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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가끔 생각나서 꼭 찾아보는 글(miss you m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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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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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실려있는건지 누가쓴건지는 모르겠는데 수년전애 우연히 보고, 가끔 찾아서봐

4년전 LA공항에 처음 내릴 때 난 잔뜩 겁먹어 있었다.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학에 입학해 처음 집을 떠났을 때처럼 쉽게 다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웠었지만, 처음으로 대한 이국의 대도시는 그 크기와, 소란스러움과, 방향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든 지도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로 나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시카코에 계시던 삼촌께서 마중나오시겠다던걸 그 먼거리를 굳이 올 필요 있겠냐며 자신있게 말해 버렸던 순간이 정말이지 후회가 될 무렵쯤에 겨우 난 canbury avenue 까지 가는 버스정류장을 찾았고, 그곳엔 역시 나 만큼이나 무거운 트렁크를 가진 또래 녀석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첫눈에도 대부분이 미국인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선가에서 온 나처럼이나 겁먹고 돈 없고 어눌한 떨거지들이었다. 멍청하게 2시간마다 한대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며 조갑증을 떨쳐버리려고 모르는 서로들에게 온갖나라 엑센트로 말을 걸며 떠들어 댈 무렵, 녀석이 이 멍청이 집단에 합류했었다. 녀석이 이 집단의 중심부, 그러니까 bus stop 사인이 쓰인 곳 옆에 섰을 때 모인 무리들은 그녀석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면서 한발이나 두발 정도 물러서 버렸는데 이유는 그 녀석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 냄새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게 그 유명한 인도카레가 가장 맛있게 되었을때 나는 냄새였다. 녀석은 버스가 올 때까지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고 자기를 두고 수근거리는 통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흘렀을때 떨거지 녀석들은 자신들의 처지도 모른체 녀석이 충분히 들릴정도로 그 고약한 냄새를 두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stinker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고 피워대는 냄새만큼이나 진땀을 흘렸는데 난 녀석들이 점점 못마땅하기시작했다. 사실 그 녀석들 또한 내겐 고양이 만큼이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 녀석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녀석은 얼굴을 활짝펴며 지껄여 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녀석은 버스를 타고가는 두시간여 동안 내게 찰싹 달라붙어 행복한듯 조잘대며 자신의 살아온 얘기며 자신의 취미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시시 콜콜히 얘기했고 버스를 내려서건 오리엔테이션에서건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신입생 두명이 한방을 쓰게 될거란 얘기를 들었을때 난 절망했다. 그녀석이 옆에서 싱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english literature전공이었고 난 computer science였다. 공대와 문과대는 거대한 Landau hall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Landau hall엔 식당과 도서관이 같이 붙어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앞으로 밥을 먹을 때나 공부할 때는 언제나 이 빌어먹을 냄새나는 녀석과 같이일꺼란 얘기였다. 녀석은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stinker라고 불렸고, 난 몇번 내 이름 발음을 가르쳐 주려다 포기하고 녀석에게 맘대로 부르라고 했더니 micky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녀석의 냄새는 녀석의 그 커다란 가방안에 꽉 차있던 카레때문에 곧 나에게도 베어버렸고 난 그 첫달엔 파티나 데이트에 한번도 초대되지 않았다. 한국인끼리 모이는 모임도 있었지만 녀석은 내가 어딜가든 따라오려고 난리였다. 어느날 밤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된 난 녀석이 없는 틈을 타서 방을 어지럽히고 녀석의 지갑에서 약간의 돈과 옷가지 몇개와 그 저주받을 카레를 몽땅 가방에 넣고 쓰레기 소각장에 집어 넣어 버렸다. 카레는 다음날 고약한 냄새의 안개로 학교내를 유령처럼 떠다녔고 그 후 녀석과 나는 그다지 나쁘지 않게 되었다.


녀석은 소설가가 되는게 꿈이었다. 영어권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녀석과 알고 있는 영어단어가 이만개도 안 되는 나 사이에서 녀석은 언제나 대변자 노릇을 해 주었고 그건 또한 둘이서 언제나 같이 다닌다는 얘기였다. stinker라는 별명을 지닌 녀석과 같이 다닌다는건 지금은 그다지 냄새를 풍기지 않게 되었어도 지독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과 나는 Landau hall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 스러워지더니 사이렌 소리가 온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이게 왠 소란인가 싶어서 나가보았더니 저번달에 술취해 한국차를 몰고 150마일로 달린 흑인을 죽도록 두드려 팬 경찰들이 무죄로 판결받아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했다. 거리는 개판이었고 우리는 난감해졌다.


기숙사는 Landau hall에서 약 반마일쯤 거리였고 가장 번화한 곳을 지나야 했기 때문 이었다. 친구들이 한국인이라면 맞아 죽을거라고 나가지 못하게 말렸고 내가 기숙사로 못가자 녀석도 나없이는 무서워 못간다는둥 하더니 남아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물에 둘이서 불구경을 하고 앉아 있자니 새벽 세시쯤엔 책이 라도 씹어 먹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둘이서 굶어 쓰러지기 전에 뭔가 먹을 만할 걸 찾으러 건물내를 돌아다녀 봤지만 빌어먹을 코카콜라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교수 연구실에도 들어가 찾아 봤지만 먹을 만한 거라곤 없었고 비스켓 부스레기 조차 없었다. 제일 꼭대기엔 교장실이 있었는데 접대용으로 쿠키라도 준비해두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크레딧카드로 문을 따고 들어가 보았다. 책상 서랍을 하나 하나 열어보고 책장도 살펴보았지만 먹을 건 없었고 고작해야 틀니정도나 찾을 뿐이었다. 포기하고 나오려고 했지만 영문학 전공인 녀석은 역시 영문학 교수인 교장의 책장에 정신이 팔려 미친듯이 이것저것 뽑아 보고 있었다.


그 때 녀석이 뭔가를 책 뒤에서 발견 했고 그건 1982년산 알래스카 위스키였었다. 배고플때 술을 먹는다는 건 소용이 없는 일이었지만 굉장히 유명한 술이라고 하길래 들고 나와 맛을 보았다. 반쯤 남은 위스키는 진짜 맛있었고 한잔하자 배고픔은 더했다. 문득 갑자기 뭔가 머리에서 떠올랐는데 그건 교장의 방에 있던 커다란 어항과 그 속에서 헤엄치고 있던 비단잉어였다. 세마리가 있었는데 가장 작은 녀석 한마리만 남겨 두고 옥상에 올라가 책상하나를 부숴서 불을 피웠다. 밖의 거리엔 불난 곳 투성이 였으니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책상에 끼워져 있던 철사로 잉어를 끼우고 마쉬멜로우 굽듯 잉어를 굽고 있으려니 기막힌 냄새가 났고 녀석과 나는 교장의 잉어와 위스키로 근사한 파티를 벌였다.

녀석은 언젠간 그 일을 소설로 쓰겠노라고 떠들어 대었다.



LA에 도착한지 9개월 쯤 되었을 때 난 몹시 아파 한국으로 돌아가야했고 그 후 다시 미국에 갈 수 없었다. 녀석은 바람난 아내를 기다리는 것 처럼 날 기다 렸지만 난 한국에서 다른 대학에 입학했고 녀석은 곧 학교를 졸업해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녀석은 매달 한번씩 내게 메일을 보내었고 난 녀석이 졸업한 후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지 어느 거리에 살고 있는지 어떤 출판사에 다니다 어떻게 때려 쳤는지 어떻게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 들었는지 시시콜콜히 다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짓말처럼 녀석에게서 오던 메일이 뚝 끊겼고 그건 날 몹시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고 몇개의 메일이 순식간에 지구 반바퀴를 돌고 난 후, 난 녀석이 AK-47소총으로 무장한 미국사상 최악의 은행강도들이 경찰의 총과 경찰견의 이빨에 피걸레가 되기 몇분 전 강도 한명이 쏜 총알에 뒷머리 반이 날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영화를 보았다.



실험실 후배녀석이 금요일마다 하나씩 빌려오는 비디오를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으려니 대학을 다니는 두명의 멍청이들이 밤에 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내기 위해 교수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여름 방학 동안 그 방에 갇혀서 교수방에 있던 어항의 물과 금붕어로 연명하는 신이 나왔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교수의 방 화이트 보드에 적혀있는 글 때문이었다.      
Miss you Micky  - st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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