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후궁의 품계는
1.빈
2. 귀인
3. 소의. 숙의
4.소용. 숙용
5.숙원
6. 승은상궁 순서로
후궁은 왕이 죽고 자식집이나 개인집에서 살거나 예외로 대비.대왕대비 허락으로 궁에서 살기도 하고 혹은 비구니로 절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함
(태조 )
http://img.theqoo.net/lGJZm
성비 원씨
1381 ~ 1449 (68세 사망)
" 조선 최초의 후궁 "
" 조선 후궁들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후궁"
1398년 신덕왕후가 사망하자 태조 이성계가 들인 후궁으로 태조보다 46세나 어렸으며 "비" 라는 호칭으로 거의 준 왕대비급 대접을 받고 살았음. 태조가 죽고 태종 이방원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세종때까지 왕실 최고 어른으로 살았고
각종 왕실 행사에 참석하는등 최고어른 대접을 받다가 1449년 68세에 사망
(태종)
http://img.theqoo.net/xkJCU
효빈 김씨
1375 ~ 1454 (70대 후반 사망)
태종의 후궁으로 본래 신덕왕후 강씨 집안에서 부리던 여종으로, 강씨가 입궁하면서 그녀도 같이 입궁해 궁녀가 되었는데 그녀는 가히 미모가 빼어나 신덕왕후 조차도 태조앞에 내놓길 꺼릴 정도였고 이방원이 왕자 시절 경녕군을 낳음. 원경왕후가 생전에 몹시 미워했다고 함
http://img.theqoo.net/MmDTW
신빈 신씨
1380년대 초반 ~ 1435년 (50대 초중반 사망)
" 태종이 가장 사랑한 후궁 "
원래 원경왕후의 노비였고 태종의 후궁이 된 인물로 태종의 수많은 후궁 중 가장 많은 총애를 얻은 후궁으로, 태종이 아플 때 간호할 권한을 신빈 신씨이게 주었으며 항상 곁에 두고자 했음. 원경왕후 사후에는 내명부를 총괄하며 내명부 상급권한을 누렸고 많은 일을 하였고 태종이 죽자 비구니로 출가해서 여생을 보내다가 1435년 50대에 지병으로 사망
태종과 무려 10남매를 출산할정도였음
http://img.theqoo.net/hDooH
명빈 김씨
1390년대 중반 ~ 1479 ( 80대 중반에 사망)
" 태종의 마지막 후궁 "
태종보다 무려 30세 가까이 어린 후궁이였으면서 마지막 후궁인지라 태종 사후에도 젊은 나이였고 왕실에 남아서 살면서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까지 6명의 왕을 지켜보면서 살아있는 역사로 살다가
1479년 사망하는데 이미 80 을 넘길정도로 장수함
(세종)
http://img.theqoo.net/miGXC
신빈 김씨
1406 ~ 1464 (58세 사망)
" 세종과 가장 많이 아이를 낳은 후궁"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었고 뒤이어 세종의 후궁이 되었음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고
그녀는 평소에 불교를 신봉했었는데, 세종이 죽고나서는 아예 여승이 되어 살았음.
슬하에 아들만 여섯을 낳고 살았음
http://img.theqoo.net/lvOQF
혜빈 양씨
1410 ~ 1455 (45세에 교살형)
원래 내명부의 궁인이였는데 병약한 세자 문종을 보살피다가 세종이 감동해서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음
슬하에 아들만 셋을 두었고 문종이 죽기 전 부탁으로 출가해있던 혜빈이 다시 궁에 와서 의붓손자인 단종을 보살피면서 지키다가 의붓아들 세조의 미움을 받고 반정 이후에는 폐서인되어 유배되어 있다가 1455년 세아들과 함께 교살형으로 처형됨
훗날 세조비 정희대비가 다시 복원해줌
(문종)
http://img.theqoo.net/jHxMb
숙빈 홍씨
1418 ~ 1485년 이후 사망 ( 67세 이상)
문종의 후궁으로 헌덕왕후 사후 내명부를 통솔하였으며
세자빈이었던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가 연달아 폐출되면서 헌덕왕후 권씨와 홍씨가 새 세자빈의 물망에 올랐을 때, 문종은 홍씨를 조금 더 낫게 여겻으나 당시 권씨가 홍씨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고 이미 딸을 낳았기에 세자빈에 적합하다는 세종의 판단으로 세자빈은 권씨가 되었음
슬하에 자녀는 없고 문종 사후에도 단종을 보살피며 살았고
세종아들 안평대군이 처형되자 집을 상속받았으며 단종 폐위 이후에도 세조가 보살펴서 편히 살다가 마지막 기록으로 1485년 성종에게 노비를 줄것을 상소하는게 마지막 기록임
(세조)
http://img.theqoo.net/PkKfB
근빈 박씨
1425 ~ 1506 ( 81세 사망)
세조의 후궁으로 그가 대군시절 들인 첩출신으로 슬하에 아들만 셋을 두었음.
세조 사후 비구니로 출가해있다가 증손자뻘인 연산군이 그녀를 초대해서 연산군의 폭정이 두려워서 젊은시절 세조 앞에서 춤춘것처럼 똑같이 춰야했다고 함
1506년 반정 이후 81세에 사망
http://img.theqoo.net/keFgR
소용 박씨 (덕중)
1430년대 초반 ~ 1465년 (30대에 처형)
세조의 후궁으로 그가 대군시절들인 첩임. 세조가 즉위후 딸을 낳아서 후궁이 되나 일찍 죽고 미움을 받아서 궁인으로 낮추어짐
세조의 조카 귀성군과 간통을 한게 발각되어서 1465년 처형됨
(덕종. 의경세자)
http://img.theqoo.net/ZRkIe
귀인 권씨
1440 ~ 1494 (54세 사망)
의경세자의 후궁으로 1456년 간택되었으나 3년만에 세자가 죽어서 그뒤 사저에서 지냈고
성종이 즉위한 후인 1477년(성종 8년) 음력 3월 20일, 권씨가 살던 집에 한 장의 익명서가 투입되었는데. 익명서에는 성종의 후궁인 숙용 정씨와 숙의 엄씨가 왕비 윤씨(훗날의 폐비 윤씨)와 그 소생인 원자(훗날의 연산군)를 해치려 한다는 내용이 였고 이게 폐비 윤씨의 폐위에 원인이 되어
1504년 이미 죽은 권씨 묘를 팠는데 안에 시신이 없고 이미 화장한게 밝혀져 분노한 연산군이 권씨의 조카를 처형함
( 성종)
http://img.theqoo.net/HFTqH
귀인 정씨
1460 ~ 1504 (40대 사망. 처형)
성종의 후궁으로 이름은 정금이. 천민출신. 연산군은 모후인 폐비 윤씨의 죽음이 모두 귀인 정씨와 성종의 또다른 후궁인 소용 엄씨 등의 참소때문이라고 판단하여, 그녀들을 매우 미워했고
1504년 연산군에 의해 처형되는데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그녀의 아들 안양군과 봉안군이 생모를 직접 폭행하게 함
그녀 사후 80먹은 친정아버지와 오라비들도 처형되고 두아들도 처형됨
http://img.theqoo.net/wRwdF
소용 엄씨
1455 ~ 1462 사이에 출생.
1504년 처형
성종의 후궁으로 이름은 엄소이. 정귀인과 달리 간택후궁 출신으로 1482년 공신옹주를 낳고 소용에 봉해짐. 1504년 연산군에 의해 처형됨
공신옹주는 중중반정 이후 복권되어 1530년 68세에 사망
http://img.theqoo.net/zCieY
숙의 홍씨
1457 ~ 1510 (53세 사망)
승은후궁 출신으로 성종과 7남 3녀를 낳았으며 아들중 한명이 연산군과 갈등으로 소용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복권. 1510년 53세로 사망
(연산)
http://img.theqoo.net/ZFGLZ
숙용 장씨 (장녹수)
1472 ~ 1506. 34세 처형
진짜 유명해서 설명은 생략
(중종)
http://img.theqoo.net/jpads
경빈 박씨
1492 ~ 1533, ( 41세 처형)
연산군 재위 시절에 흥청으로 선발되어 궁에서 지내다가 진성대군(훗날의 중종)의 눈에 들었고,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의 수양딸이 되어 왕으로 즉위한 중종의 정식 후궁이 되었음
문정왕후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씌고 폐위되었고 1533년 사약으로 인생 엔딩
http://img.theqoo.net/PTsiK
창빈 안씨
1499 ~ 1549 (50세 사망)
"덕흥대원군의 어머니이자 선조의 친할머니 "
1507년에 내명부 궁인으로 들어갔음.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행동이 정숙하고 참신하여 대비 윤씨의 눈에 들어 대비의 후원으로 스무 살에 중종의 승은을 입어 숙용까지 그 지위가 올랐음.
품행이 단정하여문정왕후와의 사이도 돈독했고, 중종 사후에도 문정왕후의 만류로 인하여 관례대로 승려가 되지 않고 궐 안에 머물렀음
안씨가 죽은 후에도 문정왕후는 그녀의 자식들을 돌보아 주었고 후사 없이 명종이 세상을 떠나자 명종비 인순왕후는 안씨의 손자인 하성군을 즉위시켰다.
선조 이후의 모든 조선 국왕은 그녀의 후손임
진정한 승리자
http://img.theqoo.net/FUPeQ
희빈 홍씨
1494 ~ 1581 (87세 사망)
장희빈과 더불어 가장 미인이던 후궁중 한명
중종반정 공신 홍경주의 딸로 간택후궁 출신
순조롭게 중종의 총애를 얻어 아버지의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 되는 한편,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당시 조정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인 사림파)를 축출하는데 앞장섰음
중종이 죽고 사저에서 지냈음
중종과의 슬하에 5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3명은 조졸하였고, 둘째인 금원군과 다섯째인 봉성군만이 장성하였으나, 봉성군은 을사사화에 휘말려 사사되었고 금원군만 살게 됨
1581년 87세 나이에 별세
미인은 박명한다는 말이 옳지 않다는걸 증명하는 인물중 한명
(인종)
http://img.theqoo.net/etSzr
귀인 정씨 ( 성종 후궁과는 동명)
1520 ~ 1566 (46세 사망)
14세 되던 1533년에 당시 세자였던 인종의 후궁으로 뽑혀 들어갔음.. 25세인 1544년 세자궁에 불이 나자 정씨가 홀로 동궁으로 달려가 세자가 아끼는 서책들을 구해 내었고 성격이 담대하였다고 함
인종 사후 사저에서 살다가 1566년 병으로 사망
( 선조)
http://img.theqoo.net/uISqO
공빈 김씨
1553 ~ 1577. ( 산후병으로 24세에 사망)
광해군과 임해군의 어머니로 생전에 선조가 가장 사랑함. 24세 젊은 나이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남
http://img.theqoo.net/ymxGR
인빈 김씨
1555 ~ 1613 (58세 사망)
" 인조의 친할머니 "
외사촌언니이자 명종의 후궁이었던 숙의 이씨가 김씨를 데려다가 궁중에서 양육했는데,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의 눈에 들어 그녀의 심부름을 하게 되고
그러다 훗날 인순왕후가 선조에게 후궁으로 추천하여 1573년(선조 6년) 종4품 숙원에 책봉됨
광해군이 세자이던 시절에는 선조의 미움을 받던 광해군을 변호하기도 하였고, 임해군의 옥사가 있을 때에는 그녀의 소생들이 정사 공신에 책록되기도 하였음. 그로 인해 광해군은 ‘내가 서모의 은혜를 받아서 오늘이 있게 된 것이니, 그 의리를 감히 잊지 못한다.’라고 까지 하였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음
선조와 사이도 좋아서 슬하에 4남 5녀를 두었고 그녀의 손자가 바로 인조임
http://img.theqoo.net/yaeuV
김개시 1623년 처형
광해군의 후궁이 아닌 선조의 승은상궁 출신임.
( 인조)
http://img.theqoo.net/Mamol
귀인 조씨
" 희대의 국썅 "
1614 ~ 1652 .(38세에 처형 )
인조의 후궁으로 1630년 후궁으로 책봉되었고 원래는 숙원이였다가 아들과 딸을 낳으며 소용에서 귀인으로 책봉되었고 소현세자 내외를 이간질 시켜서 죽음으로 내몰고 장렬왕후가 푸대접 받게 만든 사람이 바로 이여자임.
효종 즉위후 대비 장렬왕후를 저주한게 발각되어 1652년 처형되었다고 한다
( 숙종)
http://img.theqoo.net/qJjsG
희빈 장씨
" 조선 최초 후궁 - 왕비 - 후궁 코스를 거친 여인
1659 ~ 1701 (42세에 스스로 자결)
본명은 장옥정으로 유명한 인물중 한명. 아버지는 중인출신으로 못사는 집은 아니였으며 숙종의 의붓증조할머니 장렬대왕대비의 궁녀로 입궁해서 후궁이 되나 숙종 엄마 명성대비에 의해 쫒겨나고 왕대비 사후에 다시 입궁함
그뒤 아들을 낳고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왕비가 되나 몆년 안가서 후궁으로 강등됨
1701년 왕비를 저주했다는 사실상 누명을 씌고 스스로 자진함. 야사에 나오는 사약으로 죽었다는 애기는 사실이 아니고 실록을 봐도 스스로 자진했다고 나오며 실제 악녀는 인현왕후지 그녀는 오히려 매우 온화한 성품이였다고 함
http://img.theqoo.net/kHThd
숙빈 최씨
1670 ~ 1718 .(48세에 병으로 사망)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7세 때 무수리로 궁에 입궐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1693년 아들을 낳으나 요절하고 다음해에 영조를 출산
인현왕후의 사후 숙종에게 희빈 장씨의 저주굿을 발고 했으며 이로 인해 숙종의 미움을 사서 그녀가 임종때 숙종이 장례도 대충 치를정도로 미워하였음
성격이 온화하고 말수가 없었고 미인형이였다고 함
( 영조)
http://img.theqoo.net/EzqHY
영빈 이씨
1696 ~ 1764. (68세에 사망)
사도세자의 어머니로 궁녀출신 30세 늦은 나이에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으며 매우 미인이였다고 함
야사에 따르면 환갑이 넘었는데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었을정도...
슬하에 화평옹주, 화협옹주, 화완옹주 및 조졸한 옹주 둘을 포함한 1남 6녀, 모두 일곱 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화완옹주를 제외한 6명의 자식들이 살아 생전에 요절했으며 그 중 한 명인 사도세자는 비참한 죽음을 겪었음.
1764년 아들의 비행을 고발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아들의 죽음 3년이 되던 이 해에 68세로 세상을 떠남
http://img.theqoo.net/xIKdW
숙의 문씨
1731 ~ 1776 ( 45세에 처형됨)
영조의 후궁으로 승은을 입고 궁녀에서 후궁이 되는데 몹시 교만한 성격이였으며
그 성격 때문에 영조의 계모 인원왕후에게 회초리를 맞을정도로 교만했다고 함
숙의 문씨는 김상로 등과 결탁하여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였고 . 당시 여러 사람들이 문씨의 이러한 모습을 알고 있었으나, 영조만이 이를 알지 못하고 문씨 등에 대해 처벌을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
1776년 결국 폐서인되고 사약으로 생을 마감함
(사도세자. 장조)
http://img.theqoo.net/DzXzB
경빈 박씨 (박빙애)
1740 ~ 1761.(21세에 살해됨)
사도세자의 후궁으로 1757년 후궁이 되었으며
사도세자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사도세자의 옷을 시중드는 도중에 사도세자의 의대병이 발병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음
더 비극인건 딸은 요절하고 그녀의 아들은 천주교 사건에 휘말려 일가가 몰살당함
정조가 경빈으로 추봉해줌
(정조)
http://img.theqoo.net/qAQAX
수빈 박씨
1770 ~ 1822 (52세에 사망)
" 아들이 왕이 되는걸 살아생전 본 후궁 "
간택후궁 출신으로 18세의 나이에 후궁 책봉되어 빈호를 수빈(綏嬪)이라고 정하고 3년만에 아들 순조를 낳음. 그뒤 아들 순조가 왕이 되고 대비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1722년 52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남
아랫사람을 인자하면서도 위엄 있게 이끌었고. 복식과 기용(器用, 그릇)은 진귀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평상시 말이 적었다고 함
http://img.theqoo.net/dtIDW
의빈 성씨
1753 ~ 1786 (34세에 사망)
정조의 후궁으로 이름은 덕임. 혜경궁 홍씨의 처소 궁녀로 입궁했으며, 혜경궁이 거두어 곁에 두고 친히 길렀다고 함. 정조가 무지 사랑했으나 그녀의 두 자녀는 일찍 요절하고 1786년 그녀도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남
http://img.theqoo.net/QlWSM
화빈 윤씨
1765 ~ 1824 ( 59세에 사망)
정조의 간택후궁으로 집안이 명문가 출신으로 상상임신했다는 기록이 있음
효의왕후와 수빈박씨와 매우 친했으며 1824년 59세에 사망
( 고종)
http://img.theqoo.net/USusG
순헌황귀비 엄씨
1854 ~ 1911 (57세 사망. 장티푸스가 원인)
명성황후의 나인출신으로 일설에는 황후와 존나 똑같이 생긴 후궁이였다고 함
그러다가 고종이 그녀를 승은을 입혀서 분노한 황후가 내쫒는데 황후가 시해되고 다시 입궁하고 그 뒤 나이 50이 다되서 영친왕을 낳음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여성교육학교등도 설립함
차라리 이분이 명성황후 대신 황후였다면 더 괜찮았을듯
1911년 장티푸스로 57세에 사망
http://img.theqoo.net/yLYGN
영보당 귀인 이씨
1843 ~ 1928 (85세에 사망)
고종보다 8세나 많은 그녀는 궁녀출신으로 완화군의 어머니임.
아들이 요절하여 푸대접 받다가
1880년 1월 29일 숙원(淑媛)으로 책봉되고, 1906년 5월 27일 귀인(貴人)으로 책봉. 1928넌
명성왕후 질투에 평생 뒷방신세로 서럽게 살다가 85세로 사망
http://img.theqoo.net/GRWmF
귀인 양씨
1882 ~ 1929 (47세에 유방암으로 사망)
1905년 3월 10일 덕수궁에 궁인(宮人)으로 입궁하였고, 이후 승은을 입어 1912년 4월 9일에 복녕(福寧)이라는 당호(堂號)를 받고 귀인에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 5월 25일 덕혜옹주(德惠翁主)를 낳았음
1929년 48세에 암으로 사망
http://img.theqoo.net/KaRCh
삼축당 김씨 (1890 ~ 1970. 80세 사망)
광화당 이씨 (1885 ~ 1970.85세 사망)
삼축당 김씨는 이름이 김옥기로 8세에 나인으로 입궁하였으며 21세가 되던 해에 고종의 승은을 입고 8번째 후궁으로 책봉되었음.가장 나이가 어린 후궁이었기 때문에 고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사를 낳지 못해 특별상궁의 지위에 머무르다가 고종 사망 후 사간동 집에서 고종의 또다른 후궁인 광화당 이씨와 함께 살았음
1970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광화당 이씨는 본명은 이완덕(李完德)으로 유복한 중인계급 출생이며 13세에 고모의 소개로 경복궁 지밀에 세수간 나인으로 입궁.덕수궁의 궁인이었던 1914년 고종의 승은을 입고 왕자를 낳아 광화당(光華堂)이라는 당호를 받았음
하지만 아들은 요절
귀인 이씨는 고종이 죽고 난 후 같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삼축당 김씨와 함께 사간동 집에서 살았고 1970년 노환으로 85세에 사망
1.빈
2. 귀인
3. 소의. 숙의
4.소용. 숙용
5.숙원
6. 승은상궁 순서로
후궁은 왕이 죽고 자식집이나 개인집에서 살거나 예외로 대비.대왕대비 허락으로 궁에서 살기도 하고 혹은 비구니로 절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함
(태조 )
http://img.theqoo.net/lGJZm
성비 원씨
1381 ~ 1449 (68세 사망)
" 조선 최초의 후궁 "
" 조선 후궁들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후궁"
1398년 신덕왕후가 사망하자 태조 이성계가 들인 후궁으로 태조보다 46세나 어렸으며 "비" 라는 호칭으로 거의 준 왕대비급 대접을 받고 살았음. 태조가 죽고 태종 이방원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세종때까지 왕실 최고 어른으로 살았고
각종 왕실 행사에 참석하는등 최고어른 대접을 받다가 1449년 68세에 사망
(태종)
http://img.theqoo.net/xkJCU
효빈 김씨
1375 ~ 1454 (70대 후반 사망)
태종의 후궁으로 본래 신덕왕후 강씨 집안에서 부리던 여종으로, 강씨가 입궁하면서 그녀도 같이 입궁해 궁녀가 되었는데 그녀는 가히 미모가 빼어나 신덕왕후 조차도 태조앞에 내놓길 꺼릴 정도였고 이방원이 왕자 시절 경녕군을 낳음. 원경왕후가 생전에 몹시 미워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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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 신씨
1380년대 초반 ~ 1435년 (50대 초중반 사망)
" 태종이 가장 사랑한 후궁 "
원래 원경왕후의 노비였고 태종의 후궁이 된 인물로 태종의 수많은 후궁 중 가장 많은 총애를 얻은 후궁으로, 태종이 아플 때 간호할 권한을 신빈 신씨이게 주었으며 항상 곁에 두고자 했음. 원경왕후 사후에는 내명부를 총괄하며 내명부 상급권한을 누렸고 많은 일을 하였고 태종이 죽자 비구니로 출가해서 여생을 보내다가 1435년 50대에 지병으로 사망
태종과 무려 10남매를 출산할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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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빈 김씨
1390년대 중반 ~ 1479 ( 80대 중반에 사망)
" 태종의 마지막 후궁 "
태종보다 무려 30세 가까이 어린 후궁이였으면서 마지막 후궁인지라 태종 사후에도 젊은 나이였고 왕실에 남아서 살면서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까지 6명의 왕을 지켜보면서 살아있는 역사로 살다가
1479년 사망하는데 이미 80 을 넘길정도로 장수함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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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 김씨
1406 ~ 1464 (58세 사망)
" 세종과 가장 많이 아이를 낳은 후궁"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었고 뒤이어 세종의 후궁이 되었음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고
그녀는 평소에 불교를 신봉했었는데, 세종이 죽고나서는 아예 여승이 되어 살았음.
슬하에 아들만 여섯을 낳고 살았음
http://img.theqoo.net/lvOQF
혜빈 양씨
1410 ~ 1455 (45세에 교살형)
원래 내명부의 궁인이였는데 병약한 세자 문종을 보살피다가 세종이 감동해서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음
슬하에 아들만 셋을 두었고 문종이 죽기 전 부탁으로 출가해있던 혜빈이 다시 궁에 와서 의붓손자인 단종을 보살피면서 지키다가 의붓아들 세조의 미움을 받고 반정 이후에는 폐서인되어 유배되어 있다가 1455년 세아들과 함께 교살형으로 처형됨
훗날 세조비 정희대비가 다시 복원해줌
(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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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홍씨
1418 ~ 1485년 이후 사망 ( 67세 이상)
문종의 후궁으로 헌덕왕후 사후 내명부를 통솔하였으며
세자빈이었던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가 연달아 폐출되면서 헌덕왕후 권씨와 홍씨가 새 세자빈의 물망에 올랐을 때, 문종은 홍씨를 조금 더 낫게 여겻으나 당시 권씨가 홍씨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고 이미 딸을 낳았기에 세자빈에 적합하다는 세종의 판단으로 세자빈은 권씨가 되었음
슬하에 자녀는 없고 문종 사후에도 단종을 보살피며 살았고
세종아들 안평대군이 처형되자 집을 상속받았으며 단종 폐위 이후에도 세조가 보살펴서 편히 살다가 마지막 기록으로 1485년 성종에게 노비를 줄것을 상소하는게 마지막 기록임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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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빈 박씨
1425 ~ 1506 ( 81세 사망)
세조의 후궁으로 그가 대군시절 들인 첩출신으로 슬하에 아들만 셋을 두었음.
세조 사후 비구니로 출가해있다가 증손자뻘인 연산군이 그녀를 초대해서 연산군의 폭정이 두려워서 젊은시절 세조 앞에서 춤춘것처럼 똑같이 춰야했다고 함
1506년 반정 이후 81세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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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 박씨 (덕중)
1430년대 초반 ~ 1465년 (30대에 처형)
세조의 후궁으로 그가 대군시절들인 첩임. 세조가 즉위후 딸을 낳아서 후궁이 되나 일찍 죽고 미움을 받아서 궁인으로 낮추어짐
세조의 조카 귀성군과 간통을 한게 발각되어서 1465년 처형됨
(덕종. 의경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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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권씨
1440 ~ 1494 (54세 사망)
의경세자의 후궁으로 1456년 간택되었으나 3년만에 세자가 죽어서 그뒤 사저에서 지냈고
성종이 즉위한 후인 1477년(성종 8년) 음력 3월 20일, 권씨가 살던 집에 한 장의 익명서가 투입되었는데. 익명서에는 성종의 후궁인 숙용 정씨와 숙의 엄씨가 왕비 윤씨(훗날의 폐비 윤씨)와 그 소생인 원자(훗날의 연산군)를 해치려 한다는 내용이 였고 이게 폐비 윤씨의 폐위에 원인이 되어
1504년 이미 죽은 권씨 묘를 팠는데 안에 시신이 없고 이미 화장한게 밝혀져 분노한 연산군이 권씨의 조카를 처형함
(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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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정씨
1460 ~ 1504 (40대 사망. 처형)
성종의 후궁으로 이름은 정금이. 천민출신. 연산군은 모후인 폐비 윤씨의 죽음이 모두 귀인 정씨와 성종의 또다른 후궁인 소용 엄씨 등의 참소때문이라고 판단하여, 그녀들을 매우 미워했고
1504년 연산군에 의해 처형되는데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그녀의 아들 안양군과 봉안군이 생모를 직접 폭행하게 함
그녀 사후 80먹은 친정아버지와 오라비들도 처형되고 두아들도 처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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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 엄씨
1455 ~ 1462 사이에 출생.
1504년 처형
성종의 후궁으로 이름은 엄소이. 정귀인과 달리 간택후궁 출신으로 1482년 공신옹주를 낳고 소용에 봉해짐. 1504년 연산군에 의해 처형됨
공신옹주는 중중반정 이후 복권되어 1530년 68세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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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홍씨
1457 ~ 1510 (53세 사망)
승은후궁 출신으로 성종과 7남 3녀를 낳았으며 아들중 한명이 연산군과 갈등으로 소용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복권. 1510년 53세로 사망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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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용 장씨 (장녹수)
1472 ~ 1506. 34세 처형
진짜 유명해서 설명은 생략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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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박씨
1492 ~ 1533, ( 41세 처형)
연산군 재위 시절에 흥청으로 선발되어 궁에서 지내다가 진성대군(훗날의 중종)의 눈에 들었고,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의 수양딸이 되어 왕으로 즉위한 중종의 정식 후궁이 되었음
문정왕후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씌고 폐위되었고 1533년 사약으로 인생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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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빈 안씨
1499 ~ 1549 (50세 사망)
"덕흥대원군의 어머니이자 선조의 친할머니 "
1507년에 내명부 궁인으로 들어갔음.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행동이 정숙하고 참신하여 대비 윤씨의 눈에 들어 대비의 후원으로 스무 살에 중종의 승은을 입어 숙용까지 그 지위가 올랐음.
품행이 단정하여문정왕후와의 사이도 돈독했고, 중종 사후에도 문정왕후의 만류로 인하여 관례대로 승려가 되지 않고 궐 안에 머물렀음
안씨가 죽은 후에도 문정왕후는 그녀의 자식들을 돌보아 주었고 후사 없이 명종이 세상을 떠나자 명종비 인순왕후는 안씨의 손자인 하성군을 즉위시켰다.
선조 이후의 모든 조선 국왕은 그녀의 후손임
진정한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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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홍씨
1494 ~ 1581 (87세 사망)
장희빈과 더불어 가장 미인이던 후궁중 한명
중종반정 공신 홍경주의 딸로 간택후궁 출신
순조롭게 중종의 총애를 얻어 아버지의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 되는 한편,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당시 조정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인 사림파)를 축출하는데 앞장섰음
중종이 죽고 사저에서 지냈음
중종과의 슬하에 5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3명은 조졸하였고, 둘째인 금원군과 다섯째인 봉성군만이 장성하였으나, 봉성군은 을사사화에 휘말려 사사되었고 금원군만 살게 됨
1581년 87세 나이에 별세
미인은 박명한다는 말이 옳지 않다는걸 증명하는 인물중 한명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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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정씨 ( 성종 후궁과는 동명)
1520 ~ 1566 (46세 사망)
14세 되던 1533년에 당시 세자였던 인종의 후궁으로 뽑혀 들어갔음.. 25세인 1544년 세자궁에 불이 나자 정씨가 홀로 동궁으로 달려가 세자가 아끼는 서책들을 구해 내었고 성격이 담대하였다고 함
인종 사후 사저에서 살다가 1566년 병으로 사망
(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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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빈 김씨
1553 ~ 1577. ( 산후병으로 24세에 사망)
광해군과 임해군의 어머니로 생전에 선조가 가장 사랑함. 24세 젊은 나이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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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빈 김씨
1555 ~ 1613 (58세 사망)
" 인조의 친할머니 "
외사촌언니이자 명종의 후궁이었던 숙의 이씨가 김씨를 데려다가 궁중에서 양육했는데,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의 눈에 들어 그녀의 심부름을 하게 되고
그러다 훗날 인순왕후가 선조에게 후궁으로 추천하여 1573년(선조 6년) 종4품 숙원에 책봉됨
광해군이 세자이던 시절에는 선조의 미움을 받던 광해군을 변호하기도 하였고, 임해군의 옥사가 있을 때에는 그녀의 소생들이 정사 공신에 책록되기도 하였음. 그로 인해 광해군은 ‘내가 서모의 은혜를 받아서 오늘이 있게 된 것이니, 그 의리를 감히 잊지 못한다.’라고 까지 하였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음
선조와 사이도 좋아서 슬하에 4남 5녀를 두었고 그녀의 손자가 바로 인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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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시 1623년 처형
광해군의 후궁이 아닌 선조의 승은상궁 출신임.
(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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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조씨
" 희대의 국썅 "
1614 ~ 1652 .(38세에 처형 )
인조의 후궁으로 1630년 후궁으로 책봉되었고 원래는 숙원이였다가 아들과 딸을 낳으며 소용에서 귀인으로 책봉되었고 소현세자 내외를 이간질 시켜서 죽음으로 내몰고 장렬왕후가 푸대접 받게 만든 사람이 바로 이여자임.
효종 즉위후 대비 장렬왕후를 저주한게 발각되어 1652년 처형되었다고 한다
(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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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장씨
" 조선 최초 후궁 - 왕비 - 후궁 코스를 거친 여인
1659 ~ 1701 (42세에 스스로 자결)
본명은 장옥정으로 유명한 인물중 한명. 아버지는 중인출신으로 못사는 집은 아니였으며 숙종의 의붓증조할머니 장렬대왕대비의 궁녀로 입궁해서 후궁이 되나 숙종 엄마 명성대비에 의해 쫒겨나고 왕대비 사후에 다시 입궁함
그뒤 아들을 낳고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왕비가 되나 몆년 안가서 후궁으로 강등됨
1701년 왕비를 저주했다는 사실상 누명을 씌고 스스로 자진함. 야사에 나오는 사약으로 죽었다는 애기는 사실이 아니고 실록을 봐도 스스로 자진했다고 나오며 실제 악녀는 인현왕후지 그녀는 오히려 매우 온화한 성품이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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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최씨
1670 ~ 1718 .(48세에 병으로 사망)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7세 때 무수리로 궁에 입궐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1693년 아들을 낳으나 요절하고 다음해에 영조를 출산
인현왕후의 사후 숙종에게 희빈 장씨의 저주굿을 발고 했으며 이로 인해 숙종의 미움을 사서 그녀가 임종때 숙종이 장례도 대충 치를정도로 미워하였음
성격이 온화하고 말수가 없었고 미인형이였다고 함
(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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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 이씨
1696 ~ 1764. (68세에 사망)
사도세자의 어머니로 궁녀출신 30세 늦은 나이에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으며 매우 미인이였다고 함
야사에 따르면 환갑이 넘었는데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었을정도...
슬하에 화평옹주, 화협옹주, 화완옹주 및 조졸한 옹주 둘을 포함한 1남 6녀, 모두 일곱 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화완옹주를 제외한 6명의 자식들이 살아 생전에 요절했으며 그 중 한 명인 사도세자는 비참한 죽음을 겪었음.
1764년 아들의 비행을 고발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아들의 죽음 3년이 되던 이 해에 68세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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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문씨
1731 ~ 1776 ( 45세에 처형됨)
영조의 후궁으로 승은을 입고 궁녀에서 후궁이 되는데 몹시 교만한 성격이였으며
그 성격 때문에 영조의 계모 인원왕후에게 회초리를 맞을정도로 교만했다고 함
숙의 문씨는 김상로 등과 결탁하여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였고 . 당시 여러 사람들이 문씨의 이러한 모습을 알고 있었으나, 영조만이 이를 알지 못하고 문씨 등에 대해 처벌을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
1776년 결국 폐서인되고 사약으로 생을 마감함
(사도세자. 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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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박씨 (박빙애)
1740 ~ 1761.(21세에 살해됨)
사도세자의 후궁으로 1757년 후궁이 되었으며
사도세자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사도세자의 옷을 시중드는 도중에 사도세자의 의대병이 발병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음
더 비극인건 딸은 요절하고 그녀의 아들은 천주교 사건에 휘말려 일가가 몰살당함
정조가 경빈으로 추봉해줌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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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 박씨
1770 ~ 1822 (52세에 사망)
" 아들이 왕이 되는걸 살아생전 본 후궁 "
간택후궁 출신으로 18세의 나이에 후궁 책봉되어 빈호를 수빈(綏嬪)이라고 정하고 3년만에 아들 순조를 낳음. 그뒤 아들 순조가 왕이 되고 대비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1722년 52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남
아랫사람을 인자하면서도 위엄 있게 이끌었고. 복식과 기용(器用, 그릇)은 진귀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평상시 말이 적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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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 성씨
1753 ~ 1786 (34세에 사망)
정조의 후궁으로 이름은 덕임. 혜경궁 홍씨의 처소 궁녀로 입궁했으며, 혜경궁이 거두어 곁에 두고 친히 길렀다고 함. 정조가 무지 사랑했으나 그녀의 두 자녀는 일찍 요절하고 1786년 그녀도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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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빈 윤씨
1765 ~ 1824 ( 59세에 사망)
정조의 간택후궁으로 집안이 명문가 출신으로 상상임신했다는 기록이 있음
효의왕후와 수빈박씨와 매우 친했으며 1824년 59세에 사망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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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헌황귀비 엄씨
1854 ~ 1911 (57세 사망. 장티푸스가 원인)
명성황후의 나인출신으로 일설에는 황후와 존나 똑같이 생긴 후궁이였다고 함
그러다가 고종이 그녀를 승은을 입혀서 분노한 황후가 내쫒는데 황후가 시해되고 다시 입궁하고 그 뒤 나이 50이 다되서 영친왕을 낳음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여성교육학교등도 설립함
차라리 이분이 명성황후 대신 황후였다면 더 괜찮았을듯
1911년 장티푸스로 57세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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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당 귀인 이씨
1843 ~ 1928 (85세에 사망)
고종보다 8세나 많은 그녀는 궁녀출신으로 완화군의 어머니임.
아들이 요절하여 푸대접 받다가
1880년 1월 29일 숙원(淑媛)으로 책봉되고, 1906년 5월 27일 귀인(貴人)으로 책봉. 1928넌
명성왕후 질투에 평생 뒷방신세로 서럽게 살다가 85세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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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양씨
1882 ~ 1929 (47세에 유방암으로 사망)
1905년 3월 10일 덕수궁에 궁인(宮人)으로 입궁하였고, 이후 승은을 입어 1912년 4월 9일에 복녕(福寧)이라는 당호(堂號)를 받고 귀인에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 5월 25일 덕혜옹주(德惠翁主)를 낳았음
1929년 48세에 암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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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축당 김씨 (1890 ~ 1970. 80세 사망)
광화당 이씨 (1885 ~ 1970.85세 사망)
삼축당 김씨는 이름이 김옥기로 8세에 나인으로 입궁하였으며 21세가 되던 해에 고종의 승은을 입고 8번째 후궁으로 책봉되었음.가장 나이가 어린 후궁이었기 때문에 고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사를 낳지 못해 특별상궁의 지위에 머무르다가 고종 사망 후 사간동 집에서 고종의 또다른 후궁인 광화당 이씨와 함께 살았음
1970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광화당 이씨는 본명은 이완덕(李完德)으로 유복한 중인계급 출생이며 13세에 고모의 소개로 경복궁 지밀에 세수간 나인으로 입궁.덕수궁의 궁인이었던 1914년 고종의 승은을 입고 왕자를 낳아 광화당(光華堂)이라는 당호를 받았음
하지만 아들은 요절
귀인 이씨는 고종이 죽고 난 후 같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삼축당 김씨와 함께 사간동 집에서 살았고 1970년 노환으로 85세에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