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원칙 버리진 않겠다” 기사 中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1676
기자- 헬기로 환자 이송하는 걸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이름도 모르는 이를 살리려고 이렇게 애쓰는 분들이 있구나 생각하니 왠지 울컥했어요.
이국종 교수-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저한테 잘못 오신 것 같아요.”
그가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당황스러웠다.
기자- 왜요? 기를 쓰고 살려내려는 분들을 보니 생명에 대해서 경외감도 들고….
이국종 교수- “굉장히 아름다운 생각이지만, 생명을 살리네 어쩌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오히려 이 일을 하루도 못 하죠.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는데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지?’ 그런 생각이 들 거 아녜요? 의사가 헬기 동승하는 거, 의료보험 수가 10원도 안 잡혀요. 저희는 성과급도 거의 없어요. 의료보험 적자 난다고 월급이 깎이기도 하고요. 전 그냥 일로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시는군요.”
기자- 제가 뭘 모르는데요?
이국종 교수- “제가 이 정도인 걸 모르시고, 너무 좋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밖에서도 쓰레기, 안에서도 쓰레기. 다들 절 싫어해요.”
기자- 왜 싫어해요?
이국종 교수- “시끄럽다고. 나만 없으면 ‘에브리바디 해피’한데 자꾸 시끄럽게 한다고요.”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엔 냉소와 자괴감, 분노와 절망감이 뒤얽혀 있어서 단방에 진심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다행인 건, 그가 나한테 가라는 소린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단순화할까봐 그는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이국종교수가 열심히 환자를 살릴수록 병원입장에서는 적자만 불어나 오히려 민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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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추석 맞이하여 오랜만에 쉬는 동안 오랜만에 글 좀 써보려고합니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후에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을 망친다’라는 말이 있죠.
의료계도 마찬가집니다.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이 포장되어 의료계를 망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스스로 포장한 것은 아닌게 더 큰 문제죠.
이국종 교수만 해도 마찬가집니다. 이미 이국종 교수는 한계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3088124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1676
본인도 한쪽 눈이 실명할 정도고, 밑에 있는 다른 교수는 일년에 4번 집에 가고. 절대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죠? 그렇다고 교수 월급이 뻔하기도 하고 외상센터가 돈 벌어다주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이국종 교수가 받는 월급이 일반의가 미용의료3년 정도 경력 쌓고 버는 돈과 차이 없을 겁니다. 차라리 후자가 돈 더 벌 가능성이 높겠죠.
돈돈돈 거리지 말라는데 돈 벌어서 가족 부양해 보는 경험 없으면 쉽게 얘기하지 마세요. 돈 때문에 양심팔아도 안되지만, 돈 더 많이 주는 일이 매력적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겁니다. 500만원 벌 때보다 1000만원 벌 때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늘어나고, 노후자금 마련해서 노후에 풍족하게 사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외상외과 특성 상 정년 넘기고 하기는 어려울텐데, 경제적 보상이라도 많으면 은퇴 후 여유롭게 살 수 있겠지만 지금 정도 수준의 보상이면 은퇴 후 사학연금 밖에 없으니 생활수준 유지하려면 요양병원 같은 데서라도 일해야 할 겁니다.) 위에 언급한 이국종 교수와 미용 일반의 벌이가 별 차이 없다는 건 냉정하게 말해 자본주의 하에서 둘의 행위에 대한 가치를 비슷하게 본다는 겁니다.
외상외과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거기에 제대로 돈을 쓴다면 적어도 힘든 일을 하는 외상외과 의사 및 의료인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통해 가치를 인정해주거나 (위에 얘기했듯 금전적 보상이 크면 은퇴 후 여유롭게 살 기회가 많아집니다.), 더 많은 인력을 뽑아서 일년에 4번 집에 가는 일은 없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죠? 이국종 교수가 말하듯 외상외과 환자들은 저소득층이 대부분입니다. 사회적 파워가 없으니거기에 재원을 투자하라는 목소리는 작을 수 밖에 없죠. 대신 이국종 교수만 영웅 만들기 하는 겁니다. 그건 돈 안 들거든요.
그런데 이국종 교수처럼 상위 1% 정도의 사명감을 가진 의사1명과 10% 정도의 의사 10명 중 누가 더 많은 환자를 구할까요? 당연히 아무리 1명이 날고 기어도 10명보다 많이 살릴 수없습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경제적인 보상 수준은 박하면서, 이국종 교수나 동료 교수처럼 본인의 신체든 가족이든 희생해가면서까지 할 매우 강한 사명감을 요구한다면 99%의 의사들은 거기에 도달할 수 없으니 알아서 포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남은 1%가 자신의 몇배 역량의 일을 하다 지치고 쓰러지겠죠. 그게 지금 이국종 교수가 처한 현실입니다.
그러니 이국종 교수를 보고 ‘보아라 너희 의사들아 돈독 오르지 말고 이국종 교수처럼 살아라’를 외칠수록 이국종 교수 옆을 채워줄 동료는 생기지 않고 이국종 교수 혼자 외롭게 만드는 겁니다. 외상외과 같은 분야는 워낙 힘든 분야이기 때문에 지금의 몇배를 주더라도 저같은 사람은 절대 선택 안 합니다. 하지만 고생에 비해 박한 보상, 그리고 자신의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엄청난 사명감 요구에 그 길을 포기한 ‘어정쩡한 사명감을 가진’ 동료들은 많이 봤습니다. 적어도 그 들이 원래 가고자 하던 길을 갔다면 이국종 교수가 외롭게 저 길을 가고 있지않겠죠.
의사에게 사명감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돈 때문에 환자에게 해를 주지 말라는 겁니다. (Do no harm.) 그 외에는 사명감과 돈을 결부지을 당위성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사명감 넘치는 의사라도 한들 직원 월급, 수술 기구, 의약품, 병원 임대료 모든 게 다 돈입니다. 이국종 교수가 개업하면 임대료 면제라도 해주는 거 아니잖아요? 슈바이처 박사도 아프리카에서만 있던 게 아니고 모금 받기 위해 수시로 유럽온 것은 아시나요? 의사라고 돈에 초월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신 양심을 팔아먹지는 말라는 최소한의 사명감은 가져야 하겠죠.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인 이상 사명감이 필요한 중요한 일일수록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통해 사회적 자원이 흐르도록 해야죠.
영웅 이국종 대신, ‘수많은 평범한 의사 이국종’을 만들어야 이국종 교수의 길이 홀로 가는 길이 아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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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글을 오해하는 분이 더 계실까봐 댓글로 추가해 봅니다.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이 있습니다. 이 훈장은 자신의 임무를 뛰어넘어, 생명을 기꺼이 내던지면서 용맹을 보여준 군인에게 수여해줍니다. 군인에 대한 대접이 좋은 미국답게, 수훈자에게는 어마어마한 대우가 주어집니다. 문제는 이 훈장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죽어서나 받거나 죽지 않더라도 심각한 장애가 남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죠.
데스몬드 도스는 명예 훈장 수훈자 중 굉장히 예외적인 사람입니다. 총 한번 안 들고 명예 훈장을 받은 군인이죠. (이 사람을 다룬 영화 핵소 고지가 올해 초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종교적인 신념으로 총을 들 수는 없지만, 미국 국민으로서 전쟁에 참여하기 원했던 그는 여러 논란 끝에 의무병으로 참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동료들은 굉장히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겁니다. 전쟁터에서 총 안 들고 군인으로 싸울 수 있다니.
하지만 도스는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른 누구보다도 훌륭히 수행합니다. 무려 2만명의 미군이 전사한 오키나와 전투에서, 수 많은 동료들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마에다 고지에서 도스는 죽을 각오를 하고 적진 한복판에서 쓰러진 동료들을 하나하나 옮깁니다. 정확한 수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는 일본군의 공격에 의해 부상을 입으면서도 약 75명의 동료를 사지로부터 구해냅니다. 그러한 공로로 그는 총을 들지 않았지만 명예 훈장을 받습니다.
이국종 교수도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볼모지였던 국내 외상외과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에 일부 의사들은 그를 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년 언론에 탄 뒤 그 명성을 바탕으로 다른 일을 할 거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이 언론을 통해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다른 일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오해 속에서, 이국종 교수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10년 넘게 수행해왔습니다. 이제 다른 의사 누구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명예나 돈을 노리고 한 거라면 다른 편한 길이 얼마나 있는지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키나와 전투 이후 도스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 동료들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보았을 때 나타납니다. 데스몬드 도스가 75명을 구했다고 한 들,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은 다른 20,000명의 생명에 비해서 한숨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도스가 뛰어다녔다고 한 들 전사자의 1%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미국 수뇌부들은 이 상황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 전투의 피해를 바탕으로 일본 본토 상륙 시 미국이 감당해야 할 피해를 전사자 50만명으로 예상하였고, 이는 아무리 미국이라 한 들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분석을 바탕으로 결국 미국은 상륙 대신 다른 선택을 감행합니다. 물론 그것은 또다른 비극이긴 했지만, 적어도 수십만명의 미군을 살린 선택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한해 중증 외상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약 30,000명이고 이 중 30%가 넘는 10,000명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진국은 이러한 비율이 10% 정도이므로, 적어도 선진국 수준으로 중증 외상 의료가 발전하면 한해 7,000명 정도를 더 살릴 수 있는 계산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 들, 700명을 넘기는 것은 힘들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키나와 전투 결과를 보고 다른 선택을 한 미국과 달리, 그저 겉으로 보이는 영웅에 훈장 뿌리기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데스몬드 도스의 예외적인 용감함을 칭찬하고 다른 군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외쳐댈 뿐, 그가 수십명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작전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도스 같은 명예 훈장 수여자는 몇명 늘어나겠지만 그들조차 구하지 못한 수만, 수십만명의 목숨은 허무하게 사라질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국종 교수가 의료 시스템을 이렇게 방치하면 안된다고 외치고 있음에도, 훈장 하나 쥐어주고 관심도 안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글쓴이는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