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 문훈숙
통일교 2인자 박보희의 3남 3녀 중 4째
1963년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나 선화예술학교, 영국 로열발레학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워싱턴 발레단 등지에서 활동
1984년 유니버설 발레단 창단 멤버
정혼자는 통일교 교주 고 문선명의 차남 문흥진
정혼자가 18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자(1984년) 영혼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을 따라 성을 '문'씨로 바꿈
(90년에 한 인터뷰에서는 영혼 결혼식이 결정됐을 때 서럽게 울었다고 함. 그래도 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결혼 후 유니버설 발레단 창단
시조카 2명을 입양해서 키우고 있음




2015년 여성조선 인터뷰
정혼자는 언제 결정된 겁니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날 때부턴 아니었고요. 부모님들이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거예요.
언제 알았나요? 알고 나서 만난 적도 있습니까? 사고 나기 직전에 알았고요, 만난 적도 있죠. 정혼한 사이인 줄 모를 때도 몇 번 만났고요
그때 저 사람이 좋다는 생각이 들던가요? 좋다는 생각보다…. 결혼이라는 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죠.
사랑하는 마음 없이 의무로 ‘영혼결혼식’을 하신 겁니까? 아버지의 가르침이, 그 사람이 누구든…. 상대방이 흑인일 수도 있고, 아주 덩치가 크거나 작을 수도 있고, 불구일 수도 있는데, 누가 됐든 간에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 이거였거든요. 모든 걸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죠. 조건 없는 사랑.
(중략)
진짜 발레를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외롭지 않겠네요. (웃음) 두 아이가 있으니까요.
시동생과 시숙한테 입양을 받으신 거죠? 내 애를 낳고 싶다, 그런 건 없었나요? 물론 조금 늦긴 했지만.하하하. 많이 늦었죠. 음. 낳고 싶다기보다는, 직접 낳은 애들을 키우는 것도 이렇게 행복한데, 나를 똑 닮은 아이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어요. 아이를 보면 그 속에 제 모습이 보일 거잖아요. 그게 어떤 건지 궁금해요.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나의 단점을 똑같이 닮았다고 생각해보세요. 물론 내 아이를 낳으면 저처럼 눈이 튀어나왔겠죠. 그런 단점은 있겠죠. 그런데, 나를 똑 닮았다, 그 느낌이 어떨까…. 첫째아이 이후에 그 생각을 계속하다가, 둘째(딸)를 입양받았는데, 정말 신기한 게 저를 정말 많이 닮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같이 살다 보면 닮아가는 거죠. 맞아요. 심지어 강아지도 주인을 닮는다고 하잖아요. 우리 집 강아지는 무용수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요.(웃음) 어쨌든, 함께 있어서 닮아가는 건데 주변 사람들도 다 놀라요. 어쩜 이렇게 닮았느냐고.
시숙과 시동생으로부터의 입양이라…. 호적만 받은 건가요, 실제로 엄마라고 부르나요? 완전히 받은 거예요. 엄마라고 부르고요, 오히려 호적은 그쪽으로 돼 있어요. 첫째(아들· 23)는 태어나자마자 제가 키웠고요, 둘째(딸·13)는 6개월 됐을 때 왔습니다.
기저귀 갈고, 젖병 물리고 직접 다 하셨겠네요. 그러면 진짜 엄마가 맞네요. 한창 <백조의 호수> 초연할 때였는데, 낮에는 연습하느라 손을 막 활개치고, 밤에는 애 업고, 허리가 부러질 뻔했죠.(웃음) 잠도 못 잤고요. 젖병을 물린 채 (제가) 잠이 든 적도 있었고요. 다행히 우리 애들은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감사해요. 병원에 간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시숙과 시동생이 아이가 많았나봐요. 어떻게 낳자마자 아이를 주죠? 입양 당시에, 우리 아이 포함해서 각각 두 명씩 있었어요. 그 후로는 몇을 더 낳았죠.
본인이 원한 건 아니죠? 주세요, 라고는 안 했죠. ‘아이 없으면 안 되겠어요’라고 말한 건 아니에요. 시댁 쪽에서 먼저 ‘그렇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한 거예요.
딸도 발레를 하죠? 얘는 그냥 푹 빠졌어요. 발레에. 저보다 더한 것 같아요. 대견스러워요. 처음에는 발레하기에 좋은 체격이 아니라서 많이 말렸거든요. 음악으로 치면 ‘좋은 악기’가 필요한 건데, 발레는 몸이 악기잖아요. 얜 좋은 악기가 아닌 셈이거든요. 그런데도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감동을 받게 되더라고요. 요즘 엄마들이 자녀를 적게 낳기 때문에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도 한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딸이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쉬운 길보다는 조금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아이를 위해 더 좋은 것 같아요.
아들은 미국에 있다고요 네. 영상통화를 자주 해요.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하기도 하고 큰 소리로 수다를 떨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명령을 하기보다는 친구처럼 대화를 하려고 하니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더 잘 따라주는 것 같아요.
종교, 결혼, 아이까지…. 아버지 혹은 아버님에게 순종한 삶이에요. 한 번이라도 반항을 해본 적 있나요? 친정아버지에게 한 번 있어요. 2001년도 부상당하고 수술하고 쉬고 있을 때였어요. 월드컵 앞두고 대작을 준비하던 땐데, 저보고 빨리 복귀해서 공연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노(No), 라고 했어요. 이번에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라고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충격에 빠지셨겠네요. 서운하셨겠죠. 제가 계속 춤추길 바랐으니까. 문화예술을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그런데 보통 무용수들이 마흔 살 전후로 은퇴를 하기 때문에, 그런 걸 알고 계셨으니 충격은 그리 안 컸을 수도 있어요.
내 인생이 왜 이럴까, 이런 적 없었나요? 왜 이럴까, 그런 건 아니고 힘든 적은 있었어요. 저도 사람인데. 근데 힘들 때마다 세상을 보죠.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 그날 아침 신문만 봐도, 벌어지는 상황들이 보이잖아요. 그 얘기가 쏙 들어가요. 행복한 비명 지르지 말라고 스스로 되뇌죠.
저도 사람인데, 라고 하셨는데요. 꼭 한 번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안 하나요? 별로 그런 생각이 없어요. 사람들은 저를 혼자라서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사람인데 외롭죠. 그런데 혼자 있는 게 아니에요, 전. 결혼을 안 해서 혼자 있는 것과, 영혼 결혼을 해서 혼자 있는 건 다르거든요. 혼자 있다고 생각을 안 하니까 그런 필요성을 못 느껴요. 내가 다른 사람이 가진 걸 못 가졌다는 ‘비어 있는’ 느낌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