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조선 사람이라면 상식이었을 고종 독살설 중 안상호(하영의 증조부)의 입지
요약 : 당대에 고종과 연루된 궁녀들이 독살당했다는 이야기는 황실 고위층부터 국민들까지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 중 의사 안상호 이름은 빠지지 않았음.
고종 사망 한달 전에 안상호가 총독부 기관지와 한 인터뷰가 자기집에서는 조선말 안쓰고, 조선사람도 상종안한다였음.
당대 사람들이 의심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을 정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53/0000007456?sid=110
기사 ai요약
1. 고종 해외 망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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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추진 (1914~1915년): 신한혁명단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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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 이상설(신한혁명단 본부장) 및 박은식, 신규식 등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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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성낙형을 국내에 침투시켜 덕수궁 함녕전의 고종에게 보고서 전달. 고종은 이를 승낙하는 징표로 정조의 인영('온여기옥')을 하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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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고종 면담 직전 성낙형, 김사준 등 관련자가 일제에 검거('보안법 위반 사건')되면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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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추진 (1918년): 이회영·민영달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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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 이회영(우당), 민영달(전 내부대신), 홍증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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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발표(외적 조건) 및 영친왕 이은과 일본 방자(마사코) 여사의 혼담 결정(내적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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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종 이교영을 통해 고종의 승낙을 확보. 민영달이 행궁 구매 자금 5만 원을 지원하여 북경 행궁 마련을 추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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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고종의 갑작스러운 급서로 인해 실행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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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종의 승하와 일제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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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서 상황: 1919년 1월 20일 밤 고종의 병세가 악화되었으며, 당시 이완용과 이기용이 숙직을 서고 있었음. 고종은 다음 날(1월 21일) 오전 6시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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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대응: 사망 사실을 하루 동안 은폐한 후 신문 호외로 비공식 발표함. 일제가 밝힌 공식 사인은 '뇌일혈'이었음.
3. 고종 독살설의 확산과 주요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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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 배경: 사망 전날 밤 급작스럽게 승하하여 아들들조차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등 의문점이 많아 독살설이 유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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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장 및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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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등이 어의 안상호로부터 얻은 무색무취한 독약을 어주도감 한상학을 통해 식혜에 타서 올렸다는 설이 유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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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윤덕영, 한상학 등이 주모자로 지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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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회영 가문, 송상도 등) 및 왕실 관계자(조계진 등) 사이에서도 독살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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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제의 해명과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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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기관지(매일신보) 해명 (1919년 3월 15~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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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식혜를 마신 후 안락의자에서 자다가 뇌일혈이 왔으며 안상호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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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 탄 식혜를 올린 궁녀 2명을 입막음용으로 독살했다는 소문에 대해, 해당 궁녀들(김춘형, 박완기)은 각각 감기와 기침(혓병) 등 병사한 것이라 해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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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및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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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해명이 오히려 고종이 사망 전 식혜를 마셨다는 점과 궁녀 2명이 고종 사후 시차를 두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해 주면서 독살 의혹이 더욱 증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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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당시 격문(국민회보) 및 피의자 신문조서(오흥순, 이재호 등)를 통해 독살설이 널리 전파되었음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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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의문사와 독살설은 3·1 운동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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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6/0000021429?sid=102
노블일지 : 1892-1934 : 미 여선교사가 목격한 한국근대사 42년간의 기록
책 소개중
https://dl.nanet.go.kr/detail/MONO1201004117
한편 1919년 3월 2일자의 기록은 3·1운동 당시 고종 독살설이 얼마나 시중에 팽배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과 한국은 함께 움직일 때 더욱 발전할 수 있으며,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분리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문서에 거의 강제적으로 서명이 이루어졌다. 고종 황제가 이에 격노하며 서명하기를 거부하자, 강제적으로 서명을 받아낸 이들은 그에 따른 파장이 두려워 고종 황제를 독살하고 궁녀들도 살해했다. 바로 윤덕영과 호상학[당시 전의였던 안상호]의 짓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담은 문서에 이완용, 조중응, 김윤식, 송병준, 임태영, 신흥우가 서명을 했고, 그 내용을 담은 전단이 온 거리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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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고종의 고명딸도 안상호가 독살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음.
https://www.m-joong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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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필이면 안상호의 증손녀가 방송 나와서. 안상호가 고종 황제를 치료했다고 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