주문해 놓은 메모리를 두고 태도를 바꿨습니다.
- 인도 연기 (Delivery Push-out): 계약된 물량을 당장 가져가지 않고 "우리 창고에 재고가 너무 많으니 나중에 받겠다"며 수령 시기를 계속 뒤로 미루었습니다.
- 구매 축소 및 단가 재협상: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자 기존에 약속했던 가격으로는 사지 않겠다며 분기별 협상에서 구매 물량을 대폭 깎거나 가격을 낮췄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거래는 장기 공급 계약을 맺더라도 구체적인 인도 시기와 가격은 분기마다 다시 협의하는 구조가 많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이 허점을 이용해 법적 소송을 피하면서도 사실상 '주문해 놓고 제때 사지 않는' 방식으로 대처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일어난 반도체 잔혹사
빅테크들이 인도를 미루고 지갑을 닫아버리자, 팔리지 않은 반도체들이 고스란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창고에 쌓여 엄청난 '재고 자산'이 되었습니다. 덤핑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지면서 2023년 한 해 동안 SK하이닉스는 7조 원이 넘는 적자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4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며 사상 초유의 감산(생산 감축)을 단행해야 했습니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이 AI 열풍으로 엔비디아 칩이나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 불과 2~3년 전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는 정반대로 빅테크가 갑질을 하며 공급업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셈입니다.
주문해놓고 취소해버려서 망할뻔했는데
메모리업체들이 생산량 늘리고 싶을까 ㅋㅋ
갑질 당해도 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