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행임의 『석재고(碩齋稿)』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연은 하란타(河蘭陀, 네덜란드)인이다. 숭정(崇禎) 원년에 호남(湖南)에 표류해 왔다. 조정에서는 훈국(訓局, 훈련도감)에 예속시켜 항왜(降倭)와 표류해 온 한인(漢人, 중국인)을 거느리게 했다. 박연의 이름은 호탄만(胡呑萬)이다. 병서에 재주가 있고, 화포를 매우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박연은 나라를 위해 그 재능을 살려 드디어 홍이포의 제(制)를 전하였다.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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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의 이름을 '호탄만'이라 불렀다는데 ,네덜란드어 단어 중에는 “hoofdman”(호프트먼), “hopman”(호프먼)이라는 단어가 있고, “leader”(지도자), “chief”(장, 우두머리, 두목, 장관) 등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즉, 호탄만(胡呑萬)이라는 호칭의 유래는 아마도 박연과 함께 표착했던 동료 2명이 박연을 호탄만이라고 불러, 이것을 박연의 본명으로 들었던 당시의 조선 사람들이 그 한자명을 호탄만(胡呑萬)이라고 표기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추측됩니다.
이 네덜란드인은 조선의 과거시험에도 응시하여 당당히 무과 급제 했다는 추측도 하고 있는데,
『인조실록』인조26년 8월 정사조에는 “정시(庭試)를 시행하여 문과에 이정기(李廷夔) 등 9인과 무과에 박연(朴淵) 등 94인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본조등과총목(本朝登科總目)」에도 정시(庭試)에 표를 시험하여 이정기(李廷夔) 등 9인을 뽑았는데,박연(朴淵)이 장원이 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습니다.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군사를 거느렸다는 기사를 볼때
아마도 이 네덜란드인은 완전히 조선에 귀화하여 관직까지 지낸걸로보입니다.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네덜란드인 조선귀화 영감 박연의 동상
박연은 두차례의 호란(병자,정묘호란)에 조선군으로 참전 했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이때 함께 조선으로 귀화한 동료 네덜란드인 2명이 전사했습니다.
이후, 박연은 효종시절 제주도로 표류하다 억류된 하멜 일행이 서울로 압송되자,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의 풍습과 법, 각종 문화를 가르칩니다. 아울러 이들이 가져온 서양식 총을 더 개량하여
훈련도감에서 신형 조총을 만들기도 했죠...
박연은 완전히 조선인화 되어 조선인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도 낳고 살았다 전하는데...
어쩌면 우리에게도 네덜란드 핏줄이 조금은 섞여있지 않을까요? 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