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바라본 美…"박정희, 온건하게 가지 않을 것"
무명의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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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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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측은 사회 전반의 반응, 정권 내부 동향 등을 상세하게 전하며 이번 저격 사건이 향후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특히 주목했다.
대사관은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확고하고 강력한 조치" 혹은 "억압적 조치"에 나설지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사관은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확고하고 강력한 조치" 혹은 "억압적 조치"에 나설지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1974년 1월 선포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 비방과 유언비어 날조·유포 행위 등을 금지하고, 2호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도록 했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도구가 됐던 긴급조치 1·2호 등은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긴급조치 1·2호가 선포된 1974년 1월 8일 밤 본국에 올린 상황 보고에서 "박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사전 언질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분석 결과, 대사관 측은 당시 박 대통령이 '절제'(moderation)를 포기하고 탄압으로 급선회했다고 규정했다는 판단을 전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긴급조치는 국내 문제인 만큼 침묵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했으나, 대사관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다.
"우리가 이곳에 관여하고 있는 이상 '논평 없음'은 충분하지 않으며…지나치게 수동적인 반응은 오히려 한국 정부가 억압적 조치의 길로 더 나아가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다만, 대사관 측은 최종 판단을 워싱턴으로 넘겼고 1월 11일 당시 미국 국무부는 "현시점에서 논평한다는 것은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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