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두 달치 월세 뽑는다…팬덤 업은 ‘생카’ 열풍, 배짱 점주만 매출 대박 [세상&플러스]
아이돌 팬들 앞다퉈 ‘생카’ 열고 팬심 과시
매출에 도움되자 ‘생카 비즈니스’로 확장
홍대·합정 일대서 하루 100개 안팎 생카
일부 카페에선 불공정한 계약조건 ‘배짱’

지난 23일 오후 11시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의 한 카페에선 생일카페 준비가 한창이었다. 김서현 수습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김서현 수습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11시께 아이돌 생일카페, 이른바 ‘생카’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일대에선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기념하려고 카페 내부를 치장하는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자가 들어가 본 한 카페에는 티셔츠·키링·텀블러·파우치 등 직접 제작한 굿즈를 담은 대형 상자 9개가 벽 한쪽에 쌓여 있고 바닥에는 각종 장식품이 널려 있었다.
다음 날 열릴 아이돌 생일카페를 준비하던 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캐리커처를 오려 벽에 붙이고 수십 개 풍선에 바람을 넣었다. 까치발을 들어 천장에 장식을 붙이느라 분주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준비 작업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행사 콘셉트 구상부터 굿즈 제작까지 3개월 넘게 준비했다고 한다. 준비 예산은 300만원이 들었다. 소품을 옮기는 데만 승합차가 세 차례나 오갔다.
대안으로 시작해 트렌드 된 ‘생카’
생일카페는 팬이 카페와 계약한 뒤 사비를 들여 사진·배너·굿즈 등을 제작하고 공간을 꾸민다. 행사 홍보와 종료 후 철거도 팬들이 직접 맡는다. 카페는 이벤트 중에 매장을 찾는 팬들과 일반 손님에게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해 매출을 올린다. 팬은 팬심을 충족하고 카페는 매출을 얻는다.
생일카페 문화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규모 콘서트와 팬미팅이 잇따라 취소되자 팬들이 카페에 소규모로 모여 아이돌 멤버의 생일을 축하하며 아쉬움을 달래던 대안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확장됐다.
10년간 방탄소년단 팬이었다는 김현정(29) 씨는 “예전에는 일부 큰 팬덤만 가끔 하던 이벤트였지만 코로나 이후 모든 팬덤이 챙기는 연례행사가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떨어지며 대안이 필요했던 카페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졌다.
팬데믹이 끝났지만 생일카페 문화는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적잖은 가격에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 콘서트나 팬미팅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팬심’을 드러낼 수 있는 활동이어서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팬미팅에 가려면 앨범을 100장은 사야 하고 콘서트도 최소 15만원부터다”라며 “팬들이 즐길 거리가 고가의 콘텐츠로 제한되다 보니 1만 원 내외에서 즐길 수 있는 대체적 팬문화를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3일 오후 1시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한 카페에서 아이돌의 생일 카페가 열리고 있다. 방문객들은 주최자들이 꾸며 놓은 포토존에서 자유롭게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다. 김서현 수습기자
여기에 아이돌 팬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도 생카 문화를 키웠다. 엔하이픈 팬클럽 소속 박모(24) 씨는 “요즘엔 여러 앱을 통해 생카 개수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니 ‘내 아이돌 생일에 생카가 적으면 안 된다’는 경쟁이 심해졌다. 손해 보면서도 행사를 열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덤끼리 인기투표, 앨범 판매량 등으로 경쟁하는 것은 오래된 문화”라며 “이런 경쟁이 이제 새로운 영역까지 확장돼 K-팝 산업에서 주류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팬 행사 정보를 제공하는 앱 ‘오프메이트’에 따르면 마포구 홍대·합정역 일대에서 하루에만 100여곳의 생일카페가 열린다. 용산구 하이브 사옥과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주변도 생일카페 밀집 지역이다. 최근에는 아이돌을 넘어서 애니메이션·드라마 캐릭터부터 예수·세종대왕·뉴턴·아인슈타인까지 대상도 넓어졌다.
생일카페가 수요가 늘면서 카페가 아닌 업종까지 ‘업계’에 뛰어들었다. 홍대 거리에 있는 한 향수 가게는 평소 2만 원인 미니 향수를 팬이 준비한 굿즈와 묶어 판매하고 필요하면 장소도 빌려준다. 한 꽃집도 팬들이 제작한 기념 물품과 장미꽃을 함께 판매한다.
‘생카’가 돈 되자, 배짱 영업도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향수 가게도 아이돌 생일파티 공간으로 운영됐다. 김서현 수습기자.
기자가 직접 홍대 일대 20곳의 생일카페를 둘러보니 대관 예약금 10~50만원, 행사 기간 중 음료 50잔 안팎을 최소 판매(하루 기준) 등의 기본적인 계약 조건이 있었다. 최소 판매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주최하는 팬들이 정산해줘야 한다. 홍대 한 카페에 생카 대관 조건을 묻자 “못 팔면 부족한 만큼 물어내야 하니까 잘 생각하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생일카페 이벤트를 열면 카페는 음료와 디저트에 생카를 여는 팬들이 제작한 굿즈 함께 판매한다. 7000원짜리 음료와 2000원 쿠키를 굿즈와 묶어 1만1000원에 파는 식이다. 마진은 카페 업주에게 돌아간다. 한 카페 사장은 “생카를 한 번 열면 매출이 평소보다 3배가 뛰기도 한다”고 말했다. 생카를 열려는 수요가 커지면서, 업주들에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열린 것이다.
팬들이 선호하는 일부 카페들은 예약 문의가 몰리다 보니 카페 업주의 입김이 세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매장은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싫으면 말고’ 태도로 배짱을 부리는 사례도 팬들 사이에 공유된다.
용산에서 생일카페를 열었던 손모(29)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과 하이브 소속 유명 아이돌의 생일이 겹친 날 한 카페에 예약을 문의했다가 “그 아이돌이 이날 생카를 할 ‘급’이 안 된다며 추가금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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