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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의 한국 통치는 왜 실패했을까?

무명의 더쿠 | 16:37 | 조회 수 2071

현직 일본 총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이토 히로부미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해서 알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해서 안다.

하지만 그 이름 뒤의 한 인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토에 대한 지식은 대체로 ‘안중근한테 죽은 그 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치워버리기에 이토는 너무도 중요한 인물이다.

 

마침 광복절도 다가오는 이 때,

로마가 자신들을 꺾을 ‘뻔’한 한니발을 미친듯이 띄워줬듯이,

안의사의 사냥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박제해 걸어두는 것이야말로

광복절을 맞이하는 기합찬 모습일 것이다.

 

그럼 이제 이토가 뭘 하던 사람이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쩌다 조선 통치에 실패하고 비명횡사했는지 알아보자.

 

 

1. 메이지 유신까지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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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1841년, 현재의 야마구치현인 조슈 번에서 하급 중의 하급 무사로 태어났다.

조슈는 라이벌인 규슈의 사쓰마와 함께 에도 막부에 가장 반항적이었던 번으로,

서양의 무기를 밀수해 무장하며 세를 키우고 있었으며,

자연히 서양의 과학, 기술, 사상, 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상당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토는 그 유명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가 되어

다카스기 신사쿠, 야마가타 아리토모, 구사카 겐즈이, 기도 다카요시, 이노우에 가오루 등

메이지 정부를 이끌어가게 될 인물들과 교제하였으며,

직접 암살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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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뒷줄, 앉은 채 뒤돌아보고 있는 인물이 이토)

 

또한, 번 차원에서 막부 몰래 영국에 유학 보낸 ‘조슈 파이브’의 일원으로서

런던에서 공부하며 서양 학문을 현지에서 직접 배웠고,

이때 배워둔 영어 실력을 평생 쏠쏠하게 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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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슈의 유망한 개화 인재로 성장하던 이토는

조슈, 사쓰마, 도사, 히젠 4개 번이 들고 일어나 막부를 전복시키고 교토에 입성,

메이지 천황을 옹립하는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자

자연스럽게 신정부의 주요 인물이 되었고,

일본 최초의 헌법 작성에 크게 기여하며 내각을 구성, 초대 총리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45세.

 

 

2. 이토가 추구하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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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의 이토)

“생각건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저마다 다양한 생각과 사고가 있고 의논 순서도 한 가지로 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으로, 억지로 생각을 바꾸도록 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문명 각국의 풍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마음속에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의견만을 달성코자 한다면 모두가 다투게 되어 준칙을 잃고 말 것이므로 예의에 따른 교화, 국가 법령에 근거한 제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다카요시(가쓰라 고고로)에게 보낸 편지 중

 

이 편지에 드러난 이토의 정치관을 요약하면, 즉

1. 서구의 강대국들을 쭉 둘러보니 문명국들은 개인의 생각을 억지로 바꾸지 않는다.

2. 그런데 그렇다고 다들 맘대로 하게 놔두면 개판이 되니까 제도가 있어야 한다.

라는 것이다.

여기에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이토 개인의 성향이 맞물려

다음과 같은 정치 원칙들이 도출된다.

 

-문명국=문명 제도

“조직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나라가 움직인다. 유럽 제국이 바로 이러하다. 이러한 나라들은 활기가 있다. (…) 서양에 반하는 동양 쪽은 죽었다. 이는 동양 국가에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1897년 4월, 대만회 강연 중

 

이토에게 문명국이란 제도를 갖춘 국가이며, 다른 동양 국가들,

즉 유신 이전의 일본, 청, 조선 등은 제도가 없는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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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가 없다니 뭔 소리야? 싶겠지만,

이토(를 비롯한 메이지 개화론자들)에게 제도란 의회, 헌법 같은

서구식 제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토에게 메이지 유신으로 의회와 헌법을 갖춘 일본과 달리

전통 관료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청, 조선은

다른 제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제도가 없는 것이었던 것.

문명을 알려주겠다며 군함으로 지랄을 떠는 습관은 여기서 나온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토에게 국가=제도였다는 것,

그리고 그 제도는 의회, 헌법 등 서양식 제도였다는 것이다.

 

-문명국=문명 시민들의 국가

이토가 개인의 생각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 점이 강대국들의 문명-비결이라고

생각했음은 앞서 언급했다.

서양 나라들이 개인을 가만 놔둔 게 부국강병에 도움이 된 이유는?

서양의 개인들은 자유롭게 쓸모 있는(과학적인) 생각을 하니까.

즉, 이토는 아직 쓸모 있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일본 국민을

국가 제도를 통해 교육시켜서 ‘서양인 같은’, 자주적인 성향과 실용적인 지식을 갖춘 시민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그 제도란 나라에서 만들어 백성에게 내려주는 것이었다.

메이지 유신 자체가 천황을 주권자로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성립했기도 하고,

이토가 보기에 일본 국민의 교육 수준은 도저히 서구에 비할 바가 못 되어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독립적으로 생각해, 독립하지는 말고

 

이토는 국가 주도로 제도를 잘 만들어서 국민을 교육하고,

국민이 충분히 서구적인 시민이 되었다 싶으면

입헌 민주주의를 시행해서 군주와 국민을 조화롭게 해

일본을 문명국가로 만들겠다… 대충 이런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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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토의 좌충우돌 정치 편력이 시작되는데,

1. 독립적인 시민을 만들려고 개혁을 밀어붙인다.

2. 교육받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정당을 만들고 정치에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3. 어어 아직인데 싶어서 찍어누른다.

4.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생긴 반대파들이 이랬다저랬다한다고 비판

 

1~4를 몇 번 반복한 후 이토는 입지가 약해졌고,

‘입헌정우회’라는 정당을 만들어서 선거에 나가려고 하지만

자기 사람들 살뜰하게 챙겨줘도 권력이 불안한 판에

민중에 호소하는 중우정치를 혐오하던 엘리트 버릇 못 버리고

고고하게 굴다가 다시 실각했다.

하지만 실각했다고는 해도 정치적, 사상적 영향력은 건재해서

자기 제자들을 통해 영향력은 계속 행사하고 있었고(일본 정치 특),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위해,

군통수권을 가진 직위에 올라 폭주하려는 군대를 통제하기 위해

러일전쟁 승리 후 반식민지 상태로 만들어놓은 조선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다.

 

 

4. 조선 통치 대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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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노년의 이토)

 

조선인은 뛰어납니다. 이 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그 발전 수준이 일본보다 뛰어났던 시대도 있어요. 이 민족이 이 나라를 스스로 경영해나갈 수 없다고 볼 이유가 없어요. (…) 오늘날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 것은 정치가 나빴기 때문이에요.

-니토베 이조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의외로 이토는 ‘한국을 계몽시켜서 문명국으로 만들겠다’ 운운하는

일본판 ‘백인의 짐’ 같은 입발린 소리를 나름 진지하게 믿었다.

당대 제국주의자들 중에는 식민지 원주민들을 일종의 금치산자로 생각해서,

이게 다 쟤네들을 위한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래서 이토는 엣헴거리며 자신의 ‘성공 공식’을 거의 그대로 조선에 적용했는데,

이게 고대로 역효과를 내면서 통치가 거하게 실패해버렸다.

 

-고종은 메이지가 아니었다

메이지 신정부를 구성한 관료들은 천황을 신격화하고

그 권위를 빌어 일본을 통치했다.

모든 정권은 ‘니가 뭔데 제 위에 계십니까?’ 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막부의 대답이 ‘그럼 죽어’ 였다면

신정부의 대답은 ‘천황이 ‘우리’ 위에 있고, 나는 그 하인이다’ 였던 것.

메이지 본인 입장에서도, 어차피 실권 없는 건 똑같다면

황실을 무슨 때리면 관직 나오는 장식품쯤으로 생각하던 막부보다는

가오라도 제대로 살려주는 신정부랑 연대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래서 이토는 통감으로 부임하면서 자기의 화려한 말빨로

고종만 어떻게 구워삶으면 조선도 쉽게 ‘문명화’할 수 있을 걸로 여겼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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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실권을 잘만 행사하고 있던 전제군주였고,

당연히 이 달달한 ‘군밤’을 일본과 나눠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토는 고종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효율적으로 통치하기는커녕

자기의 시간과 자원을 자꾸만 꿈틀거리는 고종을 통제하는 데 써야 했다.

 

 

-조선은 일본이 아니었다

이토는 원래 민족주의를 싫어했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라 하면 그건 곧 ‘존황양이’, 즉

서구를 물리치고 일본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쇄국주의였다.

영국에 유학까지 하고 온 친서구 개화파 엘리트인 이토 입장에서 민족주의란

우물 안 개구리들의 헛소리에 불과했고, 타도의 대상이었지 협력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토는 조선에서도 근대화에 관심 있고 편협한 민족주의와 쇄국에 반대하는,

적절한 개화파 지식인 계층과 협력하고자 했다.

 

그런데 조선에는 민족주의자가 아닌 지식인은 없었고,

이토는 협력할 만한 안정적인 엘리트 계층을 찾을 수 없었다.

(간만의 비즈니스 찬스에 눈 돌아간 매국노들은 개인이었지 계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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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 얼마나 쎈지 봤지? 우리도 저렇게 안하면 당한다’

애초에 이것이 메이지 유신의 논리였다.

즉, 근대화=국방이었고, 나라를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개화파의 논리 자체에 민족주의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입장에서,

지금 조선을 쳐들어온 세력도 일본이고,

근대화를 해야 한다고 빽빽 소리치는 것도 일본.

이토는 일본이 스스로 만든 ‘근대화=매국’ 구도에 갇혀 버렸다.

만약 일본이 조선에 했듯이 서양 국가가 일본을 침탈했다면

청년 이토 또한 민족주의자가 되어 싸우지 않았을까?

메이지 유신과는 전혀 다른 구도에 같은 방식을 사용한 결과

이토는 결국 조선의 민족주의 지식인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유림? 말할 것도 없다.

 

1909년 1월, 대구에서 유생 400여명에게 이토가

함께 문명으로 나아가자고 연설할 때,

한 유생이 청중석에서 항의하다 체포되는 일이 있었고, 이에 이토는

“여러분 가운데 단독으로 일본에 저항하고자 원하는 이가 있다면 와서 해보시오.”

라는 협박으로 연설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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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니가 뭔데 제 위에 계십니까?’ 라는 질문에

‘그럼 죽어’로 대답해버렸고,

9달 후 총을 지참한 더욱 강력한 ‘그럼 죽어’에 당해 쓰러졌다.

 

 

 

출처

이토 히로부미 평전(AK 커뮤니케이션즈)

메이지 유신(AK 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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