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이 27살이 되던 해에 첫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 3년 째가 되던 해, 마침 예안에 귀양가 있던 권질(權礩)이 그를 불렀다. 권질에게는 집안의 참극[11]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여식이 있었는데, 권질은 이황에게 "자네가 아니면 내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네"라며 간곡하게 부탁 하였다. 결국 이황은 권질의 여식을 아내로 받아들인다.
유홍준의《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권씨부인을 요즘말로는 '사이코'라고 표현하였다. 흠좀무...후술된 행동을 보면 아마 일족의 몰살로 인한 충격에 의하여 유아퇴행을 한 것 같다. 그래도 이황의 성격이 무던해서 서로 잘 지냈던 모양이다. 덧붙여 첫째부인이 많은 유산을 남겨놓고 죽었기 때문에, 이황은 그 덕을 보았으며, 첫째부인의 어머니, 즉 장모를 장모가 죽을 때 까지 보살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병을 앓던 권씨는 이황을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하였는데, 그녀는 제사가 시작되기 전에 제사상에 있는 배[12]를 남몰래 집어 치마 속에 숨겼고, 결국 이일을 깨달은 이황의 형수가 그녀를 질책하자 이황은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음식을 먹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 일입니다. 하지만 조상님께서도 후손을 귀엽게 여기실 터이니 손자며느리의 행동을 노엽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라고 변설하여 아내를 감싸주었다.
나중에 제사를 마친 뒤 이황이 아내에게 왜 그랬냐고 묻자, 권씨부인은 배가 몹시 먹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하였다. 이에 이황은 아내를 위해 배를 가져다가 손수 깎아 주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스윗, 아래부터는 TMI
짐승 이황
또다른 일화는, 평소에 몸이 약했던 이황이 장가를 가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당시에는 혼인 후 한동안 여자쪽 친정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에 따라 이황도 첫날밤을 처가에서 치렀는데, 이황의 장모는 병약한 사위가 제대로 일을 치렀을까 걱정이 되어 다음날 딸에게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때 딸의 대답이 가관이다. 딸이 말하길, "말도 마이소, 짐승이데예..."
(아마 첫째 부인인듯)
율곡의 제자들과 이황의 제자들이 서로 자신들의 스승이 더 성현이라고 우기다가 결국 그들은 그들의 스승들의 밤일(…) 광경을 보았다.
율곡이 참으로 얌전하게(…) 일을 치른데 비하여 이황은 알려진대로 격렬하게(…) 일을 해서 다음날 이황의 제자들이 "성현으로서 어찌 그렇게 짐승처럼 일을 치릅니까!"하고 따지자 이황이 웃으며 3번 항목의 부부관계에 대한 말을 하며 "율곡은 밤일도 그렇게 너무 조심스럽게 치르니 후사를 늦게 얻을 것이다"라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퇴계의 종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17대 종손 이치억씨가 퇴계철학을 공부하여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등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나 율곡은 본처에게서 적자를 얻지 못하여 서자가 대를 잇는 등 후손들이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를 근근히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율곡 종손들에 비하면 퇴계 종손들은 자손 규모에서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한편 사람들이 부인에게 이황에 대해 물으니 (앞에서 소개한대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낮 퇴계랑 밤 퇴계는 다른 사람이다."낮져밤이라고 이야기했다는 소리도 있다(…). 어디까지나 야사인지라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이 '낮퇴계 밤퇴계'는 현대에도 이황의 이중적인(?) 면을 가리키는 농담으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