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쟁이가 바라보는 채권시장 얘기, 출발합니다.
앞선 글에서 ‘AI는 자신의 금리를 만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AI에 대한 기대가 빅테크 주가를 끌어올렸고, 그 주가는 빅테크의 투자 여력을 키웠으며, 늘어난 자금수요가 장기금리에 상승 압력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 금리를 받아내는 쪽 ― 채권시장 ― 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요?
한때 채권시장에는 안정장치가 있었습니다. 금리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면 어디선가 매수가 들어왔습니다. 쿠폰이 충분히 두툼해진 시점에서, 부채를 매칭해야 하는 보험사·연기금이 들어왔고, 자산배분상 채권 비중을 늘려야 하는 펀드도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만기보유를 전제로 들어왔기 때문에 채권의 펀더멘털 ― 만기 시 받기로 한 약정 현금흐름 ― 이 가격의 바텀라인을 단단히 받쳐주었습니다. 그래서 금리가 일정 구간을 넘으면 채권시장 스스로 자기를 진정시키는 메커니즘이 있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매수가 들어오고, 매수가 들어오면 가격이 받쳐지고, 가격이 받쳐지면 금리도 어느 선에서 멈췄습니다. 이건 채권이 가지는 견고한 특징입니다. (주식의 저가매수가 배당이나 밸류에이션 같은 나약한 가정에 기대야 한다는데 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풍경은 이제 옛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채권투자자들은 ‘금리가 매력적인가?’가 아니라, ‘금리가 더 오를까?’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회계입니다. 회계기준이 바뀌면서, 채권은 더 이상 회계장부 밖에서 조용히 만기를 기다리는 자산으로 남기 어려워졌습니다. 분류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금리가 움직일 때마다 평가손익·자본·위험관리 지표에 더 자주 드러나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사례를 보겠습니다. 2018년 1분기, 미국 금리가 상승하자 상업은행권 전체의 누적기타포괄손익은 약 260억 달러 감소했습니다. 같은 분기 상업은행 순이익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였습니다. 금리 변동이 한 분기 이익의 절반을 평가손으로 지워버린 겁니다. 일부 회계분류에 한정된 현상이긴 합니다만, 한때 잠잠하던 자산이 이제는 어디선가 흔들림을 만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두 번째 이유인 자본건전성 규제가 끼어듭니다. 채권 평가손실이 단순한 장부상의 숫자가 아니라, 자본을 갉아먹고 추가적인 위험자산 투자를 가로막는 ― 어쩌면 자본확충까지 필요하게 만드는 ― 까다로운 항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는 이 메커니즘이 극단으로 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SVB의 미실현 채권손실은 그 자체로는 회계장부상의 숫자였지만, 그 손실이 실현되어 자본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뱅크런을 불렀습니다. 장부의 숫자가 실제 행동을 만든 셈입니다. SVB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 은행권 전반에서 자사주 매입 의지, M&A 욕구, 일부 기관의 차입 능력에까지 비슷한 압력이 보고되었습니다.
종합하면, 채권의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의 채권은 fixed income, 즉 약정된 고정수익을 받는 자산이었습니다. 매수의 근거는 ‘금리 수준이 매력적인가’였고, 만기보유가 전제였습니다. 지금의 채권은 그런 자산이 아닙니다. 매수의 근거는 ‘금리가 더 오를 것인가’가 되었고, 매매 가능성이 전제가 되었습니다. 즉, 채권이 만기보유하는 자산에서 듀레이션 방향성을 거래하는 자산으로 이동한 겁니다.
어제 글에서 본 그림과 이번 글에서 본 그림을 겹쳐보면 이렇게 됩니다. AI는 자기 금리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 금리를 받아내는 채권시장은 예전처럼 완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금리는 만들어지는 동시에 증폭됩니다. 금리가 일정 수준을 넘는 순간, 채권시장은 매수로 진정시키는 게 아니라 듀레이션 축소로 매도에 동참합니다. 그게 다시 금리를 밀어올리고, 밀어올려진 금리는 다시 AI 밸류에이션의 할인율로 돌아옵니다.
지난 글에서 임계점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채 30년물 5%, 10년물 4.5%, 한국 국고채 5년물 4%는 추세 전환을 걱정하게 만들고 의사결정을 주춤거리게 만드는 수준이지, 루프 역전을 강하게 얘기할 수준은 아니라고요. 그 진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제 금융시장은 만기의 낙원을 잃어버렸고, 낙원 밖 세계에서 금리는 더 거칠게 오르내리고 있고, 그 거친 흐름은 주식의 스윙도 키우고 있습니다. 오래된 차트가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트럼프는 앞서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란의 최근 협상 제안에 대해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고,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공격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국제유가는 고공행진 중입니다. 군사 공격 보류 발언 이후 상승폭을 일부 줄였지만, 여전히 브렌트유도 112.10달러, WTI가 108.66달러 선을 기록 중입니다. 미 재무부는 기존 면제 조치가 만료된 러시아산 원유의 판매를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시장 심리 진정에 크게 도움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채권시장도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지난해 2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30년물 국채금리도 5.13%까지 올라 최근 1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영국과 일본 등 주요국 장기 국채금리 역시 수십 년 만의 고점권에서 움직이며 글로벌 채권시장 전반에 부담을 줬습니다.
금리 상승은 특히 기술주에 직격탄이 되었습니다. 최근 AI 기대감과 견조한 기술기업 실적을 바탕으로 급등했던 나스닥은 이틀 연속 조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반도체주가 부진했습니다. 씨게이트 CEO가 JP모건 콘퍼런스에서 “새 공장을 짓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언급하면서 AI 인프라 확대를 둘러싼 공급망 병목 우려가 재부각됐습니다. 씨게이트 주가는 6.9% 하락했습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6.0%), 웨스턴디지털(-4.8%), 샌디스크(-5.3%), 엔비디아(-1.3%), 브로드컴(-1.1%) 주가도 하락했습니다.
시장은 20일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고금리와 고유가가 동시에 부각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실적이 AI 랠리의 정당성을 다시 확인시켜줄지, 아니면 차익실현의 빌미가 될지가 이번 주 시장의 핵심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