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리비 5000만원” 포르쉐 물 먹인 주유소, 영업배상보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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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친정어머니와 식사를 마친 뒤 포르쉐 차량을 몰고 경기도 양평IC 인근을 지나던 구모(53)씨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고속도로 진입 직전 도로 한가운데서 차량이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시동이 꺼지고 멈춰 선 것이다. 구씨는 지난 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르신까지 태우고 있었는데, 뒤에 바짝 따라오던 차량이라도 있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에는 차량 결함을 의심해 공업사에 점검을 맡겼지만, 원인은 예상 밖이었다. 공업사 측은 “주유한 휘발유에 500~600mL가량의 물이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이 멈춰 서기 불과 얼마 전, A 주유소에서 넣은 고급 휘발유가 화근이었다. 한국석유관리원과 양평군청은 같은 시기 해당 주유소에서 주유한 차량에서 비슷한 피해가 잇따르자 현장 조사에 나섰다. 간이 시약 검사 결과 수분 혼입 정황이 나왔고, 현재 정밀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구씨는 “포르쉐 AS센터에서 수분 유입은 혼유보다도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며 “물이 연료계통과 엔진 내부를 순환한 만큼 엔진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예상 수리비는 최소 5000만원에 달한다.
논란이 커지자 A 주유소 측은 일반 휘발유와 경유만 판매하다 지난 4월 고급 휘발유 옵션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탱크 청소를 진행했고, 청소업체가 배관을 자른 뒤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장마철 빗물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피해자 측에 설명했다. 물이 섞여 주유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주유소 측에 따르면 비슷한 피해를 본 차량은 포르쉐·벤츠·폭스바겐 등 수입차를 포함해 10여 대에 이르며, 일부 차주들과는 합의를 마친 상황이라고 한다.

A 주유소 대표는 “이상 정황을 인지한 직후 고급유 판매를 중단하고 원인과 유입 경로를 조사하고 있다”며 “피해 차량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부품 교체와 연료계통 세척 등 수분 유입으로 발생한 객관적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엔진 전체 교체와 같은 과도한 요구는 법적 절차를 통해 객관적 피해 범위로 입증되면 그때 책임 있게 배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씨는 한국석유관리원의 정밀 분석 결과가 나오면 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중략) 그는 “주유소가 관련 보험에 가입돼 있었다면 소비자와 업주가 얼굴 붉힐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보험 가입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와 업주 분쟁으로 이어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주유소는 재난안전법에 따라 화재·폭발·붕괴 등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재난배상책임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 반면 수분 유입이나 혼유 사고처럼 영업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발생한 인적·물적 피해를 보상하는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은 의무가 아닌 자율에 맡겨져 있다.

주유소의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률에 대해선 공식 통계조차 없다. A 주유소 역시 해당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주유소 측은 “혼유 사고에 대한 영업배상책임보험을 5년간 유지해 왔지만, 주유기를 ‘셀프’ 방식으로 전환한 뒤 지난 3월 보험 만기가 도래하면서 보험을 갱신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환경에 맞는 보험 가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혼유 사고는 물론 장마철 수분 유입 사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업주와 소비자가 직접 합의하거나, 합의가 불발되면 소송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을 늘리기 위해 보험사와 협의해 단체보험 할인 사업을 올해부터 추진할 예정”이라며 “다만 손해율이 높아 주유소가 가입을 원해도 보험사가 인수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