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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스포?) 오디세이에 계속 나왔던 '바다민족'과 미케네 세계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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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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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지금 장안의 화제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직접 읽지는 않았더라도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중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간의 귀향과 귀환 후 왕권과 가정을 되찾는 과정을 다룬다.

 

작품의 내용 자체는 직접 읽거나 영화를 통해 확인하기를 권한다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오디세이아의 역사적 배경과이를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라는 실제 역사에 겹쳐 보았을 때 가능한 개인적인 해석이다.

 

*이 글은 오디세이아를 역사 기록으로 해석하거나이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려는 글이 아니다.
신화의 시간선과 실제 역사를 겹쳐 보는 2차 창작적·대체역사적 사고실험 정도로 읽어주면 좋겠다.

 

 

 

1. 오디세이아에는 두 개의 시대가 겹쳐 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상정하는 영웅 세계는 대체로 미케네 문명즉 그리스 후기 청동기 시대에 가깝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미케네 문명은 대략 기원전 1600년부터 1100년 무렵까지 그리스 본토에서 번영했다특히 기원전 14∼13세기에는 미케네티린스필로스 등의 궁전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가 발달했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필로스에서 발견된 선형문자 B 문서는 당시 사회에 왕과 관료조직이 존재했으며이들이 토지·공물·제사·생산·물자 배급 등을 관리했음을 보여준다.

 

 

트로이 전쟁에 실제 역사적 원형이 있었다고 가정할 경우그 배경은 대체로 기원전 13∼12세기의 후기 청동기 시대와 연결된다서사시에 등장하는 미케네와 필로스 같은 지명도 실제 청동기 시대의 주요 중심지와 겹친다.

 

물론 이것이 아가멤논이나 네스토르가 실존했다는 증거는 아니다고고학은 해당 지역에 실제 궁전과 정치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그곳을 서사시 속 영웅들이 통치했다는 것까지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실제로 형성된 시점이다.

 

현재 전해지는 두 서사시와 가까운 형태는 대체로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초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본다작품이 상정하는 신화적인 영웅 세계보다 수백 년 뒤이며이미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초기 철기 시대에 들어선 뒤다.

 

따라서 호메로스 서사시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함께 들어 있다.

 

1. 청동기 시대 미케네 세계에서 유래한 지명과 문화적 기억
2. 수백 년 동안 구전되며 변형된 영웅 전승
3. 작품이 형성되던 기원전 8∼7세기의 사회와 관습

 

완전히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조선 시대의 작가가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면서 등장인물에게 조선식 복식과 예법을 일부 적용한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흥미롭게도 놀란 역시 영화의 배와 무기복식 등을 하나의 고고학적 시기에만 맞추지 않고청동기 시대와 호메로스 시대의 자료를 함께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초기의 호메로스 도상도 영웅들을 제작 당시 사람들의 모습에 가깝게 묘사했기 때문에영화 역시 청동기 시대와 후대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혼합했다는 것이다.

 

 

2. 기원전 13∼12세기의 동지중해는 어떤 세계였는가

 

당시 동지중해에는 여러 강대국과 도시국가가 존재했다.

그리스 본토에는 미케네계 궁전국가들이 있었고아나톨리아(터키)에는 히타이트 제국이 있었다

이집트는 신왕국 시대였으며레반트(지중해 동부연안)에는 우가리트를 비롯한 도시국가들이 존재했다.

키프로스는 구리 생산과 해상교역의 주요 거점이었고메소포타미아에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정치체들이 있었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이 국가들은 서로 고립되지 아니하고왕들은 외교서신을 주고받으며 왕실 혼인을 맺었으며선물과 조공을 교환하고 때로는 전쟁을 벌였다이집트에서 발견된 아마르나 문서는 이집트·아나톨리아·메소포타미아·레반트의 왕과 도시들이 하나의 외교질서 안에서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이러한 초광역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 울루부룬 난파선이다.

기원전 14세기 후반대략 기원전 1320년 전후에 침몰한 울루부룬선에는 대량의 구리와 주석괴가 실려 있었다구리와 주석은 청동 제작에 적합한 약 10 1의 비율이었으며배에는 유리괴·상아·흑단·금제품·보석·토기·수지와 각종 사치품도 함께 실려 있었다.

 

청동은 기본적으로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특히 주석은 주요 문명 중심지 어디에서나 쉽게 대량 조달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도 상당한 거리의 유통망이 필요했다울루부룬선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지중해 동부 국가들이 매우 넓고 복잡한 교역망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 네트워크는 청동 생산뿐만 아니라 식량·사치품·외교 선물·원료와 기술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여러 지역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던 만큼한 지역의 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전달되는 연쇄 충격에도 취약한 구조였다.

 

 

3. 기원전 1200년 전후청동기 세계의 붕괴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기원전 1200년 전후부터 약 수십 년에 걸쳐 지중해 동부의 여러 정치체가 큰 변화를 겪었다.

미케네와 필로스 등 그리스 본토의 궁전체제가 무너졌고히타이트 제국의 중앙집권체제도 해체됐다우가리트를 비롯한 레반트의 일부 도시는 파괴된 뒤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지 않았다.

이집트는 외부의 공격을 격퇴하고 국가의 틀을 유지했지만수백 년 동안 이어진 후기 청동기 국제질서 자체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시기 이집트의 기록에는 여러 외부 집단의 이름이 등장한다현대 학자들은 이들을 편의상 바다 민족이라고 묶어 부른다.

바다 민족은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다이집트 문헌에 등장하는 여러 집단을 현대 연구자들이 하나의 범주로 묶어 부르는 통칭에 가깝다이들 가운데에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던 이주민과 난민용병해적약탈 세력 등이 뒤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에는 후기 청동기 세계의 붕괴를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다 민족의 침공
→ 도시 파괴
→ 무역망 붕괴
→ 청동기 문명 멸망

 

하지만 최근에는 바다 민족의 이동과 공격만으로 후기 청동기 세계의 붕괴를 설명하지 않는다.

기후 변화흉작과 기근전쟁내전국가의 통제력 약화교역망의 불안정인구 이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가뭄과 흉작전쟁정치적 혼란
→ 식량 부족과 국가 통제력 약화
→ 사회불안·반란·정치분열
→ 인구 이동과 약탈 증가
→ 전쟁 확대와 해상교역 불안
→ 왕국의 행정·배급체계 약화
→ 추가적인 기근과 인구 이동
→ 주변 지역으로 불안 확산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실제로 중앙 아나톨리아의 나이테와 동위원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히타이트 제국의 붕괴 시기와 겹치는 기원전 1198∼1196년 무렵이례적으로 심한 3년 연속 가뭄이 확인됐다.

 

물론 가뭄이 히타이트 제국 붕괴의 유일한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가뭄과 기근이 당시 국가의 대응 능력을 넘어섰고이미 존재하던 정치적·군사적 문제를 악화시킨 주요 압력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 관점에서 바다 민족은 청동기 세계를 홀로 파괴한 절대적인 외부 세력이라기보다이미 흔들리고 있던 체제가 만들어낸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 붕괴를 가속한 요인이었을 수 있다.

 

 

4. 그리스에서 무너진 것은 정확히 무엇이었는가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그리스에서 기원전 1200년 전후에 무너진 것은 미케네인 전체는 아니고, 미케네 궁전체제였다.

(도리아인의 남하 또한미케네 문명의 몰락에 있어 바다민족의 이동과 동시대에 일어난 복합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나분량상 여기서 언급을 마치겠음)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미케네 사회의 궁전은 단순히 왕이 사는 건물이 아니었다.

궁전은 행정·종교·생산·조세·물자 보관과 배급을 담당하는 국가 운영의 중심기관이었다궁전이 파괴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던 관료조직과 재분배경제도 해체됐고행정기록에 사용되던 선형문자 B도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미케네계 주민과 문화가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궁전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대략 기원전 1200∼1075년의 후궁전기가 이어졌다일부 지역에서는 인구가 이동하고 취락이 축소됐지만토기 제작·금속가공·항해와 여러 생활 전통은 계속됐다.

다만 정치적 규모와 경제적 통합 수준이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고지역별 차이도 커졌다.

 

대략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1600∼1200
미케네 문명의 발전과 궁전체제의 전성기

 

기원전 13∼12세기
트로이 전쟁 전승의 역사적 배경으로 흔히 상정되는 시기

 

기원전 1200년 전후
주요 미케네 궁전 파괴와 궁전 행정체제 붕괴

 

기원전 1200∼1075년 무렵
미케네 후기 궁전기와 지역사회의 재편

 

기원전 1075∼800년 무렵
그리스 암흑기라고 부르는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 8세기 이후
인구와 교역의 증가폴리스의 성장그리스 알파벳의 사용호메로스 서사시의 형성

 

 

5. 그래서 호메로스의 세계는 묘하게 뒤섞여 있다

 

미케네 궁전체제가 붕괴한 뒤 약 400년 동안 그리스어 문자 기록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구전시 전통 속에서 계속 전승됐다.

 

물론 하나의 이야기가 400년 동안 아무런 변화 없이 전달되다가호메로스가 그대로 받아 적었다는 뜻은 아니고, 구전시인은 전승된 인물과 사건장면과 표현을 이용해 이야기를 반복해서 재구성했다오래된 요소는 보존됐지만후대의 사회와 가치관에 맞게 변형되거나 새로운 내용과 결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작품 속에는 청동기 시대의 기억과 철기 시대의 사회가 함께 나타난다.

미케네·필로스·트로이 같은 청동기 시대의 지명이 남아 있는 한편작품 속 정치질서와 사회관습은 그 당시 고전시대 그리스의 폴리스제도를 보여주는 형태이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따라서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돌아온 뒤의 이타카를 단순한 왕과 신하 사이의 권력투쟁으로 보기보다는이타카의 맹주인 오디세우스의 집안과 지역 유력자들 사이의 권력 균형이 무너진 상태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이런 점에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수백 년 전 사라진 궁전세계의 기억과 후대 사회의 현실이 구전 전통 속에서 뒤섞여 만들어진 영웅서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놀란 영화가 청동기 시대와 호메로스 시대의 복식·무기·건축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작품의 성격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고학적으로 한 시기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애초에 원전 자체가 하나의 시대만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기 때문이다.

 

 

6. 트로이 전쟁을 세계사 속에 놓으면

 

트로이 전쟁의 정확한 연대와 역사성은 확정되지 않았다.

히사를륵의 트로이 유적에서는 여러 시대의 도시층이 발견됐다그중 후기 청동기 시대의 트로이 VI VIIa가 트로이 전쟁 전승과 관련해 자주 논의된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트로이 VI는 대략 기원전 13세기 무렵 파괴됐고트로이 VIIa는 기원전 12세기 초대략 기원전 1180년 무렵 파괴된 것으로 제시된다어느 도시층이 실제 트로이 전쟁과 대응하는지서사시와 같은 규모의 전쟁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이 연대 문제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청동기 붕괴와 연결할 때 중요하다.

 

트로이 함락을 기원전 1250년 무렵에 놓는다면전승상 10년 뒤에 귀환한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도착하는 시점은 기원전 1240년 전후가 된다주요 미케네 궁전들이 무너지는 기원전 1200년 전후보다 수십 년 앞선다.

 

반대로 트로이 함락의 역사적 원형을 기원전 1200∼1180년 무렵의 비교적 늦은 시점에 놓는다면오디세우스의 10년간 귀향은 미케네 궁전체제의 붕괴 및 후궁전기와 겹치게 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늦은 연대를 가정한다.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전설 속 이야기로 상상하는 트로이 전쟁은 수백 년 동안 번영한 후기 청동기시대의 마지막에 해당하게 된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서사시 속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는 여러 왕국의 병력과 함대를 모아 원정을 떠난다.

그와 같은 규모의 연합군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서사시가 기억하고 상상하는 것은 여러 왕과 전사들이 하나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던 신화적인 영웅들의세계다.

 

그러나 그들이 귀환할 무렵그 세계를 유지하던 고향의 궁전과 행정체계교역망은 해체되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영웅시대의 끝이라는 문학적 이미지와기원전 1200년 전후에 실제로 일어난 고고학적 시대 전환이 묘하게 겹치는 지점이다.

 

트로이 전쟁이 청동기 세계의 붕괴를 일으켰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신화 속 영웅들의 시간선과 실제 역사적 붕괴의 시간선을 나란히 놓았을 때 발생하는 문학적 효과다.

 

7. 그렇다면 오디세우스의 말년은 불행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오디세이아 본편의 대답은 기본적으로 아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가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올린 뒤번영하는 백성들 사이에서 평온한 노년과 온화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오디세이아의 마지막에서도 구혼자들의 친족들이 복수를 위해 무장하지만제우스와 아테나가 개입해 싸움을 중단시키고 오디세우스의 통치를 인정하도록 한다.

 

작품의 공식적인 결말은 왕권 회복과 평화풍요의 복구다.

따라서 원전 자체만 놓고 보면 오디세우스가 귀환 직후 몰락하거나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구혼자들 역시 작품 안에서는 단순히 왕위를 놓고 경쟁하던 무고한 귀족 청년들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가축과 재산을 오랫동안 소비하고그의 집을 장악했으며텔레마코스를 살해하려는 계획까지 세운다

 

작품의 도덕적 구조 안에서 구혼자 처단은 신의 승인을 받은 응보이자 정의의 회복이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현대적인 정치의 언어로 바꿔 보면 상당히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지역 유력가문의 젊은 남성들이 한 장소에서 대량으로 살해되고그들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무장해 복수에 나선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는 다시 전투를 벌이며아테나가 신적 권위로 싸움을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또 한 차례의 집단살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 사회가 스스로 타협과 제도를 통해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신이 복수의 연쇄를 강제로 끊어야만 했다는 사실은 현대의 독자에게 어찌 보면 찝찝한 감상을 남긴다.

 

작품은 평화가 회복됐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그 평화가 선포되기 직전까지 이타카는 지역 유력가문들 사이의 내전 직전까지 가 있었다.

 

 

8. 끝나버린 세계로의 귀환

 

여기서부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신화의 시간선을 후기 청동기 시대의 실제 연대 위에 겹쳐 놓은 개인적인 해석이다.

 

트로이 함락을 기원전 1200∼1180년 무렵의 늦은 연대에 놓고서사시의 10년 전쟁과 10년 귀향을 그대로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시간선이 만들어진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물론 이타카에서실제 미케네 궁전국가가 이런 방식으로 붕괴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디세이아의 이타카 역시 기원전 1200년의 사회를 그대로 묘사한 역사자료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시간선으로 보면 작품의 후반부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image.png 오디세이아와 청동기 세계의 종말

동료들은 전부 죽었고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늙어 시골에 은둔하였고아들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아내는 오랜 세월 남편의 생사를 모른 채 구혼자들의 압박을 견뎠다.
그의 집은 지역 유력자들이 재산과 혼인통치권을 놓고 경쟁하는 공간이 됐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왔지만자신이 20년 전에 떠났던 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닌 것이다.

 

이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함의하는 귀향서사랑도 통하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질서의 회복은 정상적인 계승이나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대량의 피를 흘린 뒤에야 이루어진다.

작품 내부에서는 이것이 정의의 실현이며마지막에는 신들이 평화를 보장한다

오디세우스 개인에게도 평온한 노년이 예언돼 있다.

 

그러나 시야를 이타카 밖으로 넓히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가 권력을 회복한 뒤에도 미케네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궁전 관료제와 선형문자 B는 잊혀지고궁전 중심 경제도 해체된다.

 

이후 그리스는 수백 년에 걸친 새로운 사회질서의 형성기로 들어간다.

 

 

결론

 

다시한번 말하지만, 오디세이아가 후기 청동기 붕괴를 기록한 작품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이런 생각을 하는것이 환단고기를 실제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류로 여겨질 소지가 있을것같아 강조한다.)

 

작품은 실제 붕괴보다 수백 년 뒤에 오랜 구전 전통을 바탕으로 형성됐으며미케네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트로이 전쟁의 역사성과 연대도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호메로스가 청동기 시대의 붕괴를 의식하고의도적으로 이런 결말을 만들었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다만, 트로이 함락을 기원전 1200년 전후의 늦은 시기에 놓는다는 조건 아래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신화의 시간선과 실제 역사를 겹쳐볼 수는 있다.

 

그렇게 읽으면 오디세이아는 단순히 고난을 이겨낸 영웅이 집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되찾는 이야기만은 아닌것 같이 느껴진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온 곳은 분명 이타카였지만그곳은 더 이상 그가 20년 전에 떠났던 고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느낀 오디세이아의 결말은 찝찝하고 쓸쓸하다.
 

그의 귀환 뒤로 보이는 것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찬란했던 미케네 문명이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빛을 내는 회광반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ycenaean Civilization」

Deborah Steiner 편, Homer: Odyssey Books XVII–XVIII, Introduction

TIME, 「Christopher Nolan Has Been Dreaming of The Odyssey for More Than 20 Year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Amarna Letters」

Institute of Nautical Archaeology, 「Uluburun Late Bronze Age Shipwreck Excavation」

Eric H. Cline, American Society of Overseas Research, 「Who are the Sea Peoples?」

Sturt W. Manning 외, Nature, 「Severe multi-year drought coincident with Hittite collapse around 1198–1196 BC」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Greek Iron Age, 「The Transformation of the Mycenaean World」

The Archaeology of Greek and Roman Troy, 「Troy in the Bronze Age」

 

 

 

 

 

 

 

영화에서 '제우스의 법칙'을 어기며 암흑기가 도래할 거라는 오디세우스의 예언은 실제 역사적으로 미케네 문명에 닥쳐올 미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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