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실리콘 밸리, 새만금엔 'AI 밸리'"…정의선-젠슨 황, 협력 '구체화' (종합)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의 치킨집에서 시작된 ‘깐부 회동’의 의미가 7개월 만에 더 뚜렷해졌다. 당시에는 엔비디아와 정의선 현대차그룹의 AI(인공지능) 시대 연대 가능성이 드러난 상징적 장면이었다면, 이번 양재 회동은 그 가능성을 모빌리티·로보틱스·AI 데이터센터·스마트팩토리·새만금 프로젝트로 세분화한 자리였다.
특히 이번 회동에서는 단순 차량용 반도체나 자율주행 기술을 넘어, 자동차를 만들고 움직이고 관리하는 전 과정에 AI를 심는 방향으로 협력이 확장됐다. ‘깐부’로 시작된 친밀감이 7개월 만에 현대차그룹의 미래차·로봇·제조 인프라 전략과 맞물리며 보다 실질적인 협력 구도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정 회장은 8일 현대차그룹 양재 사옥에서 황 CEO와 비공개 회의를 진행한 후 기자들과 만나 “사람과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면 엔비디아는 필수불가결하고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며 “이미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를 단순한 반도체 공급사가 아니라 미래사업의 핵심 파트너로 규정한 셈이다.
황 CEO는 지난 5일 한국을 7개월 만에 다시 찾아 국내 주요 기업들의 총수와 연이어 회동했다. 첫날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소(삼겹살+소맥) 회동'을 했고, 이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두산베어스 홈경기서 함께 시구와 시타를 선보이기도 했다. 정 회장과는 지난 7일 점심을 함께 했는데, 바로 다음날 현대차그룹 사옥에서 또 함께 한 것이다.
황 CEO가 한국 방문 기간 중 현대차그룹 양재 사옥을 찾은 것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에 머물지 않고 자동차, 로봇, 공장, 도시 인프라로 확장되는 시점에 현대차그룹은 가장 현실적인 실증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AI 기반 제조 혁신을 본격화하려면 엔비디아의 고성능 컴퓨팅과 AI 플랫폼은 사실상 피해가기 어려운 선택지다.
황 CEO는 “우리는 모빌리티와 자율 모빌리티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그리고 모빌리티를 어떻게 더 안전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또 우리는 로봇공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장 자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의 제조 시스템에 AI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양측 협력의 첫 번째 축은 자율주행과 미래 모빌리티다. 자율주행 기술은 차량 한 대의 센서와 소프트웨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방대한 주행 데이터, AI 학습 인프라, 시뮬레이션 검증, 실시간 판단 반도체가 모두 맞물려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SDV와 자율주행 고도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차량의 ‘지능화 속도’를 끌어올리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축은 로보틱스다. 엔비디아의 시뮬레이션과 AI 학습 플랫폼은 로봇이 현실에 투입되기 전 가상 환경에서 수많은 상황을 학습하고 검증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황 CEO는 “로보틱스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어떻게 더 깊이 협력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며 “지금은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 단계에 있지만, 산업화의 시간이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세 번째 축은 공장 그 자체다.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 협력이 차량이나 로봇 제품에 그치지 않고, 제조 시스템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AI가 생산 라인을 분석하고, 설비 이상을 예측하며, 부품 공급과 품질 관리를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이번 회동에서 새만금 프로젝트가 언급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날 회동에서는 새만금 프로젝트와 관련한 협력 논의가 오갔으며, 황 CEO는 새만금 AI 기술센터를 'AI 밸리(Vally)'라고 표현했다. 미국 첨단 기술 혁신의 상징적 지역인 '실리콘 밸리'에서 따온 것으로,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새만금 프로젝트가 AI 기술 집약체가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황 CEO는 “미래의 제조 시스템에 AI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우리는 멋진 새로운 도시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나는 그것을 AI 밸리라고 부른다. 정의선 회장이 새만금에 엔비디아를 구축하도록 나를 초대했다”고 말했다.
새만금 AI 기술센터 구상은 양측 협력이 실제 인프라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접점이다. AI 모빌리티와 로봇을 고도화하려면 결국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시키고, 검증할 거점이 필요하다. 새만금이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AI 데이터센터, 로봇 실증, 미래 제조 인프라가 결합된 공간으로 설계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AI 전환 속도는 한층 빨라질 수 있다.
정 회장은 “저희는 새만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투자를 더 해나갈 것이다. AI와 로보틱스, 새만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드렸다”며 “엔비디아가 함께 조인해서 더 완벽한 AI와 로보틱스, 빅데이터센터 시스템을 같이 만드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