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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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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밖에 모르는 나라

연예인의, 연예인에 의한, 연예인을 위한, 연예인밖에 모르는 나라에 산다.


랜만에 TV를 켰다. 유재석이 출연한 광고 두 편이 연달아 나온다. 은행에서 만든 메신저와 은단 제조사인 줄 알았던 곳에서 만든 비타민을 광고한다. 이미 주변 사람 대부분이 사용하는 메신저가 있는데 왜 은행에서 만든 새로운 메신저를 써야 하는지, 은단 제조사가 언제 비타민 전문 업체가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광고가 이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광고는 모델로 유재석을 섭외하는 데 예산 대부분을 쓴 듯하다. 알 수 있는 건 오로지 유재석이 나온다는 것뿐이었다.

허망한 광고를 보니 배가 고프다. 나는 배달 앱을 터치했다. 배달 앱은 ‘O2O’ 영역에 속한다. IT 업계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O2O는 ‘Online to Offline’의 약자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갈만한 모텔을 찾거나, 부동산을 검색하는 등 실제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을 온라인에서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인간의 행동양식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려는 야심이 담긴 표현이다. 하지만 한국의 O2O 앱은 이런 설명이 무색할 만큼 촌스럽다.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대문에 광고 계약을 맺은 연예인이 등장한다. 맥락은 없다. 어느 부동산 앱에서는 걸스데이의 혜리가 나오고 다른 부동산 앱에서는 송승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외국의 O2O 앱인 우버나 에어비엔비를 켤 때 로버트 드니로나 잭 블랙이 나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실은 그런 의문을 접어두더라도 앱의 품질 자체가 처참한 지경이다. 전단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불편한 UI에 디자인은 조잡하다. 어느 배달 앱은 실행만 하면 에러 메시지가 떠서 앱을 다시 완전히 껐다 켜야 하는 메뉴를 한 달이 넘게 메인에 방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쓰는 마케팅 비용에 할인 쿠폰도 있으니 이를 이용해 치킨을 시켜보기로 한다.

나는 신제품 치킨을 시켰다. 포장지에는 치킨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단어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이유 치킨’이다. 여성 연예인의 이름을 음식 앞에 붙이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보느라, 또한 주문한 치킨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서 정작 맛을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다. 치열한 치킨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이를 다시 브랜딩하기 위해 애썼을 이들이 이 포장지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편리를 느낄까? 뭘 하든 일단 ‘아이유 치킨’으로 불리긴 할 테니.

TV도 보기 싫고 소화도 시킬겸 잠시 산책을 했다. 국내 스파 브랜드 매장 앞에 커다란 송중기 사진이 붙어 있다. 입간판, 포스터, 액자 등 매장 안에 총 몇 명의 송중기가 있는지 세어보다 포기했다. 옷을 파는 곳이라기보다 송중기의 집처럼 보였다. 그의 집에도 저 정도의 사진이 진열되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연예인의 사전적 의미는, “연예에 종사하는 배우, 가수, 댄서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2013년 한경 경제용어사전에 작성된 설명을 덧붙이면 “최근 방송의 발전과 문화산업의 성장으로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연예인을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기준으로 위의 사전을 갱신하면 사회적 영향력과 연예인 사이에 ‘광범위하게’를 추가하고, ‘개인 미디어, 뉴 미디어 등 새로운 미디어의 성장’을 덧 붙이면 될 것이다. 미디어가 늘어나며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은 광범위하게 커지고 있고 새로운 미디어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층위의 연예인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변부터 먼 곳까지 촘촘하게 연예인 또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이로 채워져 있다.

디제이 소다가 유명해진 계기는 탱크톱을 입고 춘 피리춤 덕분이었다. 디제이가 디제잉 을 할 때 퍼포먼스를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녀의 피리춤은 좀 달랐다. 즉각 얼굴과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려 한다는 식의 논란이 일었다. 그녀가 프로듀서로서 처음 공개한 드레이크의 ‘Hotline Bling’ 리믹스에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됐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콜라를 흘리는 노골적인 비유가 핵심이었다. 비디오는 유명해졌고 무수한 패러디를 낳았다. 디제이 소다는 얼마 전 첫 EP < Closer >를 발표하며 ‘Kung Fu Dab’의 비디오를 공개했다. 곡의 길이는 3분 4초지만 비디오는 1분 17초다. 그녀가 만든 비트의 구성은 제대로 들을 수 없지만 비디오는 명확하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톡 쏘는 소다라는 랩과 그녀가 요즘 밀고 있다는 ‘대브’라는 춤을 추는 장면을 넣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상은 현재 삭제되었으나 벌써 이를 응용한 리믹스와 ‘움짤’이 버젓이 돌아다닌다. 어느새 그녀는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아주 유명한 여성 디제이 중 한 명이 됐다. 얼마 전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백만 명을 넘겼음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개인 미디어의 세계는 명확하다. 팔로워가 보이기 때문이다. 팔로워는 자신을 소비하는 이의 숫자다. 이를 이용하고 싶은 이도 는다. 영향력이 생기는 거다. 게임의 레벨을 올릴 때마 다 보상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 미디어의 세계는 또한 불명확하다. 게임의 레벨을 올리려면 정해진 룰에 따라 꾸준히 노력해야 하면 되지만 팔로워가 느는 데 룰이 없다. 흔히 하는 말은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올려야 한다는 거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자신의 몸에 간장을 뿌린다. 다른 누군가는 ‘좋아요’ 수에 따라 돈을 기부하는 이벤트를 한다. 팔로워가 많은 이와 친해져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롱보드 타는 동영상 하나를 올렸을 뿐인데 팔로워가 25만 명이 늘었고 화제의 인물이 됐다. 얼핏 비슷비슷해 보이는 개인 미디어에서 최근 이슈가 되었거나, 자극적이거나 또는 내게 직접 이득이 되는 콘텐츠 그리고 즉각적으로 가치의 척도인 팔로워의 수는 새로운 팔로우를 부른다. 그리고 누구나 개인 미디어가 있는 시대의 이런 현상은 “그렇다면 혹시 나도?”와 “왜 나는?”을 교차시키며 욕망을 간지럽힌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유명하다는 개념이 수치로 구체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숫자는 대상을 빠르고 단순하게 판단하게 한다. 광고 업계에서는 이미 “그 사람 인스타 몇 K야?”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여기서 또렷해지는 건 높은 숫자를 향한 욕망이고 흐릿해지는 건 숫자 이면의 내용이다. 구체화된 욕망은 하이퍼 링크를 타고 촘촘하게 거미줄 모양의 사다리를 만든다. 어떤 래퍼는 지금 가장 유명한 아이돌 가수를 피처링 보컬로써 멜론 차트에 오른다. 어떤 가수 지망생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못한다고 혹평을 들었지만 그게 캐릭터가 되어 인기를 얻고 데뷔를 한다. 그들의 의도 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의 콘텐츠는 유명함을 거르는 필터를 거쳐 소비된다.

미디어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좋아요’ 데이터에 포함된 페이스북의 앳지랭크 알고리즘이 정해주는 타임라인을 보고 멜론 차트 100을 소비한다. 누군가는 인스타그램 속 래퍼와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쇼미더머니에 출연하거나 생방송으로 ‘먹방’을 중계한다.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 전에 없던 콘텐츠가 전보다 광범위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이걸 퇴행이라 부르면 ‘아재’라고 놀림받을 테지만 한편으로 여기서 가치 있는 것이 탄생해 온전히 전달, 소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가. 생산자는 여기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지금 보이는 건 가치와 맥락은 사라지고 잘 만들어진 미소와 유행하는 해시태그만 앙상하게 떠다니는 풍경이다. 이는 곧 우리의 욕망이 겨우 거기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큐에 실린 칼럼인데

밑에 광고얘기 보고 생각나서 가져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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