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삼(大衫)과 칠적관(七翟冠)
대삼은 조선에서는 태종 3년때 처음 등장한 이후로 인조때까지 명나라에 총 16여 차례에 걸쳐 사여 받아서 사용하던 것이었다.
이 대삼은 친왕비나 군왕비의 대삼으로 명나라가 조선을 친왕이나 군왕으로 대했다는 뜻이다.
치적의와는 다르게 아무 문양도 없고 색은 대홍색을 띄며, 안에는 꿩 무늬의 청색 배자(褙子)를 입고 금색 실로 적계문(翟鷄紋)을 수놓은 짙은 청색의 하피를 목에 둘러 앞가슴에 걸었다.
이때 머리에 칠적관(七翟冠)을 쓰는데, 이 칠적관도 마찬가지로 명나라의 친왕비나 군왕비의 대례모이다. (명황후는 구적관을 쓴다.)

2. 치적의(雉翟衣)와 대수(大首)머리
조선은 크게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서 명복식 제도를 벗어나 진짜 조선식 복식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리하여 왕과 왕비의 대례복 또한 변화를 거치는데, 왕의 구장복은 명나라 것과 얼추 비슷하게 만들게 되나 왕비는 도저히 국내에 만들어 낼 장인이 없어서 새로 만들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치적의는 색은 대삼과 같은 대홍색이고 운봉흉배(雲鳳胸背)를 달았으며 앞뒤에 36개의 원적문(圓翟紋)을 수놓았다.
이 이후 여러가지 변화를 거친 치적의는 영조때 되어서야 완성되어 지는데, 이때는 51개의 원적문(圓翟紋)을 수놓았고 적운문(翟雲紋)을 수놓은 하피를 어깨에 두르고 운봉흉배를 달았다.
이때 머리에 쓰는 것은 대수머리인데, 칠적관이 명에서 받아 썼던 것으로 국내에는 기술자가 따로 없을 뿐더러 재료 또한 없어서 중국에서 공수해와야하는 악조건인지라 새로 제도화 해서 만들어 낸 것이 이 대수머리이다.

3. 심청색 적의(翟衣)와 대수(大首)머리
심청색 적의는 황후의 적의인 12등 적의로 꿩 148~154쌍을 12등분하여 수놓았으며 양어깨, 가슴, 등에 오조룡보를 달았고 깃과 도련, 수구에 홍색선을 두르고 운룡문(雲龍紋)을 수놓았다.
즉. 왕비의 대례복이 아니라 '황후'의 대례복.
...이어야 하는데!! 깃에 용이 아니라 봉황이 그려져잉네? 봉황이 그려진 건 황태자비의 대례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