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이향
우리 대부분은 세종의 큰아들이자 조선 5대왕 문종에 대해서 깊이 있게 모른다.
단지 문종의 바로 아래 동생인 수양대군 쿠데타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당한 단종의 아버지 정도로나 기억한다.
문종의 재위기간은 2년 정도였다. 그 기간에 후세에 주목받을 만한 역사적으로 큰 사건도 없었다. 당시는 세종의 태평성대는 문종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문종이 너무 병약해 일찍 죽어버려 세종의 뛰어난 업적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세종이 병약한 문종보다는 건강한 수양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은 것을 세종의 최대 실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병약한 왕이 전혀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온 문종에 관한 이미지는 체구가 작고 말라 병약한 모습이었다. 또 유약한 심성을 가져 위풍당당하게 그려진 바로 아래 동생 수양대군에게 항상 두려움을 느끼며 주눅이 든 모습으로 수양의 기분을 맞추기 의해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에는 정반대이다. 수양이 문종 세자시절부터 문종의 눈에 들기위해 갖은 애를 다쓴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를 만든 작가들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제대로 한 번 읽어는 보았는 지 의심스럽다.
물론 드라마틱한 수양 일대기를 극화하면서 주인공 수양을 카리스마 있게 그리려면 상대적으로 문종을 병약한 이미지로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문종에 대한 왜곡이 너무 심했다
조선실록에 나오는 문종의 이미지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거와는 전혀 다르다.
문종은 체구가 건장하고 키도 훤칠한 지금으로 보면 엄청난 꽃미남에 엄친아였다.
문종이 젊은 세자 시절부터 수염이 길고 멋드러지게 난 관우를 닮은 외모빨로 중국 사신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었다 한다.
문종의 그런 외모 뿐 아니라 생각도 깊고, 아는 것도 많고,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해서 중국 사신들이 오면 젊은 세자와 토론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이런 조선의 젊은세자에 대한 소문이 중국까지 퍼져나가서 중국과의 외교와 무역등이 세자빨로 활발해졌음이 실록에 적혀있다.
문종은 우리나라 최초 한류를 연 당시에는 요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문종의 출생 배경도 지금까지 어떤 왕자보다도 출중한 명분을 가진 적장자였다. 그런 이유로 어려서 부터 문종의 존귀함은 하늘을 찌르듯 높여져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성군인 세종조차도 적장자로 태어나지는 못했다.
문종의 외아들인 단종이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라서 문종이 아주 젊은 나이에 단명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문종이 승하할 때 나이는 39로 당시 나이로는 적지 않는 나이였다.
문종은 열살의 어린 나이로 세자에 올라 무려 29년 동안을 세자로 보낸다.
사실 세종대왕의 치세기간이 31년6개월이나 되었다. 그 기간 중 문종이 세자로만 무려 29년을 보냈으니 세종의 치적은 문종과 공동으로 이룬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세종 병치레가 아주 심했던 세종 후기 치세는 솔직히 문종의 치세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종은 그런 과도한 업무를 긴 세자시절 특별한 건강 문제없이 모두 소화해냈다.
사실 세자시절 문종은 병약함 보다는 세종과 비슷하게 일중독에 가깝게 일에 몰두 했다.
문종은 세종대왕을 쏙 빼닮아서 학문에 대한 깊이가 상당히 깊었다. 병서와 다른 분야에서도 업적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 창제에도 문종은 깊숙히 관여했었다. 장영실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측우기도 사실은 문종이 세자시절에 낸 아이디어 였다고 한다.
문종은 세종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왕이었지만 실제로는 국방에도 관심이 아주 많은 지도자였다.
실제로 세종시대 개발한 신기전과 화차, 화포등 화약무기에 관해서는 문종이 기획 개발 설계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다.
그리고 군제 개편 또한 관심이 많아서 4군 6진 개척 또한 세자시절 문종이 주도했다
실록에 세자시절 문종과 수양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문종이 병권에도 얼마나 전문가였는가를 보여 준다.
문종이 수양에게 말했다
"나의 기재는 제갈량에 비해서 조금 모자란 수준인 듯 하다"
수양대군은 그에 답했다
"형님이 제갈량보다 못할 게 뭐 있습니까?"
문종은 세자로서 보기 드물게 효자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세종장례에 혼신을 다해 유교적 장례의식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것 때문에 문종이 큰 병을 얻었을 것이라는게 역사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처럼 그의 엄친아적 성향은 사실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최고였다.
문종은 수양이나 동생들에게도 자신만만한 형이었다.
그래서 문종이 세자시절이나 왕이 되어서도 동생들을 전혀 견제하지 않는다. 문종이 보기에는 수양등의 동생들은 이쁘고 착한 동생들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수양과 안평은 간혹 권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중신들이 왕권 강화를 위해서 수양과 안평을 견제하기를 요구하고 문종에게 결단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종은 자신만만했다. 세종은 왕이 되어서도 두 형님을 끝까지 잘 모셨는데 문종은 동생들인 그들을 내가 충분히 제어 할 수 있는데도 그들을 돌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종은 "내가 이렇게 건재한데 지깟놈들이.... " 하는 생각으로 중신들의 요구를 다 무시했다. 게다가 수양에게는 어느 정도 조정 일을 맡기기까지 했다.
물론 문종의 이런 생각이 후에 엄청난 비극을 불러왔지만 당시 문종의 생각은 올바른 것이었다.
어린 단종을 남겨 놓고 갑작스레 문종이 승하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문종 독살설도 나온다.
문종 앞에서는 철저하게 발톱을 숨긴 늑대같은 수양과 안평을 남겨 놓고 말이다
이처럼 문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처럼 절대 병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세종승하보다 문종승하 때 더 슬퍼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시대에도 백성들이 문종의 치세를 잘 알았던 듯 하다.
만일 문종이 조금 더 조선의 5대왕으로서 보위에
있었다면 우리는 로마의 5현제 시대처럼 연속적으로 세종대왕과 같은 명군이 탄생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자질을 가진 문종에게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문종 그의 가정사가 정말로 불운했다.
문종은 처 복이 지지리도 없었다.
문종은 세 명의 세자빈을 모두 잃었고 문종이 승하할 때까지 홀아비 임금으로 삶을 살았다.
첫째 세자빈의 경우는 못생겼다 해서 문종이
마음을 주지 않자 세자빈이 문종의 마음을 얻기위해 궁녀신발을 태워 문종에 먹이는 등 겉돌다가 세자빈에서 쫒겨나고 만다.
두번째 세자빈은 인물은 괜찮았지만 문종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 세자빈은 궁궐야사에 초유의 이름을 올리고 만다.그녀는 궁녀와 동성애로 쫒겨난 순빈 봉씨이다.
여기까지는 문종보다 세종의 책임이 크다. 문종 의지가 아닌 세종의지로 세자빈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 세자빈은 문종이 총애한 후궁 중 선택했으나 단종을 낳고 바로 직후에
사망하게 된다.
이처럼 문종은 세명의 부인과 비극적으로 헤어졌고 그 이후로는 혼자 살았다.
문종은 왕으로 즉위한 후로도 결혼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재위할 동안 한 번도 왕비를 두지 않은 유일한 왕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종이 즉위한 후 그를 보호하며 수렴청정을 할 왕실의 웃어른이 없어서 왕권이 약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문종의 부부관계만큼은 또 다른 성(?)군인 아버지 세종을 닯지 못했다.
결과론적이지만 또 다른 문종의 문제는 자신의 형제들인 수양, 안평대군들의 정치참여를 막지않아서 그들의 세력을 키워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자신의 아우인 수양대군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일은 문종이 오래 살아 그런 비극이 없었다면 세종이 양녕이나 효령에게 한 것 처럼 역사적 미담으로 남을 일이다.
왕이 동생을 죽이지 않고 잘 돌보았다는 것은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다.
문종에 관한 글이 세종 못지 않은 성군이 될 수도 있었던 문종이향에 대해서 새롭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음 한다.^^♡
출처 역사당 밴드
세조는 문종 살아 생전 꼼짝도 못함
드라마에서 문종을 세조에게 벌벌떠는 왕으로 그려놔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은게 사실ㅜㅜㅜㅜ
위글대로 세종의 건강이 좋지않았던 세종 후기 쯤에는 문종시대라고 봐도 무방함
특히나 단종은 장자의 장자(세종도 셋째,문종도 셋째의 첫째이므로)라서 정통성이 엄청났는데 열등감으로 뭉쳐진 세조새끼가 그런식으로 내쳐버림ㅜㅜㅜㅜㅜ
문종의 건강은 연이은 3년상때문에 많이 안좋아졌다고 보는 시각도 많음.
위에 왕비를 못들인 이유도 연이은 3년상때문에 결혼을 할수없어서가 맞을듯ㅎㅎㅎ
결론은 문종은 병약하고 힘없는 왕이 아니였다는것
본인이 그렇게 병약하고 힘없는 사람으로 그려진 드라마를 보고 또 그렇게 믿는 사람들때문에 저 위에서도 억울하실듯ㅜㅜ
우리 대부분은 세종의 큰아들이자 조선 5대왕 문종에 대해서 깊이 있게 모른다.
단지 문종의 바로 아래 동생인 수양대군 쿠데타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당한 단종의 아버지 정도로나 기억한다.
문종의 재위기간은 2년 정도였다. 그 기간에 후세에 주목받을 만한 역사적으로 큰 사건도 없었다. 당시는 세종의 태평성대는 문종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문종이 너무 병약해 일찍 죽어버려 세종의 뛰어난 업적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세종이 병약한 문종보다는 건강한 수양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은 것을 세종의 최대 실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병약한 왕이 전혀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온 문종에 관한 이미지는 체구가 작고 말라 병약한 모습이었다. 또 유약한 심성을 가져 위풍당당하게 그려진 바로 아래 동생 수양대군에게 항상 두려움을 느끼며 주눅이 든 모습으로 수양의 기분을 맞추기 의해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에는 정반대이다. 수양이 문종 세자시절부터 문종의 눈에 들기위해 갖은 애를 다쓴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를 만든 작가들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제대로 한 번 읽어는 보았는 지 의심스럽다.
물론 드라마틱한 수양 일대기를 극화하면서 주인공 수양을 카리스마 있게 그리려면 상대적으로 문종을 병약한 이미지로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문종에 대한 왜곡이 너무 심했다
조선실록에 나오는 문종의 이미지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거와는 전혀 다르다.
문종은 체구가 건장하고 키도 훤칠한 지금으로 보면 엄청난 꽃미남에 엄친아였다.
문종이 젊은 세자 시절부터 수염이 길고 멋드러지게 난 관우를 닮은 외모빨로 중국 사신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었다 한다.
문종의 그런 외모 뿐 아니라 생각도 깊고, 아는 것도 많고,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해서 중국 사신들이 오면 젊은 세자와 토론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이런 조선의 젊은세자에 대한 소문이 중국까지 퍼져나가서 중국과의 외교와 무역등이 세자빨로 활발해졌음이 실록에 적혀있다.
문종은 우리나라 최초 한류를 연 당시에는 요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문종의 출생 배경도 지금까지 어떤 왕자보다도 출중한 명분을 가진 적장자였다. 그런 이유로 어려서 부터 문종의 존귀함은 하늘을 찌르듯 높여져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성군인 세종조차도 적장자로 태어나지는 못했다.
문종의 외아들인 단종이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라서 문종이 아주 젊은 나이에 단명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문종이 승하할 때 나이는 39로 당시 나이로는 적지 않는 나이였다.
문종은 열살의 어린 나이로 세자에 올라 무려 29년 동안을 세자로 보낸다.
사실 세종대왕의 치세기간이 31년6개월이나 되었다. 그 기간 중 문종이 세자로만 무려 29년을 보냈으니 세종의 치적은 문종과 공동으로 이룬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세종 병치레가 아주 심했던 세종 후기 치세는 솔직히 문종의 치세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종은 그런 과도한 업무를 긴 세자시절 특별한 건강 문제없이 모두 소화해냈다.
사실 세자시절 문종은 병약함 보다는 세종과 비슷하게 일중독에 가깝게 일에 몰두 했다.
문종은 세종대왕을 쏙 빼닮아서 학문에 대한 깊이가 상당히 깊었다. 병서와 다른 분야에서도 업적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 창제에도 문종은 깊숙히 관여했었다. 장영실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측우기도 사실은 문종이 세자시절에 낸 아이디어 였다고 한다.
문종은 세종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왕이었지만 실제로는 국방에도 관심이 아주 많은 지도자였다.
실제로 세종시대 개발한 신기전과 화차, 화포등 화약무기에 관해서는 문종이 기획 개발 설계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다.
그리고 군제 개편 또한 관심이 많아서 4군 6진 개척 또한 세자시절 문종이 주도했다
실록에 세자시절 문종과 수양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문종이 병권에도 얼마나 전문가였는가를 보여 준다.
문종이 수양에게 말했다
"나의 기재는 제갈량에 비해서 조금 모자란 수준인 듯 하다"
수양대군은 그에 답했다
"형님이 제갈량보다 못할 게 뭐 있습니까?"
문종은 세자로서 보기 드물게 효자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세종장례에 혼신을 다해 유교적 장례의식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것 때문에 문종이 큰 병을 얻었을 것이라는게 역사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처럼 그의 엄친아적 성향은 사실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최고였다.
문종은 수양이나 동생들에게도 자신만만한 형이었다.
그래서 문종이 세자시절이나 왕이 되어서도 동생들을 전혀 견제하지 않는다. 문종이 보기에는 수양등의 동생들은 이쁘고 착한 동생들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수양과 안평은 간혹 권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중신들이 왕권 강화를 위해서 수양과 안평을 견제하기를 요구하고 문종에게 결단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종은 자신만만했다. 세종은 왕이 되어서도 두 형님을 끝까지 잘 모셨는데 문종은 동생들인 그들을 내가 충분히 제어 할 수 있는데도 그들을 돌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종은 "내가 이렇게 건재한데 지깟놈들이.... " 하는 생각으로 중신들의 요구를 다 무시했다. 게다가 수양에게는 어느 정도 조정 일을 맡기기까지 했다.
물론 문종의 이런 생각이 후에 엄청난 비극을 불러왔지만 당시 문종의 생각은 올바른 것이었다.
어린 단종을 남겨 놓고 갑작스레 문종이 승하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문종 독살설도 나온다.
문종 앞에서는 철저하게 발톱을 숨긴 늑대같은 수양과 안평을 남겨 놓고 말이다
이처럼 문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처럼 절대 병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세종승하보다 문종승하 때 더 슬퍼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시대에도 백성들이 문종의 치세를 잘 알았던 듯 하다.
만일 문종이 조금 더 조선의 5대왕으로서 보위에
있었다면 우리는 로마의 5현제 시대처럼 연속적으로 세종대왕과 같은 명군이 탄생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자질을 가진 문종에게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문종 그의 가정사가 정말로 불운했다.
문종은 처 복이 지지리도 없었다.
문종은 세 명의 세자빈을 모두 잃었고 문종이 승하할 때까지 홀아비 임금으로 삶을 살았다.
첫째 세자빈의 경우는 못생겼다 해서 문종이
마음을 주지 않자 세자빈이 문종의 마음을 얻기위해 궁녀신발을 태워 문종에 먹이는 등 겉돌다가 세자빈에서 쫒겨나고 만다.
두번째 세자빈은 인물은 괜찮았지만 문종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 세자빈은 궁궐야사에 초유의 이름을 올리고 만다.그녀는 궁녀와 동성애로 쫒겨난 순빈 봉씨이다.
여기까지는 문종보다 세종의 책임이 크다. 문종 의지가 아닌 세종의지로 세자빈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 세자빈은 문종이 총애한 후궁 중 선택했으나 단종을 낳고 바로 직후에
사망하게 된다.
이처럼 문종은 세명의 부인과 비극적으로 헤어졌고 그 이후로는 혼자 살았다.
문종은 왕으로 즉위한 후로도 결혼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재위할 동안 한 번도 왕비를 두지 않은 유일한 왕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종이 즉위한 후 그를 보호하며 수렴청정을 할 왕실의 웃어른이 없어서 왕권이 약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문종의 부부관계만큼은 또 다른 성(?)군인 아버지 세종을 닯지 못했다.
결과론적이지만 또 다른 문종의 문제는 자신의 형제들인 수양, 안평대군들의 정치참여를 막지않아서 그들의 세력을 키워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자신의 아우인 수양대군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일은 문종이 오래 살아 그런 비극이 없었다면 세종이 양녕이나 효령에게 한 것 처럼 역사적 미담으로 남을 일이다.
왕이 동생을 죽이지 않고 잘 돌보았다는 것은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다.
문종에 관한 글이 세종 못지 않은 성군이 될 수도 있었던 문종이향에 대해서 새롭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음 한다.^^♡
출처 역사당 밴드
세조는 문종 살아 생전 꼼짝도 못함
드라마에서 문종을 세조에게 벌벌떠는 왕으로 그려놔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은게 사실ㅜㅜㅜㅜ
위글대로 세종의 건강이 좋지않았던 세종 후기 쯤에는 문종시대라고 봐도 무방함
특히나 단종은 장자의 장자(세종도 셋째,문종도 셋째의 첫째이므로)라서 정통성이 엄청났는데 열등감으로 뭉쳐진 세조새끼가 그런식으로 내쳐버림ㅜㅜㅜㅜㅜ
문종의 건강은 연이은 3년상때문에 많이 안좋아졌다고 보는 시각도 많음.
위에 왕비를 못들인 이유도 연이은 3년상때문에 결혼을 할수없어서가 맞을듯ㅎㅎㅎ
결론은 문종은 병약하고 힘없는 왕이 아니였다는것
본인이 그렇게 병약하고 힘없는 사람으로 그려진 드라마를 보고 또 그렇게 믿는 사람들때문에 저 위에서도 억울하실듯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