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보낸 생수에 “변기 내리는 물”···일본의 ‘혐한’은 어떻게 일상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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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한국산 생수를 보면 변기를 내리는 물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대한항공이 일본 구마모토현 강진 피해 현장에 보낸 제주산 생수 1.5ℓ 1만2000병을 전달하자, 일본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한국을 혐오하는 내용을 담은 댓글이 다수 올라온 것이다. “한국산 물은 마시고 싶지 않다”, “피해자가 마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재고 처리가 아니길 바란다” 등의 댓글도 잇따랐다. 지진으로 단수와 폭염 피해가 이어지는 상황인데도 ‘한국산’이라는 국적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일본 온라인 공간 전체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피해자를 돕기 위해 보낸 물인데 왜 이런 말을 하느냐”, “국적보다 긴급 지원이 먼저”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하지만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에서조차 특정 국가에 대한 불신과 혐오 표현이 빠르게 등장했다는 점은 일본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혐한’ 정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일본 내 혐한 현상을 연구해 온 학자들은 이를 단순히 개인의 편견으로만 보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 갈등, 국내 정치, 인터넷 문화가 결합하면서 특정한 이미지가 반복 생산되는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관자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는 일본 사회의 내셔널리즘과 배외주의를 단순한 역사적 적대감만으로 설명하기보다, 근대 일본이 형성해온 ‘국민’과 ‘타자’의 경계 인식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분석해왔다.
특히 조 교수가 주목한 것은 ‘넷우익’으로 불리는 온라인 기반의 새로운 보수주의였다. 과거에는 일부 정치 세력이나 특정 집단에 머물던 배외적 표현이 인터넷 익명성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면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외신들도 일본 사회에서 커지는 외국인 경계 심리를 단순한 배타주의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불안과 연결해 분석하고 있다.
우스이 교수는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을 누리던 1980년대에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지금처럼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경제 강국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장기 침체와 함께 중국·한국 등 주변국이 전자산업과 조선업 등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많은 일본인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엔저’를 이유로 일본을 ‘싸게 즐길 수 있는 나라’로 소비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도되면서, 일본이 더 이상 예전의 경제 강국이 아니라는 현실을 체감하게 됐고, 이러한 상실감이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과 배타적 정서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 재난과 사회적 불안이 외부 집단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사회에서도 불안과 공포가 특정 집단을 향한 적대감으로 번졌다. 1923년 9월 대지진으로 도쿄와 주변 지역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를 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당시 일부 시민과 치안 조직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처럼 받아들였고, 이는 조선인과 중국인 등이 희생되는 대규모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해외 언론과 역사 연구자들은 이를 재난 상황에서 정보 부족, 사회적 불안, 기존의 편견이 결합해 어떻게 집단 혐오로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분석해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복잡한 원인을 이해하기보다 ‘누가 위협인지’를 찾아내려는 심리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와 현재의 온라인 혐오 표현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위기 상황에서 불안이 ‘외부 집단’을 향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