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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치욕적인 순간 - '삼전도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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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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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자녀들이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였는데, 길을 끼고 울며 부르짖는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30일 경오 2번째기사


1637년 2월 24일(인조15년 1월 30일) 조선 인조가 병자호란으로 청군이 한양에 침입해 오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청나라에게 대항하였으나, 청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여 끝내 청나라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은 사건. 실록의 기록(효종현종 등)을 보면, 정축년에 에서 내려왔다는 의미로 정축하성(丁丑下城)이라고 했다. 그나마 실록에 기재되긴 했지만 전후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로 비참했던 만큼 병자호란 전후의 사정을 보고 이 부분을 보면 엄청나게 순화했다고 느낄 정도로 비교적 절제해서 쓰여진 편.

삼전도(三田渡)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 부근에 있던 하중도의 나루였다. 지금 그곳은 개천을 메워 섬이 아니게 되었다. 이 사건을 적어둔 비석인 삼전도비가 원래 세워진 위치와는 다른 위치에 남아있었는데, 21세기에 이런 치욕적인 역사를 보자니 단단히 빡친 시민이 페인트 테러를 벌인 적이 있었고 원래 있었던 위치라는 롯데월드 근처로 돌아갔다(인조 문서 참조).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이라는 뜻.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고도 칭해진다. 무릎 1번 꿇을 때마다 3번 조아려서 총 9번.

삼전도에서 숭덕제에게 절하면서 머리를 바닥에 마구 찧어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거나, 인조가 머리를 찧는 소리가 단 위의 청 태종에게 제대로 들릴 때까지 절을 계속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삼궤구고두례가 당시 조선에서 생소한 예[1]인 데다가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에 나온 오해에 가깝다. '3*9=27번 머리통 박치기(...)로 피가 철철 났더라'는 식의 후일담은 사료상의 근거가 없다. 청나라 때 예법을 보면 저렇게 쓸데없이 길고 격하게 27번이나 했다기보단 1번 절하면 3번 머리를 조아리고 하는 것을 3회 반복하는 것 정도가 거의 확실하기 때문.[2]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용골대(타타라 잉굴다이) 등이 인도하여 들어가 단(壇) 아래에 북쪽을 향해 자리를 마련하고 상에게 자리로 나가기를 청하였는데, 청나라 사람을 시켜 여창(臚唱: 의식 순서를 소리내어 읽는 것)하게 하였다. 상이 삼궤구고두의 예를 행하였다. (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30일 경오 2번째기사)


일단 '삼궤구고두례'라는 이름의 예를 치른 것은 분명하지만, 청나라의 예절방식이라 이 때 처음 언급될 정도로 조선에 생소한 방식인데다가, 왕이 겨울에 맨바닥에서 오랑캐에게 절한다는 눈새짓한거 치고는 나름 치욕스러운 장면이라 그런지 '삼궤구고두례를 했다.'는 언급만 있고 그 장면에 대한 서술은 실록에도 실려 있지 않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절을 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단이 없다.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점으로, 삼궤구고두례가 패자가 승자에게 올리는 의식으로서 청나라 황제가 조선 임금의 자존심을 확실하게 짓밟는 퍼포먼스였던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사실 항복의식 자체로만 봤을때 딱히 치욕스런 항복의식은 아니었다. 삼궤구고두례는 어디까지나 청나라에서 평범한 '신하가 황제에게 바치는 예'에 지나지 않았다. 즉 청나라 측은 명나라 버리고 패자면 패자답게 꿇기나 해라.라는게 아니라 황제까지 오신 데다가 항복도 했으니 이제서라도 황제에게 신하의 예를 표해 봐라라는 정도의 의미였다. 역사에 관심있거나 삼국지 등을 즐겨 읽은 사람이라면 중국의 항복의식을 대강 알것이다. 삼국지 중에 촉의 후주 유선의 항복장면을 보면 나라의 인장을 바침과 아울러 스스로 염을 하고 머리를 풀어헤친 후 관짝을 들고 항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항복했으니 죽여달라는 소리. 이에 비하면 인조의 항복의식은 항복의식이라기 보단 번국의 왕이 종주국의 황제를 만날 때 하는 의식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중국 사극에서 봐도 시간 분량상 많이 나오진 않지만 삼궤구고두례는 말 그대로 3번 절하고 9번 조아리는 뜻으로 일단 행위만 본다면 딱히 치욕스러운 것도 아니고 부모에게나 어른에게 하는 예를 단지 몇 번 더 반복할 뿐이므로, 황제 앞에선 황제의 형이나 숙부 같은 왕족들과 세습친왕이라도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해야 했다. 황태자[3] 앞에서도 손윗 항렬, 백부, 숙부나 형제들이나 종친, 친왕이라 할지라도 삼궤구고두례보단 한단계 낮은 이궤육고두례(二跪六叩頭禮)의 예를 올려야 했다.

즉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칙서를 반포하거나 연초에 망궐례를 할 때 북경 쪽으로 절하고 고개를 조아리는 예는 당연히 했기 때문에, 예를 올린 대상이 오랑캐라서 치욕이지, 삼궤구고두례라는 예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단 항복 자체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시점에서 이미 신하를 칭하면서 공식적으로 했었다. 거기에 삼궤구고두례 자체도 아예 안 할려던 건 아니었지만, 성 안에서 제단을 쌓고 황제가 있는 북쪽 방향으로 하면 안 되냐고 우겼는데, 이미 황제가 남한산성 바로 앞까지 친정한 시점에서 그딴 억지가 먹힐 리는 없었고 청나라 사신은 조선 측의 이런 제안들을 전부 다 받아넘기면서, 황제까지 왔는데 항복할 거면 제대로 황제 앞에서 해야지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조선 측을 데꿀멍시키며 결국 밖까지 나가서 하게 한 것이다. 처음부터 "까짓거 뭐 이런 게 대수랴" 하고 그냥 나가서 고분고분해준 게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우기면서 수십 일을 발악하다가 결국 논리로도 힘으로도 밀려서 강제로 한 셈이니 더더욱 굴욕으로 여겨지는 것. 

참고로 150년 뒤인 건륭제 시절(1792년) 영국의 사신인 매카트니가 건륭제와 대면할 때 청나라측에서 삼궤구고두례를 하라고 하자 '서양에선 신에게 말고는 왕에게도 무릎 하나를 꿇는게 전부다.라거나 러시아의 카자크 기병들은 차르의 앞에서도 말에서 내리지 않는다. 등으로 삼궤구고두례를 거절하려 했지만, 청나라는 싸그리 무시하고 삼궤구고두례를 강요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삼궤구고두례만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서양인들은 신분고저를 막론하고 같은 인간에게 두 무릎을 모두 꿇거나 머리를 여러 번 조아리는 것을 미개한 동양의 풍속이라 생각했으며 이런 부복(扶伏, προσκύνεσις)에 대해 모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즉 서양 측이 괜히 삼궤구고두례만 예로 잡아서 시비건 게 아니라 대대로 내려온 예법의 차이 때문에 흔히 발생했던 트러블로서, 괜히 잘못 알고 이런 걸로 뻐팅기다간 반격에 그대로 얻어맞기 좋으니 제대로 알아두자.

이 예법이 크게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청나라와 조선 간의 군신 관계를 확정 지은 사건이나 다름없기 때문. 청사고나 실록을 보면, 애초에 청나라 측은 병자호란을 일으킬 즈음까지는 "조선은 형제의 나라이다."라고 동등한 동맹의 관계를 추구했던 반면, 조선은 "명나라는 조선의 아버지 국가인데 그런 명나라에게 덤비는 청나라 따위가 형제의 나라일 리가 없다."는 식으로 청나라의 제안을 싸그리 거절하며 청나라와 그 황제보다는 명나라와 그 황제가 더 높은 직위에 있다.고 응수하는 형국이었다. 청나라 입장에선 나름대로 조선을 동생 대접해 주려다가 청나라의 황제 지위까지 부정당하는 모멸적인 대답을 들은 셈인데, 이런 점에서 삼궤구고두례, 즉 상술한 신하가 천자(황제)에게 바치는 '청나라 고유의 예'를 하게 함으로서 군신 관계를 공식화한 것이 의미를 갖는다. 청나라가 명나라가 하던 국책을 바치라고 한 것이나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

이것을 영상화했던 MBC 사극 드라마 조선왕조실록에선 유인촌이 맡은 인조가 절하는데, 3번씩 3번 총 9번 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다음 회를 마지막으로 조선왕조 500년은 일차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 다음해 인현왕후를 시작으로 후반기가 나왔다.


드라마 꽃들의 전쟁의 한 장면.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실제보다 더 험하게 다뤄졌다.

그 후 실로 오랜만에(...) 2013년작 JTBC 사극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서 재현되었다. 여기서는 이덕화가 인조를 맡았는데 꽤나 험하게 굴린다. 남한산성을 나올 때부터 용골대가 가마에서 안 내리면 쏴죽인다고 하질 않나, 곤룡포 입고 눈밭 걸어서 삼전도까지 걸어가질 않나, 높은 단 위에 오른 청태종 앞에 나아가면서 한 단씩 올라가면서 삼궤구고두례를 하는 등 꽤나 험난하다. 물론 이는 극적인 과장이라고 염두에 두며 봐야겠지만. 일각에서는 인조를 험하게 굴려서 고거 쌤통이다 했다 카더라

여담이지만 옛날 삼전도비엔 인조가 무릎 꿇고 절하는 동판 부조가 있었는데, 그것은 1983년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의 모습이 사실과 맞지 않고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하여 이미 철거했다. 2ch 같은 곳이 혐한의 재료로 노골적으로 써먹는 중. 또 문화재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부조가 당대에 나왔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많다. 헷갈리지 말자.

참고로 이 의식이 끝난 후에는 그래도 청나라에서 조선 국왕을 제대로 대접하게 되는데, 숭덕제가 "조선왕은 일국의 국왕이니 짐의 아우들 사이에 앉히도록 하라."고 명령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만주인 고관들이 주로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일들, 예친왕 도르곤과 인조가 서로 나눈 대화 등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상술한 연호를 따르게 하는 것이나 군신 관계의 예우를 명나라에게 하던 시절과 거의 똑같이 한 것은 단지 조선을 신하로 만든 것만이 아닌, 명나라 시절과 같은 군신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청나라의 표현이었던 것.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임금이 삼궤구고두례를 마친 후 단에 올라 청나라 황제가 주는 차를 마셨으며, 잔치를 마친 후 용골대한테서 청나라 의복인 초구[4]를 받아서 갈아입고 뜰에 들어가 사례를 했다고 한다. 실제 기록을 보면 아래와 같다. 참고로 '상(上)'[5]은 인조를 의미한다.

용골대 등이 상(上)을 인도하여 진의 동문을 통해 나왔다가 다시 동쪽에 앉게 하였다. 대군(大君) 이하가 강도(江都: 강화도)에서 잡혀왔는데, 단 아래 조금 서쪽에 늘어섰다. 용골대가 한의 말로 상에게 단에 오르도록 청하였다. 

[6]은 남쪽을 향해 앉고 상은 동북 모퉁이에 서쪽을 향해 앉았으며, 청나라 왕자 3인이 차례로 나란히 앉고 왕세자가 또 그 아래에 앉았는데 모두 서쪽을 향하였다. 

또 청나라 왕자 4인이 서북 모퉁이에서 동쪽을 향해 앉고 두 대군이 그 아래에 잇따라 앉았다. 우리 나라 시신(侍臣)에게는 단 아래 동쪽 모퉁이에 자리를 내주고, 강도에서 잡혀 온 제신(諸臣)은 단 아래 서쪽 모퉁이에 들어가 앉게 하였다. 

차 한 잔을 올렸다. 한이 용골대를 시켜 우리 나라의 여러 시신(侍臣)에게 고하기를, "이제는 두 나라가 한 집안이 되었다. 활 쏘는 솜씨를 보고 싶으니 각기 재주를 다하도록 하라." 하니, 종관(從官)들이 대답하기를, "이곳에 온 자들은 모두 문관이기 때문에 잘 쏘지 못합니다." 하였다. 

용골대가 억지로 쏘게 하자 드디어 위솔(衛率) 정이중(鄭以重)으로 하여금 나가서 쏘도록 하였는데, 활과 화살이 본국의 제도와 같지 않았으므로, 다섯 번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다.[7] 

청나라 왕자 및 제장(諸將)이 떠들썩하게 어울려 쏘면서 놀았다. 조금 있다가 진찬(進饌)하고 행주(行酒)하게 하였다. 술잔을 세 차례 돌린 뒤 술잔과 그릇을 치우도록 명하였는데, 치울 무렵에 종호(從胡) 두 사람이 각기 개를 끌고 한의 앞에 이르자 한이 직접 고기를 베어 던져주었다. 상이 하직하고 나오니, 빈궁(嬪宮) 이하 사대부 가속으로 잡힌 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용골대가 한의 말로 빈궁과 대군 부인에게 나와 절하도록 청하였으므로 보는 자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사실은 나인(內人)이 대신하였다고 한다. 

용골대 등이 한이 준 백마에 영롱한 안장을 갖추어 끌고 오자 상이 친히 고삐를 잡고 종신(從臣)이 받았다. 용골대 등이 또 초구를 가지고 와서 한의 말을 전하기를, "이 물건은 당초 주려는 생각으로 가져 왔는데, 이제 본국의 의복 제도를 보니 같지 않다. 따라서 감히 억지로 착용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의(情意)를 표할 뿐이다." 하니, 상이 받아서 입고 뜰에 들어가 사례하였다.[8] 

-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30일 경오 2번째기사


맨 마지막 문단을 보면 청나라 황제에게 절할 때까지만 해도 원래 복장이었으나, 절이 끝나고 돌아갈 때 즈음에서야 용골대한테서 청나라 갖옷을 받아 갈아입고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대로 비유하자면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들이 나시와 트렁크 팬티를 입고 기자회견을 하도록 권유(?) 받는 것 이상이다. 참고로 그 당시의 의복은 제도상 사대하던 명나라의 천자가 결정하여 제후와 신화, 백성들에게 내리는 것으로[9], 조선의 사람들은 왕이든 백성이든 명나라가 정한 옷 말고 다른 나라 옷은 입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선에서 그것도 왕이라는 사람이 명나라의 적인 청나라의 옷을 입었다는 건 매국과 다름없는 짓이었던 셈.절한 걸로도 모자라서 확인사살까지

즉, 명나라의 의복 제도를 따르던 조선의 왕이 청나라 황제가 내려준 의복을 입었다는 것은 조선이 명나라의 영향권을 벗어나 청나라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정치 퍼포먼스였다. 중국의 변발이나 구한말의 단발령의 반발이 강력했던 것도 당시에는 머리 모양도 이렇게 엄격한 의복 복제의 일부로 봤기 때문이다.

거기에 청나라는 왕이 입는 곤룡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하들이 입는 옷도 아니고, 평민이나 입는 남염의(藍染衣)를 주었다.[10] 용포는 명나라에서 하사한 의복이어서 금지되고, 거기에 대륙의 주인인 청나라에 거역한 죄인이란 의미에서도 복장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용골대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나라 측은 이를 좀 더 굳히기 위해 항복 예가 끝나면 그대로 명나라에서 하사했던 고명과 의복, 장구류는 죄다 반납해라 했지만 그 와중에 조선 측은 일말의 여지라도 챙기고 싶었는지 피난 중에 잃어버렸다며 좋게 말하면 패기 좋은 것이고 사실적으로 말하면 만용을 부렸다(...).

원래 법도대로라면 이 시점부터 인조는 명나라 제도인 익선관곤룡포를 버리고 청나라의 사발형 관모와 청나라 관복인 망수의를 입어야 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조선 왕들은 그 후로도 나라가 망할 때까지 명나라식 익선관과 곤룡포를 유지했고 청나라 사신들도 별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





이 삼전도의 굴욕으로 인해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국가' 가 되었고 


이때부터 조선은 청나라의 시도때도 없는 억지,모욕적인 주종관계를 빌미로 한 온갖 노리개질을 다 당했음;

후대에 현종 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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