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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나는 동성애자이다. 남자이고, 남자를 좋아한다.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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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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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성애자이다.
남자이고, 남자를 좋아한다.
이 짧은 문장이 나를 정의한다.

한국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은 생각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실, 어려울 것은 없다.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전에 비해 연애나 결혼이 필수라는 인식이 많이 줄었다는 것.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다해서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형들은 30대에 들어선 순간부터
결혼은 언제하냐, 너 만나는 여자 없냐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친구와 가족, 직장동료, 그 외에 마주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되도 않는 핑계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나는 아직 이십대 중반이다.
그래,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이지만 형들의 이야기에 공감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매일같이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살아왔다.

연애를 해도 남들처럼 티낼 수 없는게 싫었다.
나도 이렇게 멋진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누구보다 예쁜 연애를 하고 있다고 남들에게 말하고 싶은데.

스무살. 첫 연애를 시작할때는 겁 없이 남들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후회했다.
누군데? 라는 질문에 솔직히 답 할 수 없었고
사진을 보여달라는 말에 나만 볼거야~라는 핑계를 대고,
남들이 볼까 무서워 내사랑 이란 애칭대신 딱딱한 세글자로 저장한 이름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이고, 불편함이었다.

남들앞에서 스물셋의 같은 학교 공대생인 내 애인은
타지에 사는 직장인 누나가 되어 있었다.

헤어지는 날엔 친구라도 불러 술한잔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더라.
혹시라도 술기운에, 슬픔을 못 이기고 털어놓을 까봐.
무서웠다.

그런 마음이 늘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곤 하지만
너희와 나 사이엔 벽이 있는 듯 했다.
한없이 투명하지만 두꺼운 벽.


스물셋.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했다.
복학생.
복학생이라는 신분이 남자를 미치게 하는 걸까?
그저 같이 술한잔 하고, 웃고 떠드는 것이 즐겁던 동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신입생에게만 눈을 돌린다.
복학생 모임의 이야기는 늘 돌고 돌아 그녀들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그놈의 여자, 여자, 여자.
벽이 조금 더 두꺼워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전에는 그래도 언젠가 너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스물셋의 우리는 교복 입은 학생과 조금 많이 멀어져 있었다.
그때는 같은 옷을 입으니 너희와 내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나봐.

썸을 타는 것도,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것도, 섹스를 하는 것도.
너희와 내 연애는 많은 것이 달랐다.
나는 그걸 털어놓을 수 없는데.
너희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 하는 것이 미웠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내 자신은 더욱.


그쯤부터 종로와 이태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종로의 대형 술번개를 나간 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과행사마냥 40명정도가 기다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있고,
방장이란 사람이 과대형이나 회장형 마냥 마이크를 쥐고 진행이란 것을 하고.
한명씩 돌아가며 하게되는 자기소개나 술게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앉아 있는 모두가 남자이고, 게이란 것만 빼면.

그때부터 주말마다 종로에 가서 술을 마시고,
이태원에 넘어가 이쪽 클럽을 가곤 했다.
스물셋에 처음 접한 소위 ‘이쪽 문화’ 라는 것은 자극적이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거짓말을 해야하고, 머리를 굴리기 바빴는데.
처음엔 그랬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니 최근 통화 목록도, 주고받은 카톡에도 이쪽 사람들이 한가득이더라.
술자리에서 만난 형 동생, 사귀었던 애인.
애인 소개로 만났던 형 동생. 또 그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알게된 사람들.
이젠 조금 지겹다.

1년은 결코 짧지 않았고,
나도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게이들의 문화는 일반들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연애뿐만 아니라 친구마저도 얼굴을 보고 사귀는 사람들이 많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면 게이들의 만남은 만남어플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어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곤 끄적여둔 자기소개 몇줄과
나이 키 몸무게, 그리고 사진 몇 장.

결국엔 외적인 요소들만 따지고 만남이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
서류심사를 통과해야 면접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달까.

그래서일까, 술자리를 통해서 이루어진 만남도, 지인을 통해 이루어진 만남에서 마저도.
‘얼굴’과 ‘몸’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것을 깨닫는 데는 한달조차 걸리지 않았다.

술번개의 마지막은 항상 인기투표다.
차례로 번호를 정하고 전화번호나 카톡아이디를 적어 맘에 드는 사람에게 전달한다.
투표수만큼 적나라한 결과물이 또 있을까.

다행히 나는 나쁘진 않은 편이었다.
자만있을 수도 있고,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매번 5-6표 정도는 받아서 집에 올 수 있었으니까.
그게 오히려 나를 미치게 했다.

사실, 인기투표가 아니더라도 느껴진다.
같은 술자리, 같은 테이블의 같은 대화 주제라도.
잘생긴 사람이 말 하는 순간과, 못생긴 사람이 말할 때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니까.
일반들처럼 이쁜애한테 그래도 눈이 가지. 정도가 아니다.
대놓고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다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
그런 공기가 있었다.

그래서 더 집착했던 것 같다.
얼굴이든 몸이든 눈에 보이는 것에.
어쩌면 생존전략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쪽에선 외모가 전부일 때가 많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속으로 무시하는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있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괜찮다 싶은 사람들과 엮이려면
나부터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일반 친구들은 매일같이 헬스를 다니고,
피부관리나 화장을 하고, 향수도 뿌리고, 옷도 빼입는 나를 보며
자기관리를 참 잘한다 하더라.
누굴 위한 자기관리인지.

솔직히 털어 놓고 싶다.
나도 너희와 별 다를 것 없다고.
너네가 여자에게 잘 보이려 머리를 올리고,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나도 그러고 있는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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