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全然)히 내지화(內地化)한 ◇ 의사 안상호(安商浩) 씨의 가정 ◇
출처: 1918년 12월 10일 매일신보 기사
제목: 왕세자 전하 가례(嘉禮) 前에 일선동체(日鮮同體)의 가정 방문
전연(全然)히 내지화(內地化)한 ◇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 ◇
오남매의 자녀를 두고 아주 재미있게 산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서양의술을 수입하여 성공한 안상호(安商浩) 씨는 일선동체(日鮮同體)의 가정을 만드는 데도 제일 먼저 성공의 길을 들었다. 8일 우후(雨後)에 겨울 위엄을 발휘하는 모진 바람을 무릅쓰고 씨(氏, 안상호)의 저택을 방문하였다.
진찰실에서 분주히 일을 하다가 두 손을 부비며 나와서 기자의 방문한 뜻을 듣고 [감사합니다. 저리로 들어가시지요] 어디로 뜯어 보던지 조선 신사(紳士)이다. 인도되어 내실에 들어가 본즉 내지(內地) 가정과 같으리라고 미리 생각하였던 바이지만은 그만큼 그만큼한 일본 아이들이 4, 5명이나 있어서 매우 번화하다. 안씨와 기자는 금새 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이 생각이 된다. 안씨는 [코라 레이쨩 야카마시이요(こら レイちゃん 喧しいよ - 레이쨩보고 시끄럽다고 혼내는 모습)] 어린 아이들을 제어하면서 온돌방으로 안내한다.
기자는 먼저 살림 재미를 물었다. 안씨는 [네 그렇지요. 별수 있나요. 나는 무엇 일본사람과 똑같지요. 나는 지금 조선옷은 한 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어요. 일본사람과 똑같지요. 그러하니까 불편한 점은 조금도 없어요. 집안사람도 연전에는 매우 적적히 지내었으나 요사이에는 아이들도 많이 있고 우리 장모도 와서 계시니까 매우 재미있게 지내지요] 그래 혹 시골에서 일가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네 나는 고독한 사람이 되어서 찾아올 일가가 없어요. 가족이야말로 단출하지요. 조선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음으로 불편한 것은 없어요. 이것이 불행중 다행이라 할는지요]
안씨는 지금부터 열두 해 전에 의친왕이 동경(東京)에 계실 때에 의친왕의 시의(侍醫)로 있었더라. 그때에 씨(氏)의 부인 기자(磯子, いそこ)와 서로 알게 되어 磯子(기자, いそこ) 부인의 모친에게 청혼을 하여 전후 열한 해 동안 고락을 같이 하였는데 지금 앵정(櫻井)소학교를 다니는 아홉 살 먹은 큰딸을 위시하여 자녀가 모두 오남매이며 동경에 있을 때로부터 지금까지 살림살이를 조금도 고치지 아니하였음으슴(?) 안 씨가 도리어 아내를 따라서 일본사람이 된(?)음이다.
기자는 다시 부인에게 면회를 청한즉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들에게 쌓이어서 [나는 조금도 조선사람하고 상관이 없음으로 일본에서 사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고 열한 해 동안을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마디도 못해요.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아이들이 많아서 출입도 잘 못 해요. 한 달에 진고개나 한번씩 가지요.]
(아마 기자가 물은 듯) [어린아이들은 조선 동무들과 자주 놀 터이지요] 하고 물은즉 [집 앞이 바로 전차길이기 때문에 단속하여서 내보내지를 아니함으로 우리 식구들은 딴세상에 사는 셈이에요] 말을 할 즈음에 조선인 늙은 할멈이 문을 벙싯 열더니 [오쿠상 뉴룩구(쇠고기, にく 말하는 듯) 다 구워요] 할 때에 기자는 안 씨의 집을 하직하였다.
* 직접 다 읽어보고 원문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되게 살짝 고친 거임. 조금씩 틀린 내용 있을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