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비난 목적이 전혀 없음. 황교익한테 악의없음. 분명히
이견이 나올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하고 특히 이부분에서 황교익 칼럼니스트와 의견이 반대라 덬들의 의견도 물어보고자, 내 반대의견도 말하고자 쓴 글임!
지금 황교익이 불고기가 원래 일본음식이다 등등 인정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궁중요리임
때는 일제 강점기
https://img.theqoo.net/ZzBmw
고 황혜성 선생님은 일본대학에서 가사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 여학교의 가정선생님을 맡게됌
그런데 학교에서 한국음식을 만드는 실습도 가르치라 함. 선생님은 나는 조리를 배운 적 없어서 가르치지 못한다고 거절을 했는데 학교측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인을 써야한다라는 말과 함께 거절을 받아들임.
https://img.theqoo.net/LaSvD
선생님은 곰곰히 생각을 해봤지. 한국요리를 일본인이 가르치는게 맞나? 절대 안되는 일인거임 내가 살고있는 시대를 생각하니까. 그래서 학교에 나한테 선생 하나만 붙여달라. 내가 그 분께 배우면서 애들을 가르치겠다 라고 전달함. 그렇게 학교에서 붙여준 분이 바로
https://img.theqoo.net/wiBbz
조선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라는 한희순 상궁님.
13세때 궁에 들어가 나인을 시작으로 1965년까지 마지막까지!!!!!! 창덕궁에 남아 순종의 계후 순정효황후를 극진히 모심(왜 1965년이 마지막이냐면 66년에 계후가 돌아가심..ㅠㅠ)
그러다 1971년 궁중음식을 이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이자 제 1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셨음.
(그리고 1년뒤 별세..)
고 황혜성 선생님은 한희순상궁에게 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으며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에 일생을 바쳤으며 궁중음식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사라져 갈 것을 염려하여 당시 생존에 있던 마지막 상궁들의 구술을 수집, 정리하여 제출한 궁중음식 조사 보고서가 오늘날 조선왕조 궁중음식이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38호로 지정되었고 이 분 또한 제 2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셨음
그리고
https://img.theqoo.net/TfVag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하는 기관을 설립하여 궁중음식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심. 이를 통해 지금은 2명의 기능보유자가 추가되었고 기능이수자는 22명 기능전수자는 2명으로 궁중음식의 맥락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음.
이제 여기서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는데 궁중요리 흐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입장을 보임
1. 요리를 직접 만드는 사람은 남자였다.
-> 맞음. 대장금때문에 여자가 요리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래대로 라면 대장금 주인공은 https://img.theqoo.net/IAtqe
이 분이었어야함
왜 남자가 요리했냐->
예를들어 지금이야 갈비찜 한다하면 마트에서 갈비찜용 고기사서 만들면 끝. 그렇지만 그때는 직접 소를 잡아서 정육부터 해야했기에 지금의 요리와는 차원이 달랐음 체력이 필요로 하는 일중에 하나여서 숙수들이 '주로' 요리했고 상궁들은 숙수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었다고 나도 배웠고 인정하는 부분.
2. 숙수가 아닌 상궁이 시작했으니 궁중요리는 근본이 없다.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함.
첫번째 이유 : 한희순 상궁이 궁에서 요리 한 번 못하고 서빙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 조선 말기 철종에서 고종 초까지 10년간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의 증손녀이자 해평윤씨(=순종효황후)의 이종사촌이었던 조자호 요리연구가가 1938년 쓴 조선요리법이라는 책을 보면 한희순 상궁이 수랏간에서 찬을 담당했다고 나와있음(찬=0첩반상의 그 첩). 1965년까지 왕비를 창덕궁 낙원재에서 모신게 팩트고 이때 인터뷰를 보면 해평윤씨가 황혜성 선생님까지 궁에 불러 많이 알려주신 걸로 나와있음.
왜 여자가 찬을 담당했을까????
-> 일본이 돈 없다고 1907년 관기제도를 없애버리자 많은 궁인들이 궁을 나가게됌. 숙수들 또한 궁을 나가서 장사를 시작함. 예를 들어 안숙환이란 숙수는 대령숙수들을 모아서 종로에 명월관이라는 식당을 차림. 그러니 남아있던 상궁들이 해야지 관기제도가 사라져서 궁인들은 자유를 얻은거지 쫓겨나는게 아님. 한희순 상궁은 남아계신거야
아니 궁에 요리할 사람이 없는데 그럼 누가 해요!!!! 궁에 아직 왕, 왕비 있음ㅠㅠㅠㅠ
두번째 이유 : 대장금의 주인공은 숙수여야 한다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왜 방송에 나온 음식에 대해선 아무말이 없는지. 그 드라마 대본검수 , 칼질 , 음식컨텐츠 짜는거 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했구요????
하고싶은 말은 이거임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1800년대 후반부터의 궁중요리가 전수되어 온 것을 알거임. 그걸로 조선전체의 궁중요리라 할 수는 없음. 당연한거잖아? 그리고 궁중요리연구원도 그런말을 안 하고.. 부족함을 알고 지금도 몇개 안되게 남아있는 고조리서들로 최대한 재현하려고 연구에 연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야
한희순 상궁이 없었다면, 아니 황혜성 선생님이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지금까지 궁중요리가 이어져왔을까? 일본인한테 배웠다고 생각하면 진심으로 끔찍함. 그나마 간당간당한 맥으로 이어져 오는 궁중요리를 "근본없다" 한 마디로 무너뜨리지 않았음 좋겠어ㅠㅠ
아 맞다 황혜성 선생님이 가르쳤다던 여학교 지금 숙명여대임
이견이 나올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하고 특히 이부분에서 황교익 칼럼니스트와 의견이 반대라 덬들의 의견도 물어보고자, 내 반대의견도 말하고자 쓴 글임!
지금 황교익이 불고기가 원래 일본음식이다 등등 인정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궁중요리임
때는 일제 강점기
https://img.theqoo.net/ZzBmw
고 황혜성 선생님은 일본대학에서 가사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 여학교의 가정선생님을 맡게됌
그런데 학교에서 한국음식을 만드는 실습도 가르치라 함. 선생님은 나는 조리를 배운 적 없어서 가르치지 못한다고 거절을 했는데 학교측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인을 써야한다라는 말과 함께 거절을 받아들임.
https://img.theqoo.net/LaSvD
선생님은 곰곰히 생각을 해봤지. 한국요리를 일본인이 가르치는게 맞나? 절대 안되는 일인거임 내가 살고있는 시대를 생각하니까. 그래서 학교에 나한테 선생 하나만 붙여달라. 내가 그 분께 배우면서 애들을 가르치겠다 라고 전달함. 그렇게 학교에서 붙여준 분이 바로
https://img.theqoo.net/wiBbz
조선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라는 한희순 상궁님.
13세때 궁에 들어가 나인을 시작으로 1965년까지 마지막까지!!!!!! 창덕궁에 남아 순종의 계후 순정효황후를 극진히 모심(왜 1965년이 마지막이냐면 66년에 계후가 돌아가심..ㅠㅠ)
그러다 1971년 궁중음식을 이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이자 제 1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셨음.
(그리고 1년뒤 별세..)
고 황혜성 선생님은 한희순상궁에게 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으며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에 일생을 바쳤으며 궁중음식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사라져 갈 것을 염려하여 당시 생존에 있던 마지막 상궁들의 구술을 수집, 정리하여 제출한 궁중음식 조사 보고서가 오늘날 조선왕조 궁중음식이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38호로 지정되었고 이 분 또한 제 2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셨음
그리고
https://img.theqoo.net/TfVag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하는 기관을 설립하여 궁중음식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심. 이를 통해 지금은 2명의 기능보유자가 추가되었고 기능이수자는 22명 기능전수자는 2명으로 궁중음식의 맥락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음.
이제 여기서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는데 궁중요리 흐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입장을 보임
1. 요리를 직접 만드는 사람은 남자였다.
-> 맞음. 대장금때문에 여자가 요리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래대로 라면 대장금 주인공은 https://img.theqoo.net/IAtqe
이 분이었어야함
왜 남자가 요리했냐->
예를들어 지금이야 갈비찜 한다하면 마트에서 갈비찜용 고기사서 만들면 끝. 그렇지만 그때는 직접 소를 잡아서 정육부터 해야했기에 지금의 요리와는 차원이 달랐음 체력이 필요로 하는 일중에 하나여서 숙수들이 '주로' 요리했고 상궁들은 숙수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었다고 나도 배웠고 인정하는 부분.
2. 숙수가 아닌 상궁이 시작했으니 궁중요리는 근본이 없다.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함.
첫번째 이유 : 한희순 상궁이 궁에서 요리 한 번 못하고 서빙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 조선 말기 철종에서 고종 초까지 10년간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의 증손녀이자 해평윤씨(=순종효황후)의 이종사촌이었던 조자호 요리연구가가 1938년 쓴 조선요리법이라는 책을 보면 한희순 상궁이 수랏간에서 찬을 담당했다고 나와있음(찬=0첩반상의 그 첩). 1965년까지 왕비를 창덕궁 낙원재에서 모신게 팩트고 이때 인터뷰를 보면 해평윤씨가 황혜성 선생님까지 궁에 불러 많이 알려주신 걸로 나와있음.
왜 여자가 찬을 담당했을까????
-> 일본이 돈 없다고 1907년 관기제도를 없애버리자 많은 궁인들이 궁을 나가게됌. 숙수들 또한 궁을 나가서 장사를 시작함. 예를 들어 안숙환이란 숙수는 대령숙수들을 모아서 종로에 명월관이라는 식당을 차림. 그러니 남아있던 상궁들이 해야지 관기제도가 사라져서 궁인들은 자유를 얻은거지 쫓겨나는게 아님. 한희순 상궁은 남아계신거야
아니 궁에 요리할 사람이 없는데 그럼 누가 해요!!!! 궁에 아직 왕, 왕비 있음ㅠㅠㅠㅠ
두번째 이유 : 대장금의 주인공은 숙수여야 한다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왜 방송에 나온 음식에 대해선 아무말이 없는지. 그 드라마 대본검수 , 칼질 , 음식컨텐츠 짜는거 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했구요????
하고싶은 말은 이거임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1800년대 후반부터의 궁중요리가 전수되어 온 것을 알거임. 그걸로 조선전체의 궁중요리라 할 수는 없음. 당연한거잖아? 그리고 궁중요리연구원도 그런말을 안 하고.. 부족함을 알고 지금도 몇개 안되게 남아있는 고조리서들로 최대한 재현하려고 연구에 연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야
한희순 상궁이 없었다면, 아니 황혜성 선생님이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지금까지 궁중요리가 이어져왔을까? 일본인한테 배웠다고 생각하면 진심으로 끔찍함. 그나마 간당간당한 맥으로 이어져 오는 궁중요리를 "근본없다" 한 마디로 무너뜨리지 않았음 좋겠어ㅠㅠ
아 맞다 황혜성 선생님이 가르쳤다던 여학교 지금 숙명여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