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후 12월 모스크바 미국-소련-영국 3상회의가 열림.
그 결과
조선에 미소공동위원회 설치해 임시정부 준비하고,
미국-소련-영국-중국이 최장 5년 신탁통치 한 후,
총선거 실시해 독립국가 수립하기로 결정함.
여기서 오보가 나는 부분이 바로 신탁통치 부분인데 애초에 신탁통치를 주장한건 미국이었음. 반면 소련은 즉시 독립 주장했음(소련이 국내 좌파 독립운동가들이 조선 점령할 수 있다 믿었을 수도. 여운형은 독립 당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꾸려 치안대 조직하고 145개 인민 위원회=지방 행정 조직 수립했었음)
미국은 원래 신탁통치 기간도 더 길게 주장했다가 소련이 반대하자 결국 5년으로 합의한 거임.
근데 이 내용이 공식 발표 전 1945년 12월 27일날 동아일보 1면 특종으로 새어나간거임. 그것도 신탁통치 부분만, 그것도 미국 소련 입장이 반대로.
http://img.theqoo.net/AgKCa
외상회의에 논의된 조선독립문제-
소련은 신탁통치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막사과(莫斯科)에서 삼국 외상회의를 계기로 조선 독립 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해져가고 있다. 즉 번즈 미국 국무장관은 출발 당시에 소련의 신탁 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삼국 간에 어떠한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 선언에 의하여 조선은 국민 투표로써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괄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삼십팔도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 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미국이 즉시 독립 주장하고 소련이 신탁 통치 주장했다고 ㅋㅋ
이게 정말 오보인가, 왜곡인가는 당사자들 아닌 이상 알 수 없음.
다만 식민통치에 질려있던 민중은 이 기사를 통해 신탁통치 얘기를 전해듣고 진저리쳤고, 소련은 불구대천의 원수요 좌파는 그 앞잡이, 미국은 겁나 좋은 나라가 됨.
그리고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더 극심하게 치닫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