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이 겪은 이야기인데 존잼ㅋㅋㅋㅋㅋㅋㅋ

필력 쩔어서 후루룩 읽혀ㅋㅋㅋㅋㅋ

1.

내가 있던 논산 훈련소에는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공중보건의가 될 전문의들만 모아놓은 중대들이 있었다. 나도 이 틈바구니 속에서 4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했다. 국방부의 편의를 위해 한 곳에 몰아넣어진, 대부분 그 해 전문의가 된 전국에서 모인 각종과 전문의 수 백명은 의료계에선 실로 그 기세와 위용이 대단했다. 그 인력을 고스란히 사회에 데리고 나가면, 서울을 포함한 5대 광역시도 넘쳐서 국내 10대 도시에 종합병원을 몇 개씩 새로 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품새만 들어서는 불치병도 고쳐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집단은, 안타깝게도 훈련소에 들어와 있으면 그냥 까까머리에 서른 줄이 훌쩍 넘은 오합지졸 훈련병 떼에 불과했다. 그래서 한 방에 전문의만 십 수명씩 들은 수 십개의 병영은, 듣기만 해선 병마도 숨이 막혀 피해갈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들의 고령과 허약한 체력으로 말미암아 각종 질병의 경연장이 되었다. 입소 며칠만에 의사들만 가득찬 이 병영 한 층은 거대 병실을 옮겨놓은 것처럼 콜록거리는 기침소리와, 폐병쟁이를 연상시키는 거친 가래 내뱉는 소리로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게 되었다.
우리는 사회에 있던 당시의 기지를 발휘해서 몰래 숨겨온 형형색색의 항생제를 포함한 각종 약들을 자가 복용했다. 하지만, 열악한 위생 상태와 불길처럼 번지는 병마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는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질병을 앓아 돌아가면서 드러눕곤 했다.

2.
그렇다면 이 가엾이 앓는 훈련병들을 치료할 사람이 있어야 했다. 국방부에서 이 전문의들을 치료하기 위해 정해놓은 의료인은 바로 중위 군의관 한 명이었다. 자, 중위 군의관은 전문의가 아닌 인턴만 마치고 군대에 오게 된 그 역시 가엾은 친구다. 그리고 자기보다 4년이나 수련을 더 받은 전문의 몇 백명을 진료해줘야 하는 고역을 맡았으니, 그 역시 얼마나 가엾은 친구인가. 이 장면을 쉽게 표현하면, 애플 스토어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아이폰을 판매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티븐 잡스 수 십명이 아이폰을 사러 와서 한가지씩 기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꼴이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진료시간은 일과가 끝난 밤부터 한 두시간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그는 몇 백명에 달하는 전문의 진료를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의료 서비스에 익숙한 그들에게 아무런 불평불만도 나오지 않게 잘 해내고 있었다. 자,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이 뒷 얘기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되지 않는가?

3.
나는 개중 건강한 훈련병이었으므로, 그리고 훈련소의 부당함에 대해 고뇌하느라 바빠 이 기묘한 의료서비스에 관해 크게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훈련소 생활 초반에는 이 진료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지 못했었다. 그러던 훈련소 생활 막바지에 나도 호되게 앓아 누울 일이 생겼다. 그래서 하루 진료를 받으러 야간 시간에 이 기묘한 진료실을 방문했다.
거의 강당만한 대기실에 들어가자 이미 많은 고령의 시커먼 까까머리들이 주저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묻고 답하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는데, 한 의무병이 나에게 건네주는 것을 받아보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풀렸다. 그것은 내 챠트였다. 뒤에는 사용 가능한 약과 약전까지 별첨으로 붙어 있었다. 의무병은 말했다. '늘 하던 것처럼 서로 진료 보시고 챠트 적어오시면 됩니다.'
그렇다. 이 중위 군의관은 자기에게 부과된 신성한 진료의 의무를 환자들에게 오롯이 떠맡겨버린 것이었다. 환자들의 자치구처럼, 환자들끼리 서로 진료를 보든지, 혹은 직접 자기가 스스로 진료를 보는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우리는 간단한 진료 도구도 사용할 수 있었고, 이 의무실에서 사용가능 한 범위의 처방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응급의학과였기 때문에 더욱 바빴다. 나는 우리 분대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기관지염을 진단하고 유려한 의학용어로 챠팅했으며, 성형외과 전문의의 목감기도 하나 챠팅했고, 내 챠트를 내 스스로 증상에 관해 쓰고 기술하고 진단해 먹을 약을 잔뜩 써냈다. 그렇게 자가 진료를 전부 마친 환자들이, 자기 챠트를 들고 길게 나래비를 서서 한 명의 공식적인 의사를 만나는 것이었다.

이 의사는 방관자나 감시자의 역할을 맡은 냥 환자가 적어온 챠트를 받아 들고, 환자의 얼굴을 쓱 본 다음에, 그 챠트를 자기쪽 챠트로 배껴넣고 크고 화려하게 싸인을 했다. 환자가 가져온 그 챠트에 군 부대 병원 진료라고 써 있으면 그는 그냥 그걸 베껴 넣었으므로, 우리는 글 한 줄이면 군 부대병원까지 갈 수 있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인력과 지식들을 놀리지 않고, 모두에게 불만도 없으며, 진료 시간도 줄이는 데다가, 혹시 부끄러워 질 수도 있는 자기 목소리를 줄이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감시자의 역할만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한 환자가 진지하게 손에 난 피부병에 대해서 묻자 그는 물끄러미 그 병변을 보더니 외쳤다. "여기 피부과 선생님 안 계십니까?" 그가 그렇게 외치자 복통인지 배를 움켜잡고 줄 뒤에 서있던 한 까까머리 환자가 갑자기 슥 나와 의사가 됐다. 그는 병변을 보고 몇 가지를 묻더니 유려하게 설명하고, 그 환자는 고개를 끄떡인다. 그 중위 군의관은 뒤에 덧붙인다. "들으셨죠?" 설명을 마친 피부과 전문의는 다시 배를 붙잡고 있던 자리로 돌아가 환자가 된다. 이 과정처럼 그는 제법 명망 높은 중개자 역할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의사들만 우글거리는 기묘한 진료실은 의사와 환자가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고 다시 넘어오는 흡사 의학계의 파티장과도 같았다. 한 명의 공식적인 의사는 그 파티의 호스트처럼, 매일 밤 의료계의 잔치를 묵묵히 주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방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국의 전문의를 한데 모아 놓고 덧붙여 넉넉히 제공해준 비위생과 병마로 인해서, 이러한 심심한 재미를 베푸는 유토피아적 진료실도 창조해 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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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다시피 나는 논산 훈련소에서 4주 훈련 과정을 수료했다. 입소 전에는, 나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4주간 막연히 아침에 일어나 러닝을 입고 뜀박질을 하고, 저녁 점호를 마치면 취침에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수료를 마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수십 년간 전국의 민간인들을 소집해 4주 만에 날고 기는 유수의 훈련병으로 키워낸 전통의 논산 훈련소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입소하자 곧 우리는 이 훈련소의 시스템이 나름 체계적으로 짜여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교의 학점 이수 체계처럼, 수 천명의 훈련병들은 훈련소에서 정해놓은 과목을 누락 없이 전부 이수해야만 용맹한 훈련병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정해진 일정표에 따라 우리는, 몇몇 부대의 고귀한 명사들에게 불굴의 전사가 되는 법에 대한 강의를 듣기도 했고, 실제로 전투하는 방법을 배워가면서 심신을 수양하기도 했다.
그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많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주요 일과는 훈련병 숙소 입구에 붙어있는 일정표를 매일 같이 숙지하고, 이미 수료한 과목과 남은 과목이 무엇인지 셈해가며 사회로 복귀할 날짜를 세는 것이었다. 그중 심신을 단련해야 하는 과목은 열 개가 좀 안 되었는데, 유격, 각개전투, 영점사격같이 이름만 들어도 현대 보병의 느낌이 물씬 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유난히 우리 눈에 띄었던 과목은 구급법이었다. 이것은 분명 부상당한 전우를 정의로운 손길로 구해내 국군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나아가서 국민 건강의 증진을 꾀하는 숭고한 과목일 것이었다.

2.
이번에도 알다시피, 우리 중대는 전문의만 이백 명이 넘게 소속되어 있는 중대였다. 이들은 스무 살부터 육 년간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어 오 년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서른 줄에 훈련소에 오게 된, 평생을 의학에 몸을 담근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구급법은 실제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이미 몇 백차례쯤 시행해 보았을 그들의 본업이자 밥벌이었던 것이다. 전국의 모든 훈련병들이 균일한 교육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목이 굳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이 시간에 대해서 미리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군대라고 하지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구급법을 가르칠 것인가. 시작부터 교육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인가? 이건 전국 판사들을 모아놓고 배심원 하나가 법학 개론을 가르치는 것이나, 전국 프로게이머 워크숍에서 한 인터넷 이용자가 게임에 최적화된 마우스 쥐는 법을 가르치는 것 아니면, 전국 군 간부 회의에 가서 의사가 각개전투를 가르치는 꼴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입소 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군대에서는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명제였다. 이 훈련소의 묘하게 강압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우리는 구급법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기대에 부풀어갔다. 과연 구급법에 배당된 세 시간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 것인가. 군에서 지레 포기해 우리는 세 시간 동안 훈련병의 소임을 태업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로 근엄한 스승이 되어 구급법을 가르쳐 우리를 구급법의 소양을 갖춘 용맹한 전사로 만들어 줄 것인가. 어떤 결론을 생각하더라도 상당히 흥미로운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훈련에 열중하는 동안 훈련소에서의 무료한 시간은 더디 흘러갔고, 드디어 구급법 시간은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야 만 것이다.

3.
고대하던 구급법 시간에 전문의 수 백 명은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인체 모형을 가운데 두고 교육 대형으로 사열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흥미진진한 분위기가 중대에 완연해 있었다. 훈련병 수 백 명의 평균 나이보다 살짝 어린 중대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걸어 나와 단상 앞에 섰다.
"자, 훈련병 여러분. 이번 시간은 구급법을 배워보도록 하겠다. 잘 알다시피, 구급법은 전우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면,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잘 보도록 하겠다."
조교는 곧바로 시범을 보이기 위해 중대장 뒤에 대기하고 있었다. 중대장의 소개 멘트가 끝나자, 국문학과를 일 년 다니고 휴학해 군대에 와서 논산 훈련소로 배정받은 스물한 살의 숙련된 구급법 조교는 긴장해 마른침을 꿀떡 삼키고 전문의들 앞에 섰다. 그에게선 근엄한 스승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고, 다만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할 것인지 고뇌하는 기색이었다. '세상에, 내 인생에 이런 강좌가 있다니. 이거 기념사진이라도 남겨야겠어.' 정도의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청중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훈련병들. 옆에 있는 훈련병이 쓰러지면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조교님은 일단 주위를 둘러보고 저희가 지나가는지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훈련병이 대답하자 좌중은 낄낄거렸다.
"훈... 훈련병. 잘난체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그럭저럭 교육은 시작되었다. 숙련된 구급법 조교는 심폐소생술의 당위성과 그 숭고한 가치에 대해서 매뉴얼대로 나열하고는 구체적인 방법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좌중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부분 심각하게 턱을 괴고 그 혼신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선 조교는 실제 모형으로 심폐소생술을 해 보였다. 팔이 덜덜 떨려 그는 금방이라도 넘어져 인체 모형을 부둥켜안고 뒹굴 것 같아 보였다.

4.
조교의 위태로운 시범이 그럭저럭 끝났다. 그는 방금 나라를 구한 시원한 표정으로 본디 자리로 돌아가 부동자세로 섰다. 강단에는 다시 중대장이 돌아와 훈련병 앞에 나섰다. 그는 느릿느릿 말문을 열었다.
"훈련병들. 교육 잘 보았나?"
"넵. 잘 보았습니다."
"자, 이게 논산 훈련소 구급법 교육의 현 주소이다. 그렇다면, 이제 전문가인 여러분의 차례이다. 방금 보았던 교육에서 지적할 사항과 장단점을 중점으로 해서 훈련병들이 우리에게, 그리고 여러분 사이에서도 구급법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훌륭한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이상."
그랬다. 처음부터 이 중대장은 교육기관장의 소임을 다해 이 훈련병들을 구급법에 숙달된 용감한 전사로 키우는 것에는 본디 뜻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는 군에서 발휘할 수 있는 제한된 현명함으로 이 교육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중대장은 자기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사열에 들어가, 전문가의 구급법 강의를 기다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많은 조교들도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각자 사열로 들어갔다.
스승과 제자는 뒤바뀌고, 상황은 역전되었다. 평생 몸담았던 본업을 떠나 일련번호를 받고 전투는커녕 자기 몸도 건사 못하는 훈련병 생활을 근근이 버텨내던 전문의 수 백 명은 갑자기 멍석이 깔린 셈이 되었다. 그들은 직업을 되찾자 갑자기 신이 났다.
각 분대별로 구급법에 달통한 이들이 손을 들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인체 모형 앞에서 역대 구급법의 변천사와, 군에서 활용해야 하는 특수 상황의 구급법에 이어서, 입소 직전까지 보고 왔던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표된 구급법의 최신 지견에 대해서 난상토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응급의학과와 내과, 흉부외과, 기타 구급법 관련 전문과들과 기타 구급법이 기본 소양인 모든 의사들이 구급법의 실패와 성공 사례에 대해서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하자 각 분대의 교육장은 구급법계의 거대한 정수처럼 변했다. 이 토론을 듣고 있자 하니, 이들은 전쟁에서 부상자를 전부 벌떡 일으켜 버릴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숙련된 구급법 조교였던 교관들은 각 분대에 껴서 이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해도, 이 토론을 머릿속에 새겨가고 있었다. 이렇게, 이 중대장은 약간의 현명함을 발휘해, 자칫 태업할 수도 있었던 세 시간을, 논산 육군훈련소 구급법계에 거룩한 진일보의 발걸음을 내딛는 쾌거를 이룩하는 시간으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이처럼 국방부는 전문의가 모인 중대에도 다른 훈련병과 똑같이 구급법 교육을 주문함으로써, 스승과 제자가 제자와 스승으로 변해 심심한 재미를 주는 난상의 교육장을 창조해낸 것이리라.

출처-남궁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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