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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원작 번역가가 영화 비판한 내용들 (장문, 스포)

무명의 더쿠 | 17:30 | 조회 수 3080

에밀리 윌슨은 호메로스를 평생 연구한 사람인데 역사상 최초로 오디세이아를 번역한 여성임. 여성 서사에 좀더 주목하고 여성의 입체적인 부분들을 좀더 강조해왔음. 놀란이 영화를 만들 때 에밀리의 오디세이아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었음. 그런 에밀리가 이번에 오디세이를 보고 런던 북 리뷰에 기나긴 리뷰를 남김...


https://x.com/Variety/status/2081785202704031939


나는 놀란이 이처럼 호메로스적인 주제에 친화적인 만큼 새로운 창조적 경지에 도달하고, 보다 설득력 있는 인물들을 빚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오디세이』에는 놀란 영화에서 늘 보아온 과장된 웅장함과 피상성이 그대로 공존한다. 불안에 시달리는 에우리로코스 역의 히메시 파텔은 오디세우스의 오른팔이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할 운명인데, 세이렌의 곁을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 귀를 밀랍으로 막는다. 그러나 내게는 귀를 막을 밀랍 한 통조차 없었기에 몽둥이와 지팡이, 칼이 부딪치고 갑옷이 쩌렁거리는 소리, 천둥과 파도, 신음과 비명, 무너지는 궁전과 불타는 신전이 만들어내는 온갖 굉음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 했다.


밀랍 없이 돛대에 묶인 채 세이렌들 곁을 지나가는 맷 데이먼의 오디세우스와 달리, 나는 난파와 피의 학살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적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세이렌은 불편해 보이는 바위 위에 몸을 누인 벌거벗은 여성들로 그려진다. 개 아르고스가 등장할 때조차 내 눈은 메마른 채였다. 강아지 시절의 아르고스는 동물을 사랑하는 오늘날의 관객 취향에 맞추려는 듯 예상대로 사랑스러움이 한껏 강조된다. 인간 인물들에게도 그만큼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화와 기술이 변화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이 작품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거슬러 돌아가려는 환상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에 따르는 위험과 대가도 보여준다. 또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 그들의 집에 들어가는 일,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그들을 맞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일에 따르는 어려움과 씨름한다. 이것이 오늘날과 공명하는 지점은 명백하며, 놀란의 영화도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방식으로 그중 일부를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의 비전은 지나치게 혼란스럽고 등장인물들은 너무 미숙하게 그려져 있어, 거대한 사상에 관해 제시하려던 것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 다만 거대한 폭발과 거대한 거인을 보여주는 데만큼은 매우 뛰어나다.


각색은 번역처럼 원작을 정확하게 따라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가장 뛰어난 각색 중에는 원작을 근본적으로 변형하거나 그에 저항하면서, 해럴드 블룸이 선대 작품에 대한 ‘강력한 오독’이라고 부른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밀턴의 실낙원, 조이스의 율리시스, 월컷의 오메로스,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 현대의 난민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리사 피터슨의 연극 등 오디세이에 대한 가장 인상적이고 창조적인 응답들은 원작의 구조와 서사, 가치관을 새롭게 고찰한다.


놀란의 오디세이에는 절제라고는 없다. 매 순간 사건과 빛과 소음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며, 그 무엇도 인간적인 규모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우베르토 파솔리니의 리턴(2024)이 보여준 세련되고 절제된 간결함이 전혀 없다. 그 작품에서 랠프 파인스는 상처투성이에 절박하고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자신의 귀향을 두고 갈등한다. 그를 맞이하는 줄리엣 비노슈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을 만큼 불행해 보인다. 신이나 특수효과를 구현할 예산이 없었던 그 영화는 오디세이와 그 주인공을 근육과 굶주린 심장만 남도록 벗겨냈을 때 과연 무엇이 남는지 생각하게 한다. 반면 놀란은 우리 앞에 모든 것이 포함된 뷔페를 차려놓는다.


인종에 구애받지 않은 놀란의 캐스팅은 예상대로 일부에서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캐스팅에 진보적인 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젠데이아, 루피타 뇽오, 히메시 파텔, 코리 안토니오 호킨스, 트래비스 스콧 등 비백인 배우 대부분은 ‘흑인 절친’의 변형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다. 극에서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백인 주인공을 돕는 것뿐이다.


이타카의 음유시인 페미오스를 연기한 스콧은 몇 마디를 고함치고 막대기를 두드리지만, 노래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리라를 연주할 기회는 얻지 못한다. 타악기 중심의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선율적인 음은 오디세우스가 활시위를 튕길 때 나온다. 궁수를 음악가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청각적 이미지로, 원작에서 가져온 것이다.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1인 2역으로 연기한 뇽오의 배역은 지나칠 정도로 빈약하다. 그에게 주어진 출연 시간은 불과 몇 분이며, 그 안에서 분노에 찬 유가족 어머니, 학대받는 아내, 참회하는 간통한 여성 등 여성 피해자의 짧은 모습을 잇달아 연기할 뿐이다.


원작 덕분에 이 영화에는 놀란의 다른 작품들보다 여성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진 것과 달리, 이들 가운데 제대로 할 말이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호메로스의 칼립소는 신들의 이중잣대에 격분하며 경이로울 만큼 오페라적인 연설을 펼친다. 남신들은 욕망하는 인간 여성을 마음대로 납치하고 강간할 수 있지만, 여신이 똑같은 일을 하려고 하면 제우스와 그 패거리들이 훼방을 놓는다는 것이다.


샤를리즈 테론의 칼립소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화를 내지도, 웃기지도 않으며, 수사에 능하지도 않고, 꾀죄죄한 인간 포로를 향한 욕정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그는 무보수 심리치료사에 가깝다. 약물을 이용해 몰골이 말이 아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오디세우스의 영혼을 달래주며, 그의 두서없는 고난담을 너그럽게 들어준다.


마찬가지로 호메로스의 페넬로페는 변장한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의 꿈을 대단히 생생하게 들려준다. 꿈속에서 마당에 있던 거위들이 독수리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독수리는 거위들이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이며 귀환한 남편에게 곧 몰살당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꿈속에서 페넬로페는 눈물을 흘렸다. 이는 오디세우스의 귀환과, 마치 남편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지내온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곧 끝난다는 사실에 대해 그가 매혹적일 만큼 양가적인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암시한다.


놀란의 페넬로페에게는 꿈이 없다. 앤 해서웨이의 얼굴은 여전히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며,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인다. 여성들의 거처와 중앙 홀을 분리한 영리한 세트 디자인의 장막 너머로 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각본이 그에게 허락한 일은 이유도 알 수 없는 채 맷 데이먼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화학작용도 없고 공통점도 없다.


여정을 계속하는 동안 애처가 오디세우스는 아내를 상징하는 작은 인형을 꼭 붙들고 다닌다. 인셉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손에서 놓지 않던 팽이와 비슷하다. 그런데 실제 아내 역시 그 인형보다 별로 더 흥미로운 인물이 아니다.


영화에서 신들을 묘사하면서 「타이탄족의 멸망」 같은 우스꽝스러움에 빠지지 않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놀란이 신들을 제외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비중이 턱없이 적은 젠데이아의 아테나마저도 책략과 피에 굶주린 전쟁의 여신이 아니라, 전쟁에 희생된 연약한 피해자, 혹은 오디세우스의 양심이 투영된 존재인 것으로 드러난다.


칼립소, 세이렌, 키르케,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등 다른 여신들도 잠깐씩 등장하지만, 관객이 이들을 여신으로 알아봐야 한다는 암시는 전혀 없다. 무시무시한 폭풍과 난파 장면은 있지만 포세이돈과 헤르메스, 헬리오스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한 순간 중 하나는 젠데이아가 데이먼에게 신은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장면이었다. “천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요? 불은요?”


하지만 영화는 양쪽을 모두 취하려 한다. 신들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난파와 죽음은 포세이돈의 아들을 눈멀게 하고 태양신의 소 떼를 잡아먹은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제시된다. 제우스의 법은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정작 제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놀란이 그리는 세계는 진정한 신들을 품기에도, 우리와 다를 수 있는 진짜 사람들을 품기에도 충분히 크지 않다.


영화에는 거인들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홀로 사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나오는 폴리페모스와 지나치게 화려한 옷차림을 한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이 그들이다. 서맨사 모턴이 원초적인 활력으로 연기한 키르케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올 법한 오두막에 사는 바바 야가와 같다. 그는 손이 많이 가는 일종의 성형수술을 통해 오디세우스의 탐욕스러운 부하들을 돼지로 바꾼다. 그들이 원래부터 돼지 같은 자들이었으니 겉모습까지 그에 맞게 바꿔준 셈이다.


연꽃을 먹는 자는 단 한 명만 등장하지만, 예상할 수 있듯 망각이라는 주제는 새로운 의미를 띤다. 유명한 장면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배를 위협하고, 에우리클레이아가 오디세우스의 다리에 난 흉터를 알아보며, 안티노오스는 변장한 주인공에게 발판을 집어 던진다.


서사시의 몇몇 주요 대목은 빠졌다. 영화는 친절한 공주 나우시카가 사는 스케리아섬을 건너뛴다. 원작의 오디세우스는 그곳에서 자신을 환대하는 파이아케스인들에게 모험을 과장해 들려준다. 모든 것을 극대화한 이 영화에는 나우시카의 빨래나 남편을 꿈꾸는 소녀다운 환상처럼 매력적일 만큼 일상적이고 소박한 것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데이먼이 연기한 백발의 오디세우스는 이야기의 달인도, 능숙한 바람둥이도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도 있다. 우호적이고 부유하며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외국이 등장했다면 영화의 이미 혼란스러운 전제는 한층 더 뒤엉켰을 것이다. 이 할리우드판 미케네 그리스가 세상에 남은 유일한 ‘문명’이며, 제우스의 법에 따라 낯선 이와 거지를 환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나마 아직 기억하는 유일한 곳이라는 전제 말이다.


의상과 갑옷, 배, 건축물은 여러 시대와 양식이 뒤섞인 잡탕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된 이야기에서 만들어졌고 서로 다른 시대와 방언, 전통의 조각들을 한데 품은 호메로스의 시를 생각하면 이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 언어적인 면에서도 호메로스의 그리스어는 여러 요소가 뒤섞인 복합체다. 다만 언제나 운율이 있는 시의 언어였으며, 실제 사람들이 사용했던 말은 아니었다.


온라인에서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분노와 달리, 영화가 현대 미국인의 말투에 근접한 언어를 사용하려 한 것 자체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각본을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어로 쓰거나 영어 운문으로 쓸 생각이 아니라면, 일상적인 미국 영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대사를 쓰는 일은 놀란의 재능이 아니다. 영화의 언어는 줄곧 상황 설명에만 급급하고, 유머가 없으며, 밋밋하다.


“우리 아빠가 집에 오고 있어”나 “이 빌어먹을 해변에서 나가자”처럼 활기찬 말투를 시도한 대사들은 다음과 같은 거창한 명상조의 대사와 불편하게 나란히 놓인다.


“그렇습니다, 왕비님. 제우스의 법을 어긴 행위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청동기 시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초래한 폐허를 차마 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디에서도요. 특히 자기 고향에서는 더더욱.”


시상식에서 흔히들 말하듯, 놀란이 내가 약강 오보격으로 번역한 오디세이의 첫 구절만큼은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겸허해졌다. 그는 적어도 한 인터뷰에서 내가 번역한 시의 첫 구절을 인용했다. “복잡한 남자에 관해 말해다오.”


그러나 내가 이 각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썼다면 부끄러웠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데이먼의 오디세우스는 복잡하지도, 교활하지도, 기교가 뛰어나지도 않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고 유명한 오디세우스의 속임수 가운데 하나는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이름이 ‘아무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눈이 먼 거인이 이웃들에게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자, 다른 퀴클롭스들은 ‘아무도’ 그를 해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안심한다.


하지만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보다 한 수 앞설 필요가 없다. 이 퀴클롭스는 지능이라고는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놀란의 외눈박이 거인은 끙끙대기만 하며 ‘그것’이라고 불린다.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술에 취하지도 않으며, 이웃도 없고 특별히 아끼는 양도 없다.


오펜하이머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지만, 데이먼이 연기한 둔중한 오디세우스는 기술적 지략, 즉 ‘폴리메카니아’마저 부족해 보인다. 그는 집 안에서 자라는 나무를 이용해 부부의 침대를 만들지도 않는다. 어차피 잠을 자거나 섹스를 하는 일이 거의 없어 보이니, 그런 수고를 들이는 것 자체가 낭비이긴 할 것이다. 칼립소에게서 탈출할 때 타는 뗏목도 떠내려온 나뭇조각 몇 개를 대충 엮어 만든 것에 불과하다.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오는 정교한 벌목과 배 제작 과정과는 대조적이다. 트로이 목마를 설계하고 만드는 장면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바퀴조차 달리지 않은, 조악하고 촌스러운 목마가 마치 드론으로 투하된 것처럼 바람 부는 해변에 불쑥 나타난다. 여러 험난한 촬영지를 돌아다니며 아이맥스 카메라를 끌고 다녀야 했던 감독에게는, 크고 다루기 힘든 물건을 험지로 운반하는 어려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놀란의 오디세이에는 원작을 위대한 작품으로 만드는 수많은 요소가 빠져 있다. 이 영화는 시간과 기억, 역사, 전쟁에 관해, 그리고 한 전사의 영광스러운 귀환과 그의 가족, 적, 전우, 친구, 이웃의 삶이 맺는 관계에 관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혀 들려주지 못한다. 심리적·감정적·정치적·윤리적 깊이가 부족하고, 서사 구조는 잔꾀에 의존한다. 각본은 형편없다.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동이나 말에 설득력 있는 동기를 지니지 않는다. 섹스 장면은 하나도 없고 음식은 전부 끔찍하게 보인다.


놀란의 오디세이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윤리적 문제는 영화의 일부를 점령지인 서사하라에서 촬영해, 그곳의 토착민인 사하라위인들을 향한 현재진행형의 폭력을 정상적인 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놀란은 영토 전쟁을 일으킨 영웅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그를 과장되게 추켜세운 뒤 자신의 죄를 뒤늦게, 그것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하는 영화를 위해 이 땅을 그저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배경으로 사용했다. 이는 특히 불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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