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익남씨 영면 - 양의학의 개척자
지금으로부터 43년전 고종 32년에 조선사람으로서 처음으로 현해탄을 건너가서 경응의숙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의술을 닦은 후
그 학교 부속병원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당시 한국정부에 의학교를 창설할 때 주임교원으로 초빙되어 조선에 처음으로 서양의술을 수입지도한
심오 김익남씨는 5일 오전 한시 이십분에 상왕십리정 자택에서 6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는데
그는 당시 조선에 의료기관이 없음을 개탄하여 사립병원을 세워 실비로 많은 병자를 다스렸으며
한국정부에 의무국이 생긴 후에는 삼등군의장이 되어 16년간이나 국장사무를 취급하였고 또 휘문 보성학교의 생리위생과목도 맡아 가르쳤으며
기미년 이후에는 간도 용정촌으로 가서 13년 동안이나 그곳에 이주하여 사는 조선동포 의병을 치료하여 온 이로
그야말로 인술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조선 신의학계의 공로자의 한 사람이라 한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3704060023910201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7-04-06&officeId=00023&pageNo=2&printNo=5707&publishType=00010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난 기사라 기사 전문을 가져옴)
안상호 집안이 내세웠던 최초의 근대식 서양의사, 최초의 의학교 주임교원 타이틀의 진짜 주인공
당시 기사에서도 처음으로 서양의술을 수입지도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음
제대로 된 병원이 없는걸 안타깝게 여겨 최소 비용만 받고 환자를 치료했으며 의무국(지금의 보건복지부) 창설후 16년간 국가사무에도 종사함
가장 중요하게는 3.1운동이 벌어진 기미년 이후 간도 용정촌(윤동주 시인 고향)으로 가 그곳에 이주한 동포 및 의병들을 맡아 치료함
최초의 서양의사, 최초의 의학교수, 거기에 의료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도 기여했는데
이 모든 타이틀을 엉뚱한 사람이 다 가져가 버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