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24/7/365 두통이 시작되었을 때, 어딜 가도 안되니까 누가 정신과를 가 보래서 갔어요
가니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의사: 여자친구 있어요?
나: 없어요
의사: 왜 없어요?
나: ????? 몰라요
의사: 그 나이대에는 여자를 갈구할 때인데 왜 없어요? (제가 20살 때)
나: ??? 글쎄요... 그렇다고 제 성정체성이 다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의사: 그건 모르는거에요. 자기 자신을 자기가 억누르다보면 두통이 올 수도 있어요
나: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한 번도 없는데요
의사: 그건 모르는거라니까요
이러다가 짜증나서 그냥 나왔어요
그러다가 8년쯤 있다가, 누가 두통에 잘 드는 약이 있다고 해서 물어보니까 우울증 약이 잘 들었다고 함... 그래서 학교에 있는 스트레스 클리닉(사실상 정신과)를 갔어요
그 사이에 뭐 힘든 일도 있고 여러해동안 두통을 계속 앓다보니 우울증 진단을 받았죠
계속 상담을 하고 약을 먹었어요
저더러 계속 얘기를 시키고 그걸 들으면서 컴퓨터에 계속 기록을 하던데, 보다보니 제 얘기보다는 얘기할 때의 제 손동작이나 행동거지, 시선처리를 더 눈여겨보고 기록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얘기는 시켜놓고 별로 존중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냥 관찰대상으로 취급받는 느낌이랄까,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냥 계속 갔어요.
약을 먹는데, 부작용이 꽤 많았어요. 선생님 말씀으로는 본인이 진짜 약을 약하게 쓰는 편이고, 감기약보다도 부작용이 더 없는 약인데도 저는 토할 것 같고 어지럽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뭐 그래서 약을 계속 바꿨어요. 그러다보니 저한테 맞는 약이 찾아졌어요.
두 번째 정신과를 갈 때, 저는 몸이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어요. 학위과정 막판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잠들때까지 계속 하품하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가만히 멍하게 있는 상태. 선생님 말씀으로는 제가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나는 괜찮아, 이건 원래 그런거야' 뭐 그런식으로만 생각하다보니 몸이 계속 축나서 번아웃 상태가 된거라고 했어요.
약을 1년 넘게 먹고 상담을 계속 받다보니,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는데, 어느 순간 제가 하품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고 내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되더군요.
이 얘기를 하는건, 정신과 선생님도 천차만별이고 정신과 약도 천차만별이에요. 자기에게 맞는 선생님과 맞는 약이 있는데, 그냥 한 번 만나보고 한 번 먹어보고 '아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해 봤는데 안되는거 보니 이쪽은 아닌가보다'하고 멈추는게 아쉬워서에요.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혈압에 문제가 있으면 혈압약을 먹고 혈당에 문제가 있으면 혈당약을 먹듯이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에 문제가 있으면 정신과 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정신과쪽 문제를 너무 크게 생각하거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좀 힘들다 싶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찾아가 보시고, 좀 안 맞다 싶으면 그냥 딴데 찾아가보시기도 하고 약이 안 맞다 싶으면 당당하게 안 맞으니 바꿔달라고 요구해 보시기도 하면 좋겠어요.
종현이 썼다는 유서를 보니, 좋은 선생님과 좋은 약을 먹을 기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