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철도公 줄줄이 정규직 전환…"10만명 전수조사해야"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조사해보니
토지주택公·철도公 등 `빅4` 1만2천명 정규직으로 전환
마사회는 실적 부풀리려 무기계약직 대거 전환 의혹 지방공기업은 감시 사각지대
전문가 "빠짐없이 전수조사
재발막을 제도장치 만들어야"
◆ 공공기관 고용세습 논란 ◆
서울교통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드러난 고용세습 채용 비리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 산하 공기업과 지방 공기업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한 공공기관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수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규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야 3당의 공조로 추진 중인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추가 의혹이 드러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21일 매일경제가 고용노동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 실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인원수가 가장 많은 공공기관은 한국마사회(5561명)로 집계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2997명), 한국철도공사(1825명), 인천국제공항공사(1648명), 부산대병원(1269명) 순이었다. 지방 공기업은 광주광역시도시철도공사가 296명으로 가장 많았고 안산도시공사 159명, 전주시시설관리공단 127명 등 순이었다. 부문별로 보면 공공기관이 3만5059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앙부처가 1만7406명, 교육기관 1만5597명, 자치단체 1만3259명, 지방공기업 3722명 순이다. 이 수치는 고용부가 지난해 6월 말 공공부문 비정규직 특별실태조사를 통해 파악된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전환이 완료된 인원을 반영한 결과다. 전환 인원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에 준하는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을 포함한 수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이후 지난 8월까지 공공부문 기관 853곳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41만6000여 명 중 8만5000여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거나 전환이 확정됐다. 지난달 27일 기준으로는 전환 완료된 인원이 10만명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면서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공공기관 내 채용이 세습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기조를 정해놓고 공공기관에 빠른 실행을 압박하자 이를 이용해 기존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취업이 쉬운 비정규직으로 친인척이나 지인을 밀어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인이 없고 감시가 소홀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급박하게 정부 정책이 진행돼 채용 과정에서 허점이 노출되는 건 당연하다"며 "정부가 빌미를 준 측면도 있는 만큼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규직 전환 인원이 많은 공공기관은 이미 잡음이 불거져 전수조사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전환 인원이 가장 많은 한국마사회는 고용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주로 대학생이 많이 지원하는 아르바이트 자리인 경마지원직까지 정규직에 준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 중 네 번째로 전환자가 많은 인천국제공항공사도 협력사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채용비리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지난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가족을 채용하거나 직원을 바꿔치기 하는 등 채용비리가 15건 이상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공기업의 경우 전환 인원수는 적지만 고용부 등 중앙부처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역시 감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친인척 고용 세습의 중심에 서 있는 서울교통공사는 고용부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이 64명밖에 안 되지만 지난 3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258명은 해당 수치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은 서울교통공사 통합 전인 지난해 1월 전원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거쳤기에 같은 해 6월에 실시한 특별실태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고용부 측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는 무기계약직도 정규직으로 보기 때문에 기존의 무기계약직을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수치에서 빠져 있다"고 전했다.
친인척 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는 등 정부가 제도적으로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아무 준비 없이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제도를 채택해 친인척이나 지인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거나 마찬가지"라며 "민주노총과 같은 강성 노조가 있는 곳에서 유사 사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수조사를 시행할 때 정부의 명확한 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불거져 나오는 채용비리 의혹을 보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사익을 추구했던 행위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며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전수조사가 이뤄진다면 정부가 정확한 지침과 프로세스를 내려줘야 조사가 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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