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종주국’ 프랑스의 그늘에 가려졌던 미국과 중국이 명품 기업 사냥에 나섰다. 오랜 역사와 유산을 자랑하는 유럽 명품 브랜드를 사들여 ‘명품 제국’을 키우고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다는 전략이다.
마이클 코어스 제품 광고/마이클 코어스 제공지난달 미국 의류 브랜드 마이클 코어스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를 21억달러(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클 코어스는 지난해 영국 구두 브랜드 지미 추를 인수한 데 이어 베르사체까지 사들이면서 유럽 명품 브랜드 2개를 확보했다. 이번 인수가 완료되면 모회사 이름도 마이클 코어스 홀딩스에서 ‘카프리 홀딩스’로 바꿀 예정이다. 마이클 코어스는 "고급 휴양지인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1981년 뉴욕 출신 의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가 세운 마이클 코어스 홀딩스는 지난해 44억9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만 놓고 보면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보다 많지만 소비자가 인식하는 마이클 코어스는 명품이 아닌 중고가(affordable luxury)다. CNN은 "쇼핑몰 매장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마이클 코어스가 이탈리아 장인정신이 깃든 명품 베르사체 인수로 ‘미국의 최초 명품 그룹’으로의 도약을 꿈꾼다"고 보도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마이클 코어스는 라이벌 미국 패션 브랜드 코치 인수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마이클 코어스가 베르사체와 코치를 성공적으로 인수한다면 세계 1위 명품그룹 LVMH와도 경쟁할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치도 최근 케이트 스페이드 등의 패션 브랜드를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대해왔다.
마이클 코어스는 지난해 기준 8억1000만달러였던 베르사체 매출을 20억달러로 키우고 매장 수도 200개에서 30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 베르사체 제공중국 자본도 ‘짝퉁 명품 생산국’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자체 명품 그룹 키우겠다는 목표로 최근 유럽 명품 기업 인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최대의 민영 재벌 중 하나인 푸싱(復星)그룹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랑방(Lanvin)의 경영권을 올해 2월에 인수했다. 1889년 설립된 랑방은 프랑스의 1세대 명품 브랜드로, 최근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경영난을 겪어왔다. 앞서 푸싱그룹은 그리스의 보석 브랜드 폴리폴리와 프랑스 리조트 호텔인 클럽메드에 출자하는 등 해외 투자를 확대해왔다.
중국의 섬유업체 산둥루이그룹도 올해 2월 스위스 명품 브랜드 발리를 사들였다. 산둥루이그룹은 산드로, 마쥬, 끌로디 피에로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패션 업체 SMCP와 영국 아쿠아스쿠텀 등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외신은 "중국이 세계 2위 명품 시장인 만큼, 중국 자본도 명품 브랜드 투자에 적극적이다"라고 했다.
현재 명품 시장은 프랑스의 LVMH그룹, 프랑스 케링그룹, 스위스 리치몬드그룹 등 유럽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공격적인 인수합병(M&A)로 덩치와 매출을 키웠다.
랑방 로고미국과 중국 자본도 유럽 명품 그룹들의 선례를 본받아 자본을 무기로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새 브랜드를 명품으로 만드는 것보다 인지도와 역사가 있는 알짜 명품 브랜드를 사들여 사업을 키우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 결과, 명품 시장도 자본과 인재가 몰리는 대형 명품그룹을 중심으로 양극화되는 모습이다.
루이뷔통, 디올, 펜디 등 70여개 브랜드를 보유한 LVMH그룹은 지난해 426억4000만달러(약 48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마이클 코어스의 10배에 달한다. 구찌, 입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을 운영하는 케링그룹이 179억달러(약 20조2300억원)로 뒤를 이었다. 반면, 1~2개의 브랜드가 중심이 된 이탈리아 프라다그룹, 미소니그룹 등은 최근 몇 년간 매출이 부진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과 중국 소비자를 중심으로 명품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점도 미국과 중국 자본이 ‘명품화’에 나선 이유 중 하나다.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는 전 세계 명품 시장 규모가 올해 2800억달러에서 2025년 3900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루이뷔통 매장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마이클 코어스의 베르사체 인수도 유럽 명품 그룹들이 먼저 시작한 대형화의 연장선"이라면서 "업계에서는 다음 인수 대상으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 토즈 등을 꼽는다"고 했다.
https://news.v.daum.net/v/20181021154905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