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용환에 대해 지적한 루리웹 유저 - "일반인의 정보 취득 능력이 매우 극적으로 올라갔다는 걸 간과하고, 본인이 전공자다, 학위소지자다 하여서 일반 대중들이 다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6301184
"학자라는게 뭐 명확한 직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전문유형이기 때문에 석사이상 대학원생이 꾸준히 자기 연구하면 뭐 학자라고 할 수 있지 (직업이라 함은 교수, 연구원, 학예연구사 등이 직업이고…) 저 사람 문제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방송도 나간다는 사람이 대중적 정서를 고려 못했다는 점이 문제고, 역사를 혼자 취미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명색이 본인 연구한 걸 다양한 형태로 공유하는 사람이 그래선 안되지.
또 한가지는 이 양반만 그런게 아니라 사학과쪽 연구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 실수인데, 요즘 사람들의 정보 취득 능력이 과거에 비해서, 그것도 최근 들어 매우 극적으로 올라갔다는 걸 간과하고, 본인이 전공자다, 학위소지자다 하여서 일반 대중들이 다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
"저 사람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친일파들이 많은 단체에 속해있다고 친일이라고 단언해선 안된다.’ 이게 사실 연구자로서는 아주 당연하고 기초적인 접근인건 맞음 문제는 지금 사람들이 안상호가 단순히 그 단체 소속이라 친일파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파헤친 상태인데 이런 부분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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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자 집단 지성이 발현중인 나무위키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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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세기만 해도, 책이나 논문을 직접 가지고 있거나 빌리지 않았으면 볼 수도 없었음. 읽을 수 있는 외국어 실력과 지식이 있어야하는건 또 별개.
( 90년대만 해도 학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서도, 유학만 다녀와도 일정정도 자리가 보장되고, 심지어 양심없으면 외국거 그대로 베껴서 자기것인양 하다가 나중에 다 밝혀진 사례들도 많지...)
요즘은 역사 자료들을 DB화하면서, 원 이미지와 원문, 해석본도 DB화함. 논문도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다운받아서 볼수 있음. 거기다가 AI 까지 있어서 번역도 다 해주고. (기존 서적들을 학습해서) 석사 수준의 분석과 설명도 기본으로 잘해줌. 교양이나 학부 수준의 지식만 있어도 문답으로 찾는걸 도와줌.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찾아보고 상호 작용하던 상황에서,
심용환 `니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시전.... 당장 게시물 삭제하고 튀기전에도,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댓글들 많았음. 사람들이 안상호와 집안 관련해서 당대 자료들 찾아서 정리하고 있음. 하지만 전문가라고 일침한 본인은 그에 대해 답도 안하고, 게시물만 삭제..
https://www.minjok.or.kr/archives/153701
민족문제 연구소 입장문중
"3. “어떤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고 친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론에 대해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는 고문 이완용 · 민영휘, 회장 조중응 등 거물 친일파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전직 관료 · 귀족 · 대지주 · 실업가들이 결집하여 ‘내선융화’를 표방하며 결성한 단체입니다.
조선인의 단체 결성과 결사 활동이 극도로 억압되던 1910년대 무단통치 하에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1930년 전시체제기에 반강제적으로 조직된 전쟁협력단체와는 결성 배경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당시 조선인 단체로는 종교단체를 제외하면 대정친목회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친일 엘리트의 모임이었던 대정친목회는 조선인 유력자와 일제 당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나아가 3·1운동 전후 일제가 이른바 문화통치(민족분열책)를 획책할 당시, 대정친목회는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민족의 저항 의지를 무력화하는 정신적 · 사회적 협력기구로 기능했습니다. 이들은 3·1운동을 반대하고 일제 통치에 순응하면서 ‘독립불능론’을 주장하는 한편, 산업의 발달과 문화 향상을 내세우는 개량주의적 ‘실력양성론’을 펼쳤습니다.
안상호는 이 단체의 평의원(1916.11.29.)으로 명단이 확인됩니다. 따라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단체의 성격을 고려할 때, 평의원(일종의 대의원 격)으로 참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친일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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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친일인명사전 미등재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여부는 편찬위원회의 선정 기준과 행위의 자발성, 적극성, 반복성, 지속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결정했습니다. 2009년 발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가 축적한 자료로는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선정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에 편찬위원회의 결정으로 수록을 보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곧 ‘친일 행적이 없음’을 뜻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해방 6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은 사전 편찬 작업은 당시 축적된 학술 연구 성과와 사료의 한계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인력과 자료 부족으로 인해 판단이 보류된 인물도 다수 존재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비롯한 과거사 기록 사업은 완료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료의 발굴과 검증을 통해 ‘보유편’과 ‘개정증보판’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 학술 사업입니다. 새롭게 확인되는 관보, 신문 기사, 단체 명부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학술 검증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7. 연좌제적 비난 경계와 구조적 성찰의 필요성
이번 논란의 본질은 배우 개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하여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인식과 성찰 부재의 문제’에 있습니다. 조상의 과오를 성찰 없이 미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소비한 태도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은 행위 당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며, 선대의 과오에 대한 단죄를 후손에게 전가하는 연좌제적 발상은 민주 사회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강성현 교수가 지적했듯, “어떤 제도가 그 이력을 씻어주었나… 이 질문들이 ‘연좌는 안 된다’는 한 문장에 막혀버릴 때 가장 크게 손해 보는 쪽은 친일 청산이라는 의제 자체다”라는 경고를 새겨야 합니다. 단순히 ‘후손에 대한 연좌제 금지’라는 방어 논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 하에서 형성된 전문직 계보와 사회적 자산이 해방 후 청산 없이 어떻게 기득권으로 승계되고 세습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과 역사적 성찰로 이어져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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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인스타그램에서는 글지우고 안올리고, 페이스북에만 입장문 올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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