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일체가정의 성공자, 안상호 씨는 조선인으로서 가장 먼저 일본인 부인을 맞이한 선구자였습니다.
무명의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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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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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인 부인과 재미스럽게 살던"
"내선일체가정의 성공자"
....조선인(朝鮮人)으로 내지(內地) 부인(夫人)을 얻은 선구자(先驅者)로 내외(內外)가 한결갓치 일본(日本) 풍속(風俗)을 숭상(崇尙)하야 가내(家內)의 언어(言語)는 전연(全然) 내지어(內地語)를 사용(使用)하며 조선인(朝鮮人)과의 교제(交際)를 기피(忌避)하야 일즉이 조선(朝鮮) 옷을 입어본 일이 안슨 즉(卽) 씨(氏)의 가가(家家)는 내선융화(內鮮融和)의 표본(標本)으로 사회(社會)의 칭송(稱號)을 밧든 터이라 하더라.
->안상호 씨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인 아내를 맞이한 선구자였으며, 부부가 한결같이 일본 풍속을 숭상하여 집안에서는 온통 일본어만 사용했습니다. 조선인과의 교제를 피하고 일찍이 조선 옷(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집안은 '내선융화(일본과 조선의 동화)'의 표본으로 당시 사회(친일 세력 및 일제 지배층)의 칭송을 받았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