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중국계 이주민이 중심이 되고 유교와 한자를 쓰는
남 비엣(현재의 베트남, 南越)과
말레이계 원주민 중심에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참파(占波)는 오랜기간 으르렁댔던 원수지간에
서로 인종과 종교, 문화도 달라서 사이가 아주 나빴음
몽고라는 외부의 적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쳐들어오면서
적의 적은 동지라고 둘은 잠깐이나마 동맹을 맺고
몽고에 맞서싸웠음
근데 외부의 적인 몽고가 물러가고 나니까
베트남은 다시 예전 버릇대로
참파에 시비를 걸면서 삥을 뜯으려 했음

몽고덕분에 어렵게 되찾은 두 나라간 평화를 유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베트남과 참파는 서로 딜을 하게 됨
베트남 쩐 왕조의 영종이 자신의 여동생인 현진공주를
참파 왕 자야 신하바르만 3세에게 시집보내며
양국 간 혼인동맹을 맺고
그 대가로 참파는 수도 코앞까지 영토를 내주기로 함
그럼에도 베트남에서 이 국혼에 반대하는 여론은 심각했음
현진공주는 그 미모로 소문이 자자한 공주였고
사대부들은 어찌 저런 야만인들에게
자칭 '소중화'였던 베트남의 공주를 시집보낼 수 있냐며
현진공주를 중국 왕소군에 비유하기까지 함
베트남버젼 이두인 쯔놈으로
공주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시까지 지으며(...)

문제는 참파 국왕인 자야 신하바르만 3세가
이미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거의 오늘내일하는 노인네였다는 것
국혼 바로 다음 해인 1307년 자야 신하바르만 3세는 사망해버림
그런데 문제가 생김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참파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같이 죽여서 순장시키는
'수티'의 풍습이 있었던 것
고작 결혼 1년만에 현진공주는 과부로도 모자라
수티로 사망할 위험에 처하게 됨
베트남 기준 야만족에 시집 온것도 모자라
이대로 죽게 생긴 현진공주는 그대로 도주해버림
그것도 베트남 쩐 왕조의 조직적인 도움으로 도주(...)
전설에 따르면 그 도주를 도운 장군과 결혼해서
자알 먹고 잘 살았다고는 함
문제는 국혼까지 해서 출가한 공주가 친정으로 도주하고
떼어준 영토는 꿀꺽하고, 지네들의 풍습도 완전 무시하자
열받은 새 참파왕 자야 신하바르만 4세는
떼어준 영토 돌려달라고 베트남에게 요구함

참파(초록색) 입장에서는 결코 작지않은 땅을
국혼의 댓가로 떼어준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