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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강명석의 This is it] 당신의 '덕질비용'은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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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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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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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KBS ‘김생민의 영수증’에 출연한 박지선은 과거 보이그룹 H.O.T.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H.O.T.의 모든 앨범을 사는 것은 기본이었고, H.O.T.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 신발 치수와 머리 색깔도 멤버들을 따라했다. 그래서 그는 이 날 방송에 영수증을 제출한 시청자의 입장을 이해한다. 이 시청자는 지난해 27세로, 인생의 절반이 넘는 14년동안 보이그룹 동방신기의 팬이었다. 그의 영수증은 지난 해 멤버 유노윤호가 제대한 뒤 연 동방신기 팬미팅을 위한 여정과 다름 없었다. 동생과 함께 가기 위해 팬미팅 티켓을 예매하고, 팬미팅에 입고 갈 옷과 백팩을 산다. 영수증을 분석, 돈을 아끼도록 조언하는 진행자 김생민이 백팩에 대해 ‘파생 상품 스투핏’이라 말하는 등 지출을 줄일 것을 제안하면, 이른바 ‘덕질’을 해 본 박지선은 자신의 경험을 언급하며 시청자를 옹호했다. H.O.T.의 앨범을 감상용과 보관용으로 하나씩 나눠 사던 그에게 동방신기의 팬이 같은 굿즈를 두 개씩 사는 모습은 당연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1996년 데뷔한 H.O.T.의 팬이었던 박지선과, 2004년 데뷔한 동방신기를 지금까지 좋아하는 이 시청자의 ‘덕질’은 매우 다르다.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당시 10대이던 박지선은 H.O.T.가 좋아서 그들의 숙소를 찾아갔다. H.O.T.를 응원하기 위해 다른 가수들과의 합동 공연에서는 ‘X’자가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했다. 다른 가수들은 응원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반면 요즘 아이돌의 사생활을 따라 다니는 것은 팬덤 내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또한 영수증을 보낸 시청자는 방탄소년단의 팬인 친구에게 그들의 앨범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금도 사생활을 따라다니는 팬이 있고,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아이돌 팬덤끼리 온갖 마찰이 벌어지지만, 과거처럼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20여년 전 팬이었던 박지선은 H.O.T.에게 미안한 것이 많아 공연장에서 박지선처럼 ‘미안해요 H.O.T.’를 외쳤다. 그만큼 좋아하는 아이돌은 문자 그대로 우상이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요즘 아이돌의 팬들은 아이돌이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에 따라 ‘소비’여부를 결정한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H.O.T.와 동방신기, 1990년대 후반의 팬과 2010년대 후반의 팬 사이에는 그만큼 다른 ‘덕질’이 있다.


영수증에 따르면, 동방신기의 팬은 팬미팅을 가기 전 옷을 여러 벌 사고, 손톱을 꾸몄다. 이에 대해 박지선은 “오빠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수증에는 그 밖에도 동생과 음식을 시켜 먹고, 묵을 호텔을 예약하고, 팬미팅에서 팬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포토카드와 먹거리를 위해 쓴 비용도 적혀 있었다. 김생민이 “공연으로 가기 위한 대장정”같다고 말했을 만큼, 이 팬의 지출 내역은 팬미팅이 다가올수록 스스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느껴진다. 동방신기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덕질’을 하는 자신의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다. 알지 못하는 팬들에게 포토카드나 먹거리를 나눠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생민은 이런 행동에 대해 “팬클럽 회장”이 아니냐며 궁금해 했지만, 요즘 아이돌의 행사에는 어떤 이유 없이 팬들과 ‘나눔’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즐겁기 때문이다.


보이그룹 워너원의 멤버 박지훈의 팬은 SBS라디오 ‘컬투쇼’에 이런 사연을 보냈다. Mnet ‘프로듀스 101’ 방영 당시 전 남자친구에게도 박지훈에게 투표할 것을 부탁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전 남자친구의 현재의 여자친구 또한 박지훈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됐다. 박지훈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 사람이 친해지면서, 현재의 여자친구는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만큼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로 이른바 ‘달리는’ 것은 요즘 팬들에게 중요하다. 더 이상 좋아하는 아이돌이 절대적인 ‘오빠들’이 아닌 성인 팬에게는 ‘달리는’ 것이 일상의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다. 최근 아이돌 팬덤들이 팬덤내 분위기를 중시하고, 특정 아이돌의 ‘덕후’가 되려는 경우 팬덤 분위기를 살피는 이유 중 하나다. 팬덤 분위기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팬에게 있어 팬덤 활동이 주는 즐거움이 그들의 일상에 깊게 들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이돌 ‘덕질’은 단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 이상의 범위로 넓어진지 오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다른 분야의 ‘덕질’ 역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적어도 소비자이자 팬의 ‘덕질'이 중요한 산업이라면, 팬이 좋아하는 대상을 기획하는 것 이상으로 팬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김생민은 동방신기의 팬에게 ‘덕질비용’으로 1년에 35만원을 제시했다.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싶다면, 김생민의 말처럼 해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팬의 ‘덕질’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 행위에 35만원만 쓰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것은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김생민에게는 ‘덕질 비용’은 최대한 아껴야 하는 것이다. “오빠들"의 말을 듣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그 때의 박지선은 H.O.T.를 위해 썼을 것이다. 그리고 이 동방신기의 팬에게는 인생의 즐거움을 얻는데 쓰는 비용이다. 물론 그는 8년동안 저축을 해서 독립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덕질’과 독립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 됐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김생민은 이런 질문 자체가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덕후’들이 있고,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김생민의 의지와 다르게, ‘ 김생민의 영수증’은 그가 미처 몰랐던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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