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도 거론되는
세계적인 범죄조직의 대명사
'마피아'
그들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의 그 위용은 대단하여서
1차, 2차 마피아 전쟁 이라 지칭되는 대량의 유혈 사태를 겪는다.
80년대의 마피아대전 기에는 연간 200여명의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마피아에 적대하면 판검사, 경찰, 군인, 기업가,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암살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용기있는 판검사와 군인과 경찰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것이 '대재판 Maxiprocesso' 이다.
마피아들의 각종 테러로부터 재판을 방어하기 위해
방어가 용이한 교도소를 개조해 재판장으로 꾸몄다.
대전차로켓을 방어하기 위해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졌고,
총기와 폭탄을 검색하기 위한 치밀한 검색대에
중무장한 국가헌병대가 재판장을 방어하고 있었다.
재판에 참여한 판검사들은 암살을 피하기 위해
이 요새화된 교도소에서 숙식하며 재판을 진행했다.
이렇게 474명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아직 체포되지 않아 재판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피고인의 참석유무와 관계없이 재판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종신형을 비롯해 2665년의 형이 선고되었다.
이 재판은 사실상 이탈리아의 마피아 세력을 사법적으로 처형한 대사건이었다.
궁지에 몰린 마피아세력은 이에 반격에 나선다.
마피아와의 전쟁을 지휘한 대표적인 인물은
조반니 팔코네 판사였다.
이에 대한 암살과 테러는 예상되고 있으므로
군경은 판사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피아들은 상상을 초월한 테러를 계획한다.
도로에 400 kg 에 달하는 폭탄을 넣어둔것이다.
팔코네 판사 일행과 경호원들의 차량이 이 도로를 통과하는 순간
폭탄은 폭발했다.
이 폭발은 지진모니터에도 기록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게 그는 마피아 전쟁의 순교자가 되었다.
아무리 태평한 이탈리아인들이어도 이 사건은 참을 수 없었다.
분노한 이탈리아인들은 도시 곳곳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고 노동자들은 파업했다.
정치인들도 더는 마피아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대마피아법이 제정되었고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마피아들의 범죄 사실을 증언했다.
군경을 동원한 대규모 마피아 소탕작전이 진행되었고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마피아의 전성기는 이로서 종막에 이르게 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마피아의 손이 미치고 있지만
아직도 이때의 위세를 되찾지 못하였고
마피아에 의한 살인도 80% 이상 급감하였다.
시칠리아 팔레르모 국제공항은 마피아 전쟁에서 순교한 팔코네와 보르셀리 두 판사를 기려
'팔코네보르셀리노공항'으로 명명되었고
그의 용기를 기리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