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자랑하는 건데, 우리 할아버지가 천황 폐하에게 훈장을 받은 적이 있어.twt
이건 그냥 자랑인데, 우리 할아버지는 천황 폐하에게 훈장을 받은 적이 있어. 전쟁에 나가 싸우다가 팔다리를 다쳤지만 살아 돌아왔고, 그 후에는 야마나시현 의회 의원으로서 일본에 기여하셨어.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계속해서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할아버지
https://x.com/amatsuuni/status/2103045559544373406

일본국 천황은 시마즈 쇼지(島津庄次)를 훈4등에 서훈하고 서보장(瑞宝章)을 수여한다. 헤이세이 9년 12월 12일, 황거에서 어새(御璽)를 찍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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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에는 제 할아버지도 그랬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도(道) 내무부장 등을 거쳐, 마지막에는 조선 전역의 쌀 증산 책임자였고 부산에서의 일본인 귀환(철수) 책임자였습니다.
https://x.com/tamurasouryu/status/2103060497566433524

1927년 평양지방법원에서 사법관 시보·검사 대리
1928년 평양지방법원 사법관 시보
1929년 신의주지방법원 판사
1930년 전라남도 내무부 농무과 소작관
1931~1933년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장
1934년 경기도 내무부 지방과장
1935~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보안과·외사과 업무 및 상하이 영사관 사무관
1937~1939년 조선총독부 황해도 경찰부장, 황해도 문관 보통징계위원회 위원 겸임
1940년 조선총독부 직속기관 전매국 염삼과장
→ 소금·인삼 관련 부서로 보임.
1941년 충청남도 내무부장 겸 국민총력과장
1942년 충청남도 내무부장
1943년 경상남도 내무부장
1944~1945년 조선총독부 경지과장, 농지개발·토지개량 관련 과장 겸임
종전 후 부산에서 일본인 귀환 업무와 관련해 종전연락사무처리본부 소장
++ 히토스기 관련 기사
윤 교수는 일제의 첫 번째 김구 암살 계획은 1934년에서 1935년 1월 사이에 히토스키의 전임자인 나카노 가쓰지(中野勝次) 시절에 밀정 오대근을 통해 실행했고, 두 번째 암살 시도는 히토스키가 밀정 임영창을 이용해 추진했다고 밝혔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03201801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