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에 걸쳐있는 바다 지중해(Mare Mediterraneo). 이 지중해를 "내해(內海), 우리 바다(Mare Nostrum)" 라 불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십여 국가와 접하고 있는 이 바다는 한때 단 한 나라의 영해였죠. 이 나라가 사라진 후 15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지중해를 "우리 바다" 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몇몇 역사가들에게는 인류역사의 기적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 나라는, 그 거대한 영토내의 모든 인종과 민족,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끌어들였고 이렇게 하여 탄생된 거대한 문화적 용광로는 세계최고의 거대문명을 창출하기에 이릅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이미 눈치채셨겠죠? 소개하겠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경과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그 이름, 로마 제국(Imperium Romanum) 입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노래했다. 대지는 만인의 것이라고. 로마는 시인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로마제국은 이전에 존재했던 최초의 세계제국(페르시아)을 거의 모든 면에서 능가했다."
후대에 이렇게 거창한 찬사를 듣게되는 로마제국의 시작은, 첫 출범 때부터 거대했던 페르시아 제국과 비교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늑대와 전쟁의 신 설화가 곁들여져 유명해지는 떠돌이 유랑민 집단의 우두머리 로물루스,레무스 형제가 이탈리아 반도의 중앙에 이르러 흐르는 강이 내려다 보이는 일곱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 강은 테베레 강으로 명명되었고 이 일곱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로마 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됩니다. 후에 지중해 전체를 제패하게 되는 제국의 시작은 이렇게 미약하기 그지 없는 하나의 촌구석에서 시작되었죠.
1.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고대의 모든 나라가 으레 그렇듯이 로마도 처음에는 왕국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509년, 7대쩨 왕인 '타르퀴니우스' 대에 이르러 로마는 왕을 쫓아내고 왕국을 통째로 갈아엎어 공화국으로 다시 재출범합니다. 선거제도를 도입한 로마는 이때부터 서서히 밖으로 발전해가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발전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었죠.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한 건 공화국으로 출범하고도 250년이나 지난 한 참 뒤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기원전 270년경의 로마는 동시대 다른 강대국들과는 다른 특이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죠. 로마는 아테네에서 존재했던 최초의 '시민' 이라는 개념을 다듬고 개량하여 아테네를 훨씬 뛰어넘는 선진적인 '시민권' 제도를 확립하게 됩니다. 로마는 한 지역을 제패할 때마다 그 지역에 시민권을 팍팍 뿌렸는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이 때쯤에는 거의 모든 이탈리아의 부족들이 로마에 동화되어 있었습니다.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같은 정치참여권을 가지는 이 시민권을 가진다는 건 완전히 로마의 국민이 된다는 뜻이었는데 로마는 어제까지만 해도 칼을 들고 싸웠던 부족들에게도 시민권을 나눠주고 원로원 의원으로 들였으며 자신들을 통치하게 만드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죠.
이 시민권의 자격요건이라는게....같은 라틴민족이라면 일단 무조건 시민권이 부여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족이거나 적대국가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몇년간 로마에 거주하고 라틴어를 할줄 알게 되면 바로 시민권이 나왔습니다. 단 적대국가의 경우 로마가 승리를 거둔 후에 시민권을 주었죠. 어떻게 보면 '막장'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 파격적인 시민권 정책 덕택에 처음 로마에 온 야만족 출신 원로원 의원이 어눌한 라틴어로 로마시민에게 원로원이 어디냐고 길을 묻는 웃기는 광경도 가끔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21세기인 지금같은 경우에도 상당히 파격적인 정책인데 하물며 2천2백년전인 당시에는 어땠을까요.
이리하여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지도 어느덧 500년, 로마는 이제 폭발적으로 성장할 준비를 비로소 끝낸 셈입니다. 그 첫 스타트 신호는 로마의 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서부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에서 시작됩니다.
2. 지중해 패권의 향방
이 시칠리아 섬의 영유를 놓고 서부 지중해의 두 강대국인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칠리아 섬을 영유하기 위한 국지적인 소규모 다툼이었지만 갈수록 스케일이 커지더니 결국엔 국운을 건 총력전으로 발전하게 되죠. 오랜 전쟁으로 인해 양측의 증오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이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고 서부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를 로마에 완전히 내주게 됩니다. 이 전쟁은 후대에 "포에니 전쟁" 으로 명명됩니다.
그리고 이 결과로 인해 로마에 대한 증오심을 뼛속까지 새기게 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는 자신의 9살 난 아들을 신전으로 데려가, 커서 장군이 되어 로마를 멸망시킬 것을 신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이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고대 최고의 전략가로 손 꼽히는 한니발 바르카입니다. 이 한니발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가 2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결과적으로 이 전쟁은 집요함과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희대의 천재장군 스키피오를 배출한 로마의 승리로 결정지어지고 이 2차 포에니 전쟁을 끝으로 로마는 서부 지중해 전체의 패권을 거머쥐게 됩니다. 비로소 거대제국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3.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다
카르타고를 멸한 로마는 이제 지중해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최강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로마의 힘을 빌려 자국내의 문제를 처리하려 한 그리스인들은 걸핏하면 로마를 끌어들이는데 처음에 그리스인들을 위대한 문명인으로 존중해주던 로마는 오만한 그리스인들에게 로마의 고위공직자가 여러차례 모욕을 당하게 되자 결국 폭발하여 몇몇 도시 국가를 쳐서 속주로 삼고 결국에는 그리스 전체가 로마의 속주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로마에 또 한 명의 천재적인 전략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라는 이 위대한 장군의 힘으로 로마는 여러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고 지중해 동부 전체를 제패하여 마침내 로마는 지중해 전체를 둘러싸는 거대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중해 여러 섬들을 거점으로 할거하고 있던 모든 해적들을 폼페이우스가 소탕하여 앞으로 지중해는 수백년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Pompeius Magnus
4. 원로원에서 황제로
폼페이우스가 지중해를 평정하여 로마의 최고 유력인사가 된 이 시기에 로마는 또 한 명의 천재적인 전략가를 배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전략가는 단순히 군사적인 능력만 뛰어났던 폼페이우스를 뛰어넘어 정치력과 언변은 물론이고 작가로서의 저술 능력이나 여자를 꼬시는 바람둥이의 능력, 플레이보이로서의 화끈함 등 어느 방면에서도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희대의 '천재' 였습니다. 이 천재의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역대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카이사르는 이미 부패하고 무능력해진 원로원을 엎어버리고 중앙집권적인 제정으로 정치체제를 개조하려 했죠. 민중파에 속해 있던 카이사르는 힘없고 가난한 소외계층이나 일반 서민들, 혹은 젊은세대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이 카이사르에게 위협을 느낀 원로원 의원들은 폼페이우스를 구워삶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때문에 원래 절친한 친구였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갈라서게 되어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는데 이 지중해 전체를 무대삼아 벌어진 두 영웅의 화려한 격돌은 결국 카이사르의 승리로 끝이 났고 카이사르는 로마세계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개선합니다.
카이사르는 그 특유의 호탕한 성격으로 폼페이우스파의 원로원 의원들을 모두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재산상의 피해도 가하지 않고 원로원 의석도 그대로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 되어 결국 카이사르는 이 의원들에게 원로원 회의장에서 살해당하게 됩니다.
이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것은 그의 종손자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로 이 18세의 청년은 카이사르의 유언대로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그의 뒤를 잇게 됩니다. 이 옥타비아누스가 바로 나중에 아우구스투스(Augustus) 로 불리게 되는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입니다.
5. 팍스 로마나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Pax Romana) 가 지중해 세계 전체에 확립됩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 때부터 야만족의 침입은 완벽히 저지되었고 모든 인종과 민족이 대융합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시작했으며 찬란한 문화가 발전하여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놀라운 것은 이때도 로마제국의 전성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의 고도 성장기를 지나 네로, 칼리굴라 등의 폭군을 거치며 내홍과 내전도 몇번 겪었으며 베스파시아누스 같은 사람좋고 현명한 시골출신 황제의 치세도 모두 지나가고 로마제국은 드디어 서기 96년에 이르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서기 96년에 등극한 네르바 황제가 열어젖히고 뒤를 이은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들을 거친 서기 180년까지의 약 100년의 전성시기를 오현제 시기라 칭하는데, 이때 로마는 동시대 로마인들조차 "사이쿨룸 아우레움(Saeculum Aureum)" , 즉 황금시기라 칭할만큼 절정의 번영기에 들어서게 됩니다.
Nerva Trajanus
Hadrianus
Antoninus Pius Marcus Aurelius
6.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기번은 서기 2세기 오현제시대의 로마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조화로웠던 시대였다."
수도 로마
공중 목욕탕
벽화
전차경주장
(영화 글래디에이터)
카라칼라 목욕탕
개선문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판테온
판테온 내부
수도교
키루스 대제가 세운 세계 최초의 제국이 멸망하고 메소포타미아가 세계의 패권을 잃어버린지 500 여년이 흐른 지금, 바로 이 시점에서 세계의 패권은 유례없는 번영과 평화의 황금시기를 맞은 지중해 세계로 넘어갑니다. 다섯명의 현명한 황제가 연달아 통치하여 거의 100년간이나 이어지는 절정의 황금기, 고대 역사상 최대의 영토와, 최강의 국력, 최다의 인구를 거느린 거대문명의 출현이었죠.
이 거대한 제국은 온대 지방 중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북위 24도에서 56도 사이에 위치해 있었고, 520만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육지 면적의 거의 모든 지역이 잘 개간되고 비옥한 농경지로 이루어졌으며 이 거대한 영토는 절정의 시기에 자유민 6천만명, 노예까지 합하면 무려 8천만이 넘어가는 거대한 인구를 포용했습니다. 당시 세계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를 손에 넣은 로마제국은 전쟁과 내분조차 없는 100년의 황금기 동안 동시대 어느 나라도 견줄 수 없을만큼 발달한 문화와 기술, 법률, 복지, 자유를 자랑했고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지역의 모든 인종과 민족이 로마인이 되었고 시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시민권을 얻은 자들은 수많은 복지혜택을 누렸고 가난한 자들은 무상배급을 받았으며 부유한 자들은 온갖 사치를 누렸습니다.
온갖 신들과 문화와 언어가 공존했고 로마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여 문명을 이룩했으며 인종차별이 사라지고 민족갈등이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경제적 차별이 대신하게 됩니다.
흑인과 중동의 아시아인, 북방 삼림의 야만인들과 남방 사막의 유목민들이 시민권을 부여받고 토가를 입고 다녔으며 로마식 이름을 쓰고 공중목욕탕에서 라틴어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국 각지의 수많은 지역이 황제를 배출했습니다. 황제의 출신이나 혈통 따위는 물론 전혀 중요시되지 않았습니다.
세계최초의 거대제국 페르시아는 문화적 대통합에는 결국 실패했었지만 로마는 시민권이라는 강력한 결속 시스템을 고안해내었고 시민권이 없는 속주민에게도 안전보장,사회복지 체제 등의 혜택을 누리게 하여 피지배민들을 로마인으로 동화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렇게 로마제국은 진정한 대통합에 성공한 최초의 제국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7. 활력을 잃어버리다
아우렐리우스 청동 기마상
영원할 것 같던 제국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죽은 뒤 시작된 로마제국의 하락세는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지속되어 결국 로마제국을 나락으로 빠뜨립니다. 오랜 평화를 누리는 동안 로마제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로마인들의 정신력은 점차 하향평준화되었고 나태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으며 번뜩이던 천재성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군인정신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황제의 자리를 탐낸 군사령관의 사병이 되어 변경을 떠나 로마로 진군하고 야만인들의 침략을 방관했으며 농업이 쇠퇴하고 건축과 예술이 모두 퇴보하기 시작합니다.
기독교가 일어나 법률과 황제를 거역하고 군복무를 거부했으며 제국 전체에서 불관용 정신이 싹트기 시작하고 인종차별과 종교박해가 일어납니다. 문학과 예술은 물론이고 건축, 천문학, 의학, 수학, 철학 등 모든 분야에서 쇠퇴가 시작되었고 실용적인 기술과 현세의 행복보다 미신과 내세의 삶이 더욱 중시됩니다. 국경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고 야만족이 쳐들어와 분탕질을 쳐도 더 이상 출동하는 군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은 기독교에 잠식당했고 그리스 정교의 동로마와 가톨릭의 서로마로 영원히 갈라집니다.
서기 180년 절정의 번영기를 이끌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사후, 근 300년을 더 지탱한 로마제국은 서기 400년 중반에 접어들어 이름뿐인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의욕과 활기가 사라진 몸뚱이만 큰 서로마 제국은 수많은 야만족의 침입에 시달리다 결국 서기 476년, 야만족 오도아케르가 이탈리아를 점령하게 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8. 제국의 황혼
제국이 멸망하면서 그 자리에는 수많은 호전적인 야만인 부족들이 들어서 왕국을 세웁니다. 이중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이 최초로 크게 일어나 근대 유럽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게 되죠. 한편, 동로마는 멸망하지 않고 비잔틴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명맥을 이어가지만 이미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멘탈도 과거의 로마제국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고 이 동로마 제국은 먼 훗날, 중세의 끝자락에 접어들 무렵, 1453년에 이르러 투르크 제국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로마제국 이후 다시는 지중해를 하나로 통합한 거대제국이 등장하지 않았고 북아프리카는 거의 사막화 되었으며 유럽은 끝없는 미개의 늪으로 빠지고 지중해 모든 지역에서 인구가 급감합니다. 이 위대했던 제국의 멸망 이후 서방세계는 세계의 패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놀라울 정도로 퇴보하여 거의 1천여년 동안이나 세계사 변방에 찌그러져 있게 됩니다. 반면 아시아와 중동에선 거대문명이 찬란하게 꽃을 피우죠. 유럽이 암흑의 천년중세시기에 진입하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세계의 패권은 머나먼 동쪽 아시아로 옮겨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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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사실 이 로마제국은 일전에 썼던 페르시아 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자료도 많고 쓸 내용도 워낙에 많지만 여태까지 쓴 글들의 형평성과 스크롤의 압박을 고려하여 많이 간추렸습니다 ㅜㅜ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특히 로마제국 편에 기대가 크실텐데 실망시켜드리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네요. 그래도 이 정도까지 간추리는데만도 엄청 힘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ㅎㅎ ^^
출처 :I Love NBA 글쓴이 : 코비_메시_샤비_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