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보고 못한 靑 참모진, 훈령·보고시간 조작 열올려
사고 5시간30분만에 참모진 배제 최순실과 대책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세월호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실내체육관 현장을 찾아 가족들의 요구사항에 답하고 있다. 2014.4.17 /뉴스1
(서울=뉴스1) 심언기 기자,최은지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66)이 세월호 참사 당일 완전침몰을 10여분 앞둔 시점에서야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이미 넘긴 시점으로 보고받은 장소는 관저 내 침실이었다.
일각에서 제기된 불법 의료시술 등은 없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들을 제쳐두고 '비선실세' 최순실씨(63)와 대책을 논의했다. 그럼에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검사 신자용)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119에 접수된지 1시간 30여분이 지난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20분쯤 최초 보고를 받았다.
김장수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사고소식을 접한 뒤 유선보고를 위해 수 차례 전화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받지 않았다. 결국 김 전 실장은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 행방을 물으며 시급히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안 전 비서관은 이영선 전 행정관을 대동하고 급히 관저로 향했다. 이 전 행정관은 관저 내실로 들어가 침실 문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을 수 회 불렀다. 그제서야 박 전 대통령은 침실 밖으로 나왔다. 시계침은 세월호 완전침몰을 10여분 앞둔 오전 10시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 전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합니다"라고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고 짧게 답한 뒤 침실로 되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은 침실에서 10시22분쯤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며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전화로 짧게 지시한 이후에도 내내 침실에 머물다 오후 2시15분쯤 최순실씨, '문고리 3인방'과 함께 45분가량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중대본 방문이 결정됐다.
김기춘 비서실장, 김장수 안보실장 등 청와대 정식 참모진은 박 전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중대본 방문을 결정한 박 전 대통령은 미용관리사들부터 불러들였다. 일종의 '외출 준비'였던 셈이다. 미용관리사들은 오후 3시22분에 청와대에 들어가 오후 4시37분에 나왔다.
대통령비서실은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을 통해 사고수습 상황 보고를 11차례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서 나오지 않자 정 전 비서관은 오후와 저녁시간 각 1회씩 2회에 걸쳐 보고를 묶어 올렸다. 실시간 상황파악과 대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시술이나 이상한 치료는 없었지만 의료용 가글을 받는 등 당일 (박근혜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은 맞다"면서도 "평소 (일과시간 중에도) 관저에서 생활을 많이 했고, 이날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면보고도 못했던 김기춘·김장수 등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박 전 대통령 행적을 철저히 감추는 한편 보고시간 조작에 조직적으로 나섰다.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이 재난상황의 컨트롤타워'라고 규정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3조 등을 볼펜으로 지우고 '안행부가 컨트롤타워'라고 바꿨다. 이후 65개 부처와 기관에 공문을 시행해 보관 중인 지침을 위 내용대로 삭제·수정·시행하도록 지시했다.
청와대 참모진은 박 전 대통령의 사고 최초인지 및 지시 시간을 앞당기고 최순실씨의 방문 사실은 철저히 함구했다. 검찰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을 28일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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