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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단지 옆에 건설된 구글 데이터 센터 전경. 구글 누리집 갈무리
일각에서는 전세계적인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데이터센터 건설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핵심을 간과한 주장이다. AI 경쟁의 핵심은 범용 AI의 기반이 되는 ‘파운데이션 모델’에 있다. 오픈AI의 챗지피티(ChatGPT),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처럼 독자적 기술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부가가치를 독점하고, 데이터센터 임대업은 상대적으로 하위 가치사슬에 머문다.
아일랜드 사례는 인프라 제공에만 치중한 국가가 치러야 할 대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구 550만 명의 아일랜드는 서늘한 기후와 해저 광케이블망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 파격적인 법인세율 인하 정책으로 글로벌 IT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적극 유치했다. 그 결과 구글과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의 본사와 데이터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현재 아일랜드에는 약 120개의 데이터센터가 있고, 이들 대부분이 수도권인 더블린과 인근 지역에 몰려 있다.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국가 전력 소비량의 23%에 이르고, 이는 아일랜드의 도시 주택 전체 전력 소비량보다 많다.
아일랜드 환경단체 ‘지구의 벗 아일랜드’는 이들 데이터센터로 인해 2015~2023년 가구당 평균 360유로(약 61만원)의 전기요금을 추가 납부했다고 밝혔다. 단기간에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보충을 위해 가스발전 비용이 전기요금 인상을 이끌었고, 이 비용이 국민에게 ‘숨겨진 세금’(Hidden Tax)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데이터센터 증설에 따라 2034년까지 가구당 최대 644유로(약 110만원)의 추가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이 단체는 지적했다.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아일랜드 전력망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2021년 아일랜드 유틸리티 규제위원회(CRU)는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전력계통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대규모 정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에 아일랜드 정부는 2021년 수도 더블린과 인근 지역에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을 사실상 중단하는 ‘더블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 조치는 2025년 말부터 자체 발전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의무화, 80% 이상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전력 조달 등을 포함한 조건부 승인 제도로 바뀌었다. 전력공급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 글로벌 IT 기업의 본사들이 아일랜드에 밀집했지만, 우리는 아일랜드를 ‘IT 기술 강국’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저 대기업의 세금 회피처이자, 환경 부담을 떠안은 ‘IT 인프라 기지’ 정도로 기억할 뿐이다. 하물며 데이터센터만 임대하는 형태가 ‘AI 강국’으로 이어질지는 더욱더 미지수다.
자연과 사회가 일정한 활동을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생태용량(Ecological Capacity)이라고 부른다. 숲이 흡수할 수 있는 탄소의 양, 하천이 정화할 수 있는 오염의 양이 무한하지 않듯, 국가 전력망과 지역사회가 감당할 에너지 용량도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좁은 국토에 무한정 발전소를 지을 수 없고, 그것이 설령 재생에너지라 할지라도 토지와 계통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단기간에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밀어붙이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지역 공동체 파괴로 이어진다.
미국 국민의 반대로 중단된 AI 데이터센터 물량을 고스란히 한국이 받아안는 것을 ‘AI 산업 육성’이라고 부를 수 없다. AI 산업의 과실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독식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 피해를 고스란히 한국으로 이전하는 것은 과거 있었던 ‘공해 산업 수출’과 다르지 않다. 이를 빌미로 AI 데이터센터가 모두 완공될 2035년까지도 건설이 불가능한 핵발전소를 언급하는 것은 더욱더 어불성설이다. 불과 3년 뒤부터 어마어마한 전력이 필요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는 13년 이상 긴 세월이 필요하다.
우리 미래를 위해 AI 산업과 기술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술 경쟁이라는 명분이 우리의 생태용량과 시민의 삶을 파괴할 권리까지 부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장밋빛 전망에 취해 ‘속도전’으로 인프라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생태적 한계선을 먼저 정하고, 그 안전망 안에서 공존하는 기술과 산업 규모를 조율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https://n.news.naver.com/article/036/0000053924